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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로콜리 Aug 13. 2022

나를 바꾸지 않아도, 긍정적이지 않아도 괜찮다.

#14

내가 서른다섯이 되던 해, 유방암이 재발하고 전이되었다는 진단을 받았던 바로 그해에 남자친구와도 깨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불행은 한꺼번에 몰려왔고, 나는 무너졌다. 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너무 막막했다. 내 인생에서 엄청난 사건이 연달아 발생하고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내가 무엇보다 자주 했던 것은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찾아내는 거였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그런 식이었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문제의 원인을 나한테서 찾고, 내 탓을 하며 나를 개선하고자 노력했다. 아무도 나를 동정하지 못하게 애쓰면서 스스로 엄격하게 대했다. 힘들어하는 마음은 무시한 채, 이까짓 것도 극복 못 하냐며 나를 비난했다. 끊임없이 나를 바꾸려고 채찍질했다. 그래야 내가 성장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 일단 "왜?"라는 질문으로 나를 괴롭혔다. "왜?"라는 질문은 생산적인 것 같았다. 이유를 알아야, 그리고 그 원인이 나에게 있어야 내가 무언가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욕심이 많아서? 별로 착하지 않아서? 부모님께 상냥한 딸이 아니라서? 이렇게 된 이유는 내가 그동안 잘못 살았기 때문일까? 그래서 벌 받는 걸까?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마음을 건강하게 관리하기 위해 명상센터에 다니고, 몸을 건강하게 관리하기 위해 요가 학원에 다녔다. 마음 씀씀이를 넓히기 위해 여러 재단에 정기적으로 기부하고, 폭넓은 인간관계를 위해 다양한 모임에도 나가며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내가 얼마나 자존감이 높은지, 얼마나 행복하고 완벽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그러면서도 따뜻한 마음씨도 갖추고 있다고 증명하려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암에 걸렸다. 요즘은 2030 암 발병이 늘고 있다지만,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암에 걸린 사람들도 꽤 있지만, 그래도 30대 암 환자는 젊다. 항암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면 항상 내가 제일 어렸다. 내 친구들은 아직 건강했고 대부분 결혼했고 아기도 낳아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렸다. 나는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이렇게나 노력했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과연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내가 자주 들어가는 유방암 인터넷 카페에는 평생 살면서 술, 담배는 입에 대지도 않고 운동 꾸준히 하고 치킨이나 인스턴트 음식 같은 거 좋아하지 않아서 거의 먹지 않았는데 유방암에 걸렸다는 글이 꽤 있다. 그렇다고 유전도 아니란다. 그럼 스트레스인가? 현대 사회를 살면서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들 대부분이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일단 자기 탓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결혼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사회에서 정한 결혼적령기를 조금 지난 거 같다. 이 나이까지 결혼 못 한 것이 내 잘못인가? 성격이 소심해서? 외모가 딸려서? 그렇다면 결혼한 모든 사람은 성격도 외모도, 또 그밖에 다른 조건들이 다 완벽한가?


우리는 살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을 끊임없이 듣는다. 하지만 지금 내 상황이 개떡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걸까?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하겠지? 억지로 감사일기를 써보며 강박적으로 긍정적일 수 있는 거리를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어려운 순간에 긍정적이지 못한 나를 또 탓하며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다.


“무슨 잘못을 했다고 암에 걸린 게 아니에요. 암은 교통사고 당한 것과 같아요. 나는 가만히 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서 오던 차가 내 차를 들이받는 상황 같은 거죠. 그저 운이에요.”


어느 날, 의사가 이런 말을 했다. 그렇다. 내가 암에 걸린 것도, 그로 인해 남자친구와 이별하고 파혼하게 된 것도 내 잘못이 아니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의 꽉 막힌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내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었다.

부정적인 생각을 억누르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오히려 그 생각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부정적인 감정에 더 많이 사로잡히자 나중에는 그런 감정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무조건적 긍정은 내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얼마나 힘든지 헤아릴 기회를 잃게 만들었다. 기쁠 때는 충분히 기뻐하고, 슬플 때는 마음껏 울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 살다 보면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럴 때 기쁨, 사랑, 고마움 같은 감정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슬픔, 미움, 두려움, 분노, 욕망 등도 느낄 수 있다. 인간으로서 이 감정들을 모두 느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감정에는 거짓이 없고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더 이상 나에게서 문제를 찾는 짓을 그만두기로 했다. 더 이상 애써 긍정적으로 되려고 노력하지도 않기로 했다. 대신 힘든 순간이 올 때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기로 했다. 인간은 사실 약하고 불안정한 존재이며,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오늘은 운이 좋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느끼는 감정들은 지극히 당연한 거라고. 나를 바꾸지 않아도,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에게 혹독하며 너무 열심히 살고 있다. 그런데 상처받은 순간까지 자기 자신을 고문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사건, 사고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생각들이다. ‘나는 너무 욕심이 많은 게 문제이다’ ‘별로 착하지 않은 게 문제이다’ ‘성격이 소심해서 그렇다’ 이런 생각들 말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그에 따른 어떤 감정이 올라온다면, 그 감정을 단순한 느낌으로 보자. 내 생각을 집어넣지 말고 그냥 가만히 놔두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 감정들은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화살을 나에게 돌리는 대신, 아픔을 온전히 느끼며 나에게 잘 대해주자.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면 자신을 억지로 북돋거나 다른 사람에게 증명해 보일 필요도 없다. 정말 내가 괜찮으므로 억지로 긍정적일 필요가 없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이해해주자. 지금 내게 닥친 불행이 내 잘못이 아니라 그저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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