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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디베어 Aug 19. 2023

적절하게 말하기 시작하다.

 회의나 모임에서 자신의 의견을 적절하게 말하는 사람을 보면 무척 부러웠다. ‘어떻게 저 사람은 무거운 분위기에서 소신껏 이야기할 수 있을까?’ 부러움을 넘어서 존경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남성 사회는 군대처럼 “까라면 까야지!”라는 문화가 암묵적으로 스며들어 있어서 그런지 부당한 것을 할 때도 있었다. 제대로 말하지 못해서 손해 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상사들에게 소신을 말하는 것이 두려웠다. 항상 “예스”만 외쳤기에 그들은 나를 말없이 일하는 성실한 사람으로 봐주었다. 이게 장점이 되기도 했지만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해서 내 마음이 조금씩 병들어가고 있었다. 답답함은 쌓여서 분노가 되었고 나는 가정에서 분노를 쏟아내고 있었다.


 답답함의 해결책을 책에서 찾았다.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되는 줄 모르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나는 어떻게 말해야 되는지를 배우지 못했다. 그렇기에 나의 주장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러던 내가 자녀의 장애를 고치기 위해서 내면을 공부하고 치유되면서 적절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말하다가 속 터지면 화낸 적도 있었는데 예전보다 빈도수도 적어지고 적절하게 말하니 손해 보는 일도 적어졌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저 사람이 나를 이렇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이 생각은 내가 만들어놓은 벽이었다. 나는 내 관점으로 다른 사람이 내가 생각하는 대로 생각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내가 만들어놓은 벽이 허물어지면서 나는 적절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말할 때 긴장되고 몸이 덜덜 떨리기도 했다. 하지만 해보니까 생각보다 별게 아니었다. 얼마 전에는 엄마한테 사랑해라는 말을 요청했다(참고로 태어나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엄마는 처음에는 망설이셨지만 몇 번의 요청 끝에 민망했는지 다른 곳을 쳐다보면서 사랑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만약 내가 요청하지 않았다면 아마 눈을 감기 전에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한 번이나 들어봤을까? 이전에 어색하고 부끄러웠던 것들이 조금씩 친숙하게 다가오고 있다.


 적절함을 찾는 과정에서 대화 중 소통이 되지 않아서 아버지에게 화를 낸 적도 있었다. 그런 시도와 갈등을 겪으면서 점점 적절함을 찾게 되었다. 늦게나마 자기표현의 욕구가 충족되니 행복하고 삶이 더 윤택해졌다. 전에는 불의함에 맞서서 화를 내는 것이 멋있고 옳다고 생각했었다. 요즘에는 적절함의 덕을 많이 보고 있다. 적절하게 말하는 내 모습이 대견해 보이기도 하고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그 적절함은 가정에도 좋은 영향을 흘려보내고 있다.


 아이가 떼쓰고 고집부려서 화가 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때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적절하게 말하니 서로 상처받지 않고 평화롭게 갈등이 해결되었다. 가정 분위기도 좋아지고 여러모로 덕을 보고 있다. 적절한 표현은 자존감 회복으로 인해 얻은 선물이다.






사진출처 :  Unsplash의 Cody Eng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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