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마지막 행운 - 1
* 도사에게 세 가지 행운을 예고받은 서울지방국세청 추적팀의 노총각 이근배 조사관. 그는 도사의 예언대로 일과 사랑에서 모두 행운을 가져갈 수 있을까요? 이 소설은 국세청 내 지방청 체납추적팀과 국세상담센터 전화상담팀에 근무했던 경험이 집필 동기가 된 작품입니다.
서울청 추적팀의 노총각 도사에게 행운을 예고
내가 그날 시청 앞 지하철역 입구를 지나가게 된 건 우연인 듯 필연이었다. 내가 그날 가려고 했던 곳은 동대문 등기소로 시청 앞은 처음 목적지가 아니었다. 동대문 등기소뿐만 아니라 시청 앞에 있는 중부등기소에서 업무처리가 가능하다는 팀장의 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청 앞을 가게 된 것이다. 기숙사와 가까운 동대문 등기소로 가서 업무처리를 하고 현지 퇴근을 하려는 나의 계획은 중부등기소로 가라는 팀장의 말에 물거품이 되었다.
그렇게 중부등기소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았다. 중부등기소는 처음 가보는 곳이라 정확한 위치를 몰랐지만 인터넷 지도를 확인해본 결과 덕수궁의 시립미술관 옆이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까운 곳이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정확하게 지도를 확인하지 않고 출발한 결과 나는 중부등기소를 찾지 못하고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기만 했다.
가까스로 시립미술관 옆에 숨어있던 중부등기소를 찾은 나는 당초 목적이었던 폐쇄등기부등본을 발급받고도 나의 직장인 서울지방국세청으로 바로 귀청 하지 않고 오랜만에 걸어보는 덕수궁 돌담길을 느릿느릿 산보했다. 늦가을을 맞은 덕수궁 근처는 은행잎으로 노랗게 뒤덮였고 거리에는 버스킹 공연이나 마술공연 등 재밌는 볼거리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덕수궁 근위병들의 교대식까지 관람한 나는 그때서야 귀청을 위하여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시청 앞 지하철역 2번 출구를 지날 때 앞에서 오던 외국인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Hey, you are a very lucky man."
검은 옷을 입고 검은 머리에 흰 수염으로 얼굴을 뒤덮은 그는 아랍 계통의 사람으로 보였다. 눈이 크고 검은 피부에 크고 오뚝한 코를 가진 그는 첫눈에도 범상해 보이지 않는 외모였다.
“What? Me, Why?"
나는 짧은 영어로 대답했다. 평소 같으면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아 이상한 사람과의 대화는 피해 갔을 나였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그와의 대화를 거부하지 않고 계속 이어나가게 되었다.
그는 나에게 행운의 기운이 있으며 조만간 세 가지 큰 행운(big fortune)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그에게 예언가인지를 물어보았다. 그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사진 속의 자신이 인도의 사진 속에 있는 다른 예언가들과 함께 10대 예언가 중 하나라고 말하며 나에게 제일 좋아하는 색과 숫자를 써보라고 하였다. 내가 그가 내민 종이에 내용을 쓰고 나자 그는 그린과 7을 말한 후 종이를 펴보이게 하였다. 거기에는 그린과 7이라고 내가 쓴 것이 적혀있었다. 그는 내가 2년 전에 아버지를 여읜 것과 요즘 팀장과 사이가 껄끄러워 사무실에서 일이 잘 안 풀리는 것까지 맞추어 나의 신뢰를 얻었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2만 원을 꺼내어 그에게 복채로 주려고 하였다.
“No, give me all the money in your wallet. It is sevety thousansd won." 그는 말하며 내 지갑 속에 있는 모든 돈을 요구하였다.
내가 지갑을 열어보니 지폐로 7만 원이 있었다. 나는 놀라서 그에게 7만 원을 모두 주었다. 사기당한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혹시 그가 진짜 예언가라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상황까지 나의 모든 것을 맞추는 그의 예언이 신기하기도 했다. 내가 그에게 7만 원을 주자 그는 나와 헤어지며 계속 떠들었다.
“Don't forget my prediction. You are lucky boy. You will have three big fortune in the near future."
나는 “I see, thank you. Goodbye." 하고 그를 보냈다.
사무실에 와서 직원들에게 이 얘기를 하니 직원들은 모두 내가 낯선 외국인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라고 놀려댔다.
옆자리 짝꿍인 신혜주 반장은 “근배 씨, 너무 순진한 거 아니야. 그 정도 마술은 초보에 불과해. 지갑 속에 금액까지 맞춘 것은 우연이었을 거야. 아마 금액이 틀렸으면 또 다른 이유로 금액을 조정했을걸.”하며 나를 불쌍한 듯 쳐다보았다.
동료들의 이런 반응에 나도 잠시 정신이 나가서 사기를 당한 기분이 들어 그 일은 나도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불쾌한 기억이 될 듯하였다.
“근배 씨, 오늘도 수영장 가는 거야. 그러다 마린보이 되겠어.” 퇴근하는 나를 보며 여휴동 팀장은 말하였다.
“이왕 배우는 거 빠지지 않고 다니려고요. 그래야 빨리 배울 것 같기도 하고... 하하.” 나는 웃으며 말하였지만 수영을 핑계로 일찍 퇴근하는 변명거리를 만들려는 이유도 없다고 할 수는 없어 항상 야근하는 팀장의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안 하면 매일 팀장과 야근을 피할 사유가 없는 노총각 신세라 과감히 수영복과 수경 등이 들어있는 스포츠 가방을 들고 퇴근길을 서둘렀다.
나는 우리 팀에서 같이 수영을 배우는 손민상 반장, 이진성 반장과 함께 광화문에 있는 덕송 수영장으로 향했다.
손민상 반장은 아까 내 얘기를 듣더니 “근배 씨, 세 가지 행운 중 하나는 애인 생기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노총각으로 외로웠을 텐데 연말까지 애인 하나 만들어.”라고 웃으며 말하였다.
이진성 반장도 덩달아 “야, 진짜 그러면 좋겠네. 우리 국수 먹을 수 있는 거야.”하며 나를 놀린다.
“형님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죠. 좋은 아가씨 있으면 소개나 시켜주세요.”하고 너스레를 떨어봤지만 올해도 애인 없이 크리스마스를 맞을 생각을 하니 어깨에 맨 스포츠 가방이 갑자기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