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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2021.08.07.토) *

by clavecin Sep 25. 2021

일본 (2021.08.07.) *



   남녀 공학이었던 고등학교 때 우리 학교에서는 남학생은 독일어, 여학생은 프랑스어를 배웠다. 선택도 아닌, 아예 정해진 교육과정이었다. 독일어 선생님이나 프랑스어 선생님이나 모두다 S대 출신이었는데, 독일어 선생님은 인형같은 외모에 커트머리를 지닌 터프한 여자 선생님이었고, 프랑스어 선생님은 우리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셔서 교실 뒤쪽을 보고 수업하시던, 수줍음이 많은 경상도 남자 선생님이셨다. 아이들이 프랑스어 선생님에게 짖꿎게 장난치던 모습이 기억난다. 아이들은 매번 말했다.      


 - 선생님, 쌀, 해 보세요..

 - ...살..

 - 아니.. 쌀...이렇게요..

 - ...ㅆ....살...     


   길창덕의 만화 속에 나오는 꺼벙이처럼 약간은 촌티가 나는 머리의 선생님은 무척 좋았지만, 초임 프랑스어 선생님의 발음을 들으며, 나 혼자 생각했다. ‘이 발음, 맞는 건가?’     


   제2외국어가 재미도 있었고 (그 때는) 공부도 어렵지 않았는데 또 당시에는 내가 지원하는 대학교에서 제2외국어도 시험을 보아야 했었기에 고3까지도 프랑스어를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다. 대학교에서도 영어와 제2외국어가 필수여서 프랑스어 2까지 수강했고, 2학년 때는 스페인어까지 했었다. 지금은 아무 기억도 없지만..

     

   지금이야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배우는 학교가 거의 없고 일본어나 중국어, 심지어 베트남어나 아랍어 등 제2외국어 선택권이 예전과 달라진 시대이지만, 그 때는 아마도 대부분의 고등학교가 독일어와 프랑스어 일색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내 기억이 맞다면, 노어노문학과, 즉 러시아 문학에 대한 전공이 S대에 생긴 것도 그 즈음이었고 대부분 유럽 언어 위주의 제2외국어 교육과정이었다.     


   특이한 것은, 그 당시 S대에는 일본어 강의가 없었기에, 고등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워서 일본어로 입시를 보았던 동기생은, 합격 후 입학하기 전 겨울방학 동안 독일어 학원에 다니며 제2외국어 공부를 했었던 것 같다. 대부분 고등학교 때 배웠던 외국어를 이어서 수강했는데 그 친구는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해서 난감해했었다. 지금 언어교육원에는 일본어 교육이 있던데, 지금도 제2외국어 과정에 일본어가 없을까??     


   지금 우리 학교에서도 역시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가르쳤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일본어와 중국어로 바뀌었고 지금은 아랍어와 스페인어도 신청해서 배울 수 있다. 배우지 않고 수능 시험에서 아랍어를 보았는데 잘 봤다고 자랑하던 녀석도 있었다.      


   시기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일본어보다 중국어를 수강하는 학생들이 조금 많았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요즘은 중학교에서 제2외국어를 가르치기도 하고 아이들이 독학을 하기도 하는데, 우리 학교는 고2부터 하던 과정이 올해부터는 고1로 내려오게 되었다. 열심히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편하게 수업을 듣는 것 같다. 일본어보다 중국어가 어렵다고들 한다.    

 

   중국어는 원어민 선생님도 함께 근무하시는데 예전에 중국어 언어민 선생님이 교사 대상으로 중국어를 가르친다고 하시기에 ‘당연히 중국어!’라는 생각에 들었었지만, 어려웠다. 무지.. 그래서인지 마음은 중국어를 배우고 싶지만 어렵다는 말들에 일본어를 선택해서 듣는 아이들도 많은 것 같다. 일본어도 쉽지는 않다고들 하는데...     



   일본에 대해 내가 알고 경험한 것들.. 예술품의 경지로 올려놓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소품들, 깨끗하고 청결한 거리, 방긋방긋 웃는 미소 사이로 잠깐씩 보이는 덧니의 아가씨들, 눈썹을 그린 갸름한 얼굴의 남자들, 맛있는 도시락과 달콤한 간식거리들, 세차해서 반짝거리는 작은 자동차, 흙집같이 소박하고 낮은 집들, 하지만 초현대식으로 치장된 주택 내부, 우리나라나 중국같이 별반 다른 것 없는 무채색 위주의 건물들이지만 무언가 세련된 느낌, 반면 옛날스러운, 엄청 옛날스러운 학교 건물들, 추운 다다미방과 유럽식 소품들... 나는 좋았고 잘 맞았다. 



   일본은 총 3번을 다녀왔는데 항상 좋은 기억들을 주었다. 특히 그 중 한 번은 한 달 동안 있었는데 일본사람들 집에 며칠씩 돌아가면서 홈스테이를 했었다. 벌써 13년이 흘렀다. 그 때 뵈었었던 어르신들은 잘 계신지...

     

   대대로 와세다 대학을 나왔다는 명문가 어르신의 집안 자랑, 우리나라의 약국이지만 편의점 같이 온갖 것을 팔던 할아버지 사장님, 택시운전사로 시작해서 그 택시회사를 사버린 아저씨, 강아지 미용사로 분홍색 작은 차를 몰고 다니던 그 아저씨의 딸, 도쿄 오페라 시티홀에서의 피아노 공연,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와 존 레논 박물관, 뉴 내셔널 갤러리에서의 피카소 전시회 등등..    

 

   가장 찐하게 기억이 되는 사람은 그 당시에 67세셨으니 지금은 80세가 되시는 마사코다. 산부인과 의사였던 남편을 먼저 보내고 아이도 없이 100평도 넘는 대저택에서 혼자 사시는, 하얀 렉서스를 모는, 아름다운 노부인이었다. 내가 놀랐던 것은 그 큰 저택을 나올 때는 아주 작은 쪽문으로 웅크리고 나와서 열쇠로 문을 잠근다는 사실이었다. 일명 가오가 살지 않는 외출이었는데 그렇게 해야 안전하다고 했었던 마사코의 말이 기억이 난다.      


   지금까지도 마사코가 기억에 남는 것은, 본인의 아이가 없는 산부인과 의사의 아내로서의 애처로움과 함께, 주일날 한인교회를 찾아서 함께 갔었다는 것 때문이다. 동네를 수소문해서 어느 상가에 있는 한인교회에 함께 예배를 드리러 갔었다. 교회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마사코 할머니를 모시고 갔었던 그 날 주일예배를 위해 내가 일본에 한 달 동안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그리운 마사코...     


   일본어를 1도 못하면서 일본에 어떻게 있었을까 싶은데 아주 짧은 영어로 소통을 했었다. 그 사람들도 못하는 영어고 나도 못하는 영어로도 한 달을 살 수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다. 신기한 것은 다녀와서도 한참 잊었던 일본에 대한 생각이 몇 년 전에 갑자기 들면서 일본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인데, 송백재 O선생님에게 남는 일본어 교과서를 받아서 공부를 해보려고 노력을 해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독학이 어디 쉬운가..     


   일본어 강의도 찾아보았는데 생각보다 입문과정이 많지 않았고 바쁜 학교생활에 또 까먹고 있었다. 그런데....이번 여름에 다시 ‘일본’ 생각이 나는 것이다. 왜 일본 생각이 났을까...     


   1년이 연기되어서 관중도 없이 치루어지고 있는 말 많은 도쿄 올림픽이 끝나가고 있다. 간간이 들려오는 승리 소식들만 알고 있을 뿐이지만 코로나로 지친 사람들의 일상에 분명 무언가 흥미와 이야깃거리를 주고 있기는 한 듯 하다. 힘들게 진행되고 있는 경기들이 마지막까지 잘 끝맺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일본 생각이 난 김에 요즘 유명한 S스쿨에서 일본어를 검색해 보고 회원가입을 했더니 당장 연락이 왔다.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는 나에게 그들이 권한 것은 50만원이 넘는 세트강의였다. 나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 이렇게 마케팅 하시면 안될 것 같아요...     


   그리고 마감시간 제한이 없는 다른 연수를 신청했다. 이제 히라가나부터 해야 한다. 언제부터 하게 되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 KBS에서 했던 다큐인사이트 “피크재팬- 두 번의 올림픽” (2021.7.8. 방송)..     

 

   작년에 치루어야 했던 올림픽을 1년 연기하게 되면서 여러 분야에서 점점 침몰하고 있는 듯한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그 모습이 못내 안쓰러웠다.     


   전혀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는 개인의 역사처럼, 전혀 예상치 못하게 흘러가는 세계사의 한 흐름을 주시하게 된다.     


   왜 일본인들이 불쌍하게 보이는지....     


https://www.youtube.com/watch?v=esE567ohsOM             

       

2008년도에 있었던 일본 홈스테이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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