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행운을 만나다

(단편소설) 마지막 행운 - 2

by 하기

첫 번째 행운을 만나다



첫 번째 행운은 뜻밖에 빨리 찾아왔다. 나는 징세관실 추적팀 소속으로 체납자 재산 추적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내가 근무하는 추적팀 사무실 옆으로 행정지원팀이 있는 데 가끔 우편발송을 위하여 가면 이번에 인사발령이 나서 일선 세무서에서 서울청으로 들어온 서영희 씨가 있었다. 나와는 여섯 살 차이로 약간 웨이브를 준 긴 갈색 생머리에 쌍꺼풀 진 선한 눈매가 인상적인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첫눈에 반했지만 노총각인 나는 말조차 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오늘 수영장에 나타난 것이다. 몇 달을 배워 중급자 코스에서 자유형을 연습 중이던 나는 처음에 그녀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초보자 코스에서 퀵판을 들고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이 어디서 본 듯하여 살펴봤더니 그녀였던 것이다.


그녀도 나를 봤는지 생긋 웃으며 “조사관님 안녕하세요. 이 수영장에서 수영 배우시나 봐요. 전 오늘 처음 왔는데...”하며 말을 거는 것이 아닌가.


“네, 전 배운 지 두, 세 달 됐는데 영희 씨는 처음이신가 봐요?”


“네 처음이라 많이 힘드네요. 근배 씨가 좀 도와주시면 쉽게 배울 것 같은 데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렇지 않아도 내가 가르쳐주겠다고 할 판에 먼저 그녀가 부탁을 해오니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나는 중급자 코스에서 초보자 코스로 레인을 옮기고 나서 “그럴까요. 그럼 일단 제 손을 잡고 한번 발차기를 해보세요.”하며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발차기를 하며 자꾸 몸이 가라앉아 나는 그녀의 배에 손을 받치고 그녀가 가라앉지 않도록 잡아주었다. 운동신경이 있는지 그녀는 금방 발차기에 익숙해졌고 퀵판없이 물에 뜰 수 있어 수월하게 지도를 할 수 있었다. 그녀는 레슨이 끝나고 수영장 휴게실에서 나를 보자 고맙다며 차를 한잔 사겠다고 했다. 손반장과 이반장은 웃으며 자신들은 집에 일이 있다며 먼저 갈 테니 둘이서 있다가 오라고 말했다.


“형님들 그럼 내일 사무실에서 봬요.” 나는 웃으며 그들을 배웅하고 그녀와 덕수궁 옆에 있는 커피숍으로 가기 위하여 걸음을 옮겼다.


다리선이 드러나는 스키니진과 가죽재킷을 입은 옷맵시가 너무 세련되어 보여 나는 아까 수영장에서 봤던 그녀의 몸매가 떠올랐다. 군살 없는 허리에 운동으로 단련된 듯 봉긋 솟은 엉덩이 라인은 나의 눈길을 자꾸 어지럽혔다. 그녀와 커피를 마시고 지하철에서 그녀의 집이 내가 있는 용두동 세우관과 멀지 않은 혜화동 근처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그녀와 헤어지고 기숙사로 걸어오며 오늘 본 외국인이 사기꾼이 아니고 진짜 도사일 줄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희와 나는 그 이후로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퇴근 후 수영 레슨을 받으며 같이 귀가를 하게 되었다. 혜화동에 있는 그녀 아파트 앞까지 바래다주고 버스를 타고 용두동 세우관으로 오는 것이 나의 일과가 되었다. 수영을 가르쳐주며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녀와 나를 빨리 친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는 크리스마스이브에 그녀에게 목걸이와 꽃다발을 선물하며 정식으로 사귀자고 하였고 애인이 없던 그녀도 나의 프러포즈를 받아 주어 우리는 사내에서 인정받는 연인이 되었다.


비밀연애를 할 수도 있었지만 같이 수영을 배우는 동료들이 있어 함께 식사도 많이 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우리의 사이가 알려지게 되었다. 그녀는 2남 1녀의 막내였는 데 오빠들이 모두 결혼을 하여 혜화동 아파트에서 부모님과 셋이 살고 있었다. 나는 영희의 아버님 생일 초대를 받아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게 되어 우리의 사이는 더욱더 견고해졌다. 김천에 계신 어머니께는 인사를 드리지 못하였지만 어머니에게 전화로 사귀는 여자가 있으니 한번 인사드리겠다고 말씀드려 중매를 거부한 적이 있어 우리 집에서도 영희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나는 상계동에 있는 공무원아파트 입주를 신청하여 21평형 아파트에 당첨되어 기숙사를 나와 독립을 하게 되었다. 이사를 하기 전 나는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하여 깨끗하게 집안을 정돈하였다. 혹시나 영희와 결혼을 하게 되면 당분간 신혼집으로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사를 하는 날 영희는 친구들과 함께 나를 도와주어 이삿짐센터 직원들은 우리를 신혼부부로 생각하는 듯 영희에게 가구 배치나 물건 배치 등을 물어보아 영희는 잠깐 나의 눈치를 보다가 내가 알아서 하라는 눈치를 주자 자기 마음에 들게 가구 배치 등을 지시하였다.


이사가 끝나고 수고한 친구들에게 중국음식을 거하게 쏜 후 그들도 가버리자 아파트에는 영희와 나 둘이만 남게 되었다. 나는 베란다에 배치해 둔 새로 산 찻상에 영희와 마주 보고 앉아 뜨거운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안방에 들어가 미리 준비해 둔 커플링을 가지고 왔다.


“영희야, 이거 커플링 반지야. 맘에 들어?”하고 물어보았다.


영희는 “백금인가 봐 너무 예뻐.”하며 웃어 주었다.


나는 영희의 두 번째 손가락에 커플링을 끼워 주며 “나 이제 집도 마련했으니 우리 결혼하자. 평생 호강시켜준다는 장담은 못하지만 너만을 위해서 내 모든 것을 바칠게.”하며 결혼 프러포즈를 하였다.


“모르겠어. 갑작스러워서... 하지만 나도 이제 근배 씨 없으면 못 살 것 같아.”하는 영희의 승낙에 나는 너무 감격스러워 영희를 안고 입술에 키스를 하였다.


그렇게 서로를 부둥켜안고 우는 듯 웃는 듯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키스의 시간이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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