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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미 May 22. 2023

내 이름은 조서희

10. 감자튀김이랑 콜라가 좋을 뿐이에요.

 우리 가족은 한 달 동안 여행을 다녀왔어요. 엄마의 소원이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아보는 거라고 해서 아빠는 우리 가족을 데리고 정말 바다가 보이는 집으로 데려갔지요.

 그곳에서는 매일매일 수영을 하고, 비가 내리면 비를 맞고, 산에도 가고, 텔레비전도 봤어요. 우리 동네에서는 수영도 못하고, 비도 못 맞고, 산도 없어요. 집에 텔레비전도 없지요. 그렇지마는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는 모두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나는 가끔 먹고 싶은 게 있었어요. 햄버거랑 콜라랑 떡볶이랑 감자튀김이랑 감자 과자였지요. 아빠는 가끔 차를 타고 멀리 시내로 가서 감자튀김과 콜라를 사 주었지만 나는 먹고 싶을 때마다 먹으러 갈 수 있던 우리 집이 그리웠어요.


 더웠던 날씨가 선선해지자 우리 가족은 집으로 돌아왔어요. 엄마는 짐 정리를 하다가 거실에서 쉬고 있었어요. 오빠들은 친구들을 만나러 밖으로 나갔지요. 나는 혼자서 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다가 배가 고파졌어요. 감자튀김이랑 콜라가 생각났지요. 나는 이제 집에 왔으니까, 나 혼자서도 햄버거 가게에 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나는 평소에 엄마가 외출할 때 해 주는 대로 엘사가 그려진 모자를 썼어요. 엄마가 집에서 나갈 때 갖고 다니던 부채를 들고, 아이스크림이 그려진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어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숫자 1을 눌렀지요. 그리고 아파트 밖으로 나갔어요. 우리 집에서 학교 쪽으로 걷다가 다시 길을 건너고, 또 길을 건너고, 아래로 쭈욱 내려갔어요.


 엄마는 학교에서 나를 데리고 가는 길이 늘 똑같아요. 그래서 그 길을 따라 늘 가던 다이소에 도착했지요. 내가 좋아하는 스티커와 햄버거 장난감을 고르고 계산대로 갔어요. 빨간 옷을 입은 삼촌이 나를 한 번 보고는 그냥 지나갔어요. 나는 엄마가 평소 하던 대로 계산대에 스티커와 햄버거 장난감을 올리고 바코드를 찾아 ‘띡띡’ 찍은 후 물건을 들고 밖으로 나왔어요.


 다음은 내가 좋아하는 햄버거 가게에 갈 차례예요. 나는 노래를 부르면서 빨간색 건물로 들어갔어요. 밖은 더운데 햄버거 가게 안은 신발에 그려진 아이스크림처럼 시원했어요. 늘 하던 대로 창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 스티커를 만지작거리며 창밖을 내다봤어요. 나는 그동안 손도 새까매지고, 얼굴도 새까매지고, 신발도 조금 작아진 것 같은데 우리 동네는 조금도 변한 게 없었어요. 그렇게 우리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시원하게 쉬고 있을 즈음, 평소에 자주 보던 한 이모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나를 보며 깜짝 놀랐어요.


 “서희야, 서희 여기에 있었구나. 잠깐만! 엄마한테 전화 좀 하고.”


 그 이모는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언니! 서희 찾았어요. 여기, 롯데리아! 내가 데리고 있으니까 천천히 와요!”


 전화기 너머로 울먹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엄마가 울면 내가 안아줘야 하는데 목소리만 들리고 엄마가 없어서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이모는 전화를 끊은 뒤 나를 데리고 롯데리아 밖으로 나왔어요. 밖으로 나오자 아빠차도 도착하고, 경찰차도 도착하고, 얼굴이 빨개진 엄마가 울면서 뛰어오더니 나를 안아주었어요.


 “서희야, 여기에 있었어?”


 엄마가 울자 나를 찾아왔던 이모도 엄마를 따라 울었어요. 이모가 우니까 안아줘야 할 것 같은데, 엄마가 나를 꼬옥 안고 있어서 이모는 안아줄 수가 없었지요.

 곧이어 경찰 아저씨가 나를 보고 이름을 물어보더니, 아빠랑 이야기를 나누고는 경찰차에 탔어요. 엄마랑 아빠는 경찰아저씨한테 계속 고개를 숙여 고맙다고 했어요.


 “언니, 어떻게 된 거예요?”

 “짐 정리하다가 거실에서 잠깐 쉬고 있었는데 서희가 없어진 거예요. 분명히 거실에서 놀고 있었거든요. 너무 놀라서 아파트 찾아보고, 관리실 가서 CCTV 찾아봤더니 아파트 밖으로 나가는 게 찍혔더라고요. 그래서 학교 쪽도 찾아보고, 학교 밴드에도 올리고, 경찰에도 신고하고 계속 찾아다녔어요.

 이게 아이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이 사람이 ‘이쪽에서 봤어요.’ 하면 그쪽으로 가고, 저 사람이 ‘아이가 저쪽에서 울고 있어요.’ 하면 그쪽으로 가고.

 분명히 다이소나 롯데리아로 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도 엉뚱한 미용실 앞을 기웃거리고 있더라니까요 내가.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요? 서희가 롯데리아에 있다는 거?”

“아까 전화로 물어봤잖아요. 서희랑 평소에 어디 가냐고. 언니가 롯데리아 간다고 해서 저는 퇴근하면서 바로 여기로 왔죠. 서희 같은 아이들은 가던 곳만 가요. 잘 아는 길만.”


 엄마는 이모에게 고맙다고 계속 얘길 하고는 내 손에 들려 있는 스티커와 햄버거 장난감을 봤어요.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잡고 다이소로 향했어요. 엄마는 가는 동안에도 여기저기 전화를 하면서 "서희를 찾았어요!"라는 말을 했어요.


  “죄송해요. 저희 아이가 이걸 그냥 들고 나온 거 같아요.”

  “아, 저는 어떤 분 옆에서 물건을 들고 바코드를 찍고 있길래 엄마가 계산을 하시는 줄 알았어요. 보통 아이들이 늘 그러니까.”


 엄마는 물건을 사면 꼭 돈을 내야 한다고 알려주고, 스티커와 햄버거 장난감을 사 주었어요. 다음에는 아빠랑 롯데리아에 갔지요. 아빠는 감자튀김과 콜라를 사 주면서 다음부터는 집에서 나가고 싶을 때 꼭 말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차도 많이 다니고, 말없이 나가면 엄마랑 아빠가 걱정하게 된대요. 나는 이제 혼자서도 신발을 신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이소에 가서 스티커도 사고, 햄버거 가게에도 갈 수 있는데 왜 걱정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오빠들도 혼자서 친구들도 만나고 학교도 잘 가는데 말이에요. 감자튀김과 콜라를 먹으며 엄마를 보니 퉁퉁 부은 눈이 평소보다 더 못생겨 보여요. 걱정을 하면 얼굴이 이렇게 못생겨진다는 걸 엄마한테 꼭 말해주고 싶은데, '후룩'하고 마신 콜라가 코끝을 찡하게 만들어서 그 말을 깜박하고 못 했어요.


 그 후로 나를 만나는 동네 사람들은 “네가 서희구나!”라고 나를 보며 웃거나, “서희를 얼마나 찾았는지 몰라요.”라고 엄마에게 말했어요. 엄마가 내 이야기를 학교 밴드에 올리니까 오빠 친구들과 오빠 친구들 엄마들과 학교 선생님들, 나를 아는 동네 학원 선생님들이 나를 찾아다녔다나 봐요.  나는 잠시 나 혼자서 우리 동네를 다닌 것뿐인데 엄마랑 아빠랑 동네 사람들은 나 때문에 많이 놀란 것 같았어요. 나는 감자튀김과 콜라를 먹고 싶은 마음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큰일이 될 줄은 몰랐어요. 나는 우리 반에서만 인기스타인 줄 알았는데, 이제 동네에서도 인기스타가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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