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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가 부러웠어. 너는 엄마가 있잖아.

두번째 손님. 7살 송아지가 부러운 아이

by 제롬 Jan 27. 2025

이제 드디어 출발.


마음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 내 기억 어디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출발하려다 보라돌이의 말이 생각이 났다. 그곳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고 창조의 공간이라고 말했다. 내가 가야 할 공간도 몸이 만들고 몸이 기억하고 있는 공간이었다. 사실기억이 아닌 의미기억이라고도 말했다. 중요한 것내가 부여한 의미, 즉 내가 만들어 낸 지각을 찾아가는 것이다. 눈을 감고 찾아가 보았다. 느껴보았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 내 몸에는 공간이 생깁니다.
모두 내 몸 안에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내가 창조한 공간입니다."



보라돌이는 상담을 하는 동안 '내가 만든 것'임을 강조했다. 내가 만든 것이니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이고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자기 자신이라고 했다. 그건 누가 대신 해 줄 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자기 자신 말고는 정말 원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말까지는 믿지 못하더라도 '내가 만들었다는 것과 원하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동의하는 것과 내가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오는  괴리감에 나는 계속 힘들고 혼란스러웠다. 그건 다른 말로 하면 '내 삶의 주인은 나다'라는 식상한 말이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럼에도 우선 해보자.




운전대를 잡고 나는 해맑은 7살 아이와 할머니를 태우고 그 지점으로 갔다. 내 몸과 마음안의 내가 만든 공간으로. 운전대를 잡은 내 마음이 울렁인다. 첫 번째 손님으로 할머니를 태운 것은 잘한 일이지만 마음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내가 할머니를 태우고 싶었던 것은 못한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 해맑아 보이던 7살이었지만 못다한 말이 있었다.


옛날 시골집은 마당을 가운데 두고 작은 외양간이 있었다. 나는 마루에 앉아 소를 바라보거나 외양간 바로 앞에 앉아 땅바닥에 그림을 자주 그렸다. 소의 긴 속눈썹과 맑은 눈을 자주 보며 말했다. '너 속눈썹 엄청 예쁘다. 눈은 엄청 맑아!' 그러던 어느 날 소가 송아지를 낳았다. 넉넉지 않은 시골에서 소는 큰 재산이었다. 소를 팔아 대학에 보내던 시절이었다. 송아지는 일주일이 지나 팔려갔다.


송아지를 잃은 소는 밤새 울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소에게 가서 '야, 시끄러워 왜 그렇게 울어!'라고 화를 냈다. 그때는 새끼 잃은 어미 소의 슬픔을 짐작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지나가는 말로...


'소가 지 자식을 잃어도 저렇게 우는데......'


몇 가지 되지 않는 어린 시절의 기억 중 하나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날 이후 '소만도 못하다'는 '의미기억' 하나를 만들었다. 송아지가 부러웠다. 너를 위해 울어주는 엄마가 있잖아.


그 이후로 내가 자각을 하든 안하든 수치심과 죄책감이 무섭게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주변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따라 잘 맞추어 살아갔다. 내 감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보다 중요해 보이는 것들이 수없이 많아 보였고 그것들을 해 나가기도 버거웠다.


이제야, 지금 여기에서 '어린 나의 감정'을 가장 우선으로  만나러 간다. 나의 공간 안으로..





너무 놀라 아무 말도 못 하고 괜찮은 척하는 7살 아이가 아니라, 지금의 내가 손잡고 그곳으로 가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옆에 있어 주었다. 그 아이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할머니: (한숨이 터져 나온다. 으그) 저 소도 지 자식을 잃었다고 저렇게 우는데....


7살 나: 할머니도 나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픈 거지? 엄마도 나를 두고 집을 나가서 슬플까요? 내가 송아지 만도 못한 것은 아니겠지?


할머니: 당연히 아니지. 그럼 마음이 아프지? 이렇게 예쁜 새끼를 두고 집을 나가서 매일 자라는 모습을 못 보니 얼마나 슬프겠어. 하지만 그 덕에 할머니가 매일 볼 수 있으니 할머니가 복 받았네.


7살 나: 나도 할머니가 좋아. 할머니가 있어 줘서 고마워. 정말. 무엇보다 좋은 건 할머니가 부엌에서 밥을 하다가 내가 오면 '우리 쐐깽이'라고 불러주면서 안아주었을 때야.


할머니: 그런 건 매일 해줄 수 있지. 우리 쐐깽이.


꼬부라진 허리를 가진 진짜 '꼬부랑 할머니'. 꼬부랑 할머니가 나를 꼭 안아준다. 박창례 할머니.





글을 쓰며 너무 눈물이 나 당황스러웠다. 상담자에게 기대어 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린 나'를 안쓰러워하며 눈물이 날지 몰랐다. 보고 싶지 않았고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엄마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 하느님이 보내준 사람이 있다면 할머니였다. 시골의 거친 어른들에 비해 할머니는 다른 사람을 험담하지 않았다. 하다 못해 엄마에 대해서도 한 번도 나쁘게 말하지 않았다.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지금 성실하고 따뜻한 내면을 가졌다면 그건 할머니의 온기가 내 안에 머물기 때문이다.



아니다. 아니다.

좋게 훈훈하게 마무리하는 게 다가 아니다.ㅜㅜ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해야 한다.




나의 공간안에서 지금의 나와 아이는 만났고 다시 얘기를 나눈다.


성인자아(운전자): 그래, 고맙지, 그런 할머니가 옆에서 따뜻하게 보살펴 주었구나. 그럼에도 그 말은 너무 아프고 슬펐을 거 같아. 어땠어?


7살 아이: 너무 놀랐고 당황스러워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너무 창피했어요.


성인자아: 그래, 그럴 수 있지. 창피했구나. 할머니의 혼잣말을 들었구나. 그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어?


7살 아이: 나는 송아지만도 못해서 버림받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인자아: 그랬구나. 송아지만도 못하다는 생각을 했구나.  버림받았다고. 그래서 창피했구나. 그렇게 수치스럽다는 감정을 갖게 되었구나.


7살 아이: 그땐 그게 뭔지 몰라서 그 느낌을 피하고만 싶었어요. 너무 끔찍하고 무서운 느낌이여서 조금이라도 느껴질라치면 머리를 흔들었어요. 그 뒤로 자주 생각이 났고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생각이 들 땐 가만히 눈을 감았어요.


성인자아: 그랬구나. 그래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구나. 그러면 어땠어?


7살 아이: 좀 차분해지고 진정이 되는 것 같았어요.


성인자아: 스스로 진정하는 방법이었구나. 잘했네. 눈을 감고 견디는 방법을 썼구나. 차분하게. 지금 우리가 만나는 공간 같은 거네. 우리 마음속의 창조의 공간처럼 눈을 감고 그 안에서 차분하게 만든 거네. 지금의 나도 이런 공간에 머무는 게 어려운데 너는 그때부터 그걸 했구나.


7살 아이: 그랬어요. 할 수 있는게 없으니까.. 그러면 뭔가 몰아치는 느낌이 잠잠해 지곤 했어요.


성인자아: 그 이후로도 너는 그런 말을 자주 했잖아. 왜 태어나는지 모르겠다고. 매일이 견디는 삶인데 왜 사람이 태어나는 거지?라고 자주 물었잖아. 이제 이해가 된다. 어린 나이에 왜 그런 질문을 자주 했는지..


7살 아이: 맞아요. 나는 자주 혼자 있을 때면 궁금했어요. 외롭고 쓸쓸한 기분이 들 때면 이상했어요. 풀잎도 나무도 시냇물도 편안해 보이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지? 힘들려고 생명이 태어날 리가 없을 텐데.. 그래서 그때는 내가 왜 태어나서 힘든 건지가 궁금했어요. 알 수가 없으니 그냥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어요.


성인자아: 맞아. 나도 자주 눈을 감고 있던 너를 알고 있어. 깊고 깊은 숨을 쉬며 눈을 감더라.


7살 아이: 네. 눈을 감고 숨을 크게 쉬고 나면 좀 나아졌어요. 그리고 저는 이상하게 또 바로 기분이 괜찮아지더라고요. 그냥 애들하고 또 신나게 놀았죠.


성인자아: 그래.. 알고 있어.. 네가 얼마나 해맑았는지.. 나는 잘 기억하고 있어. 가끔 그 기억으로 내가 살 수 있었어. 니 덕분에.


7살 아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성인자아: 나는 커서도 생각이 많아지면서 울적해질 때가 많았거든. 그럴 때 네가 했던 것처럼 눈을 감고 호흡을 했어. 그러면 나도 좀 여유가 만들어지더라. 그리고 7살 그때처럼 해맑던 나를 떠올리면 근심이 좀 작아지고 기분이 나아지더라고. 그걸 기억하고 있 게 참 다행이지 않아?


7살 아이: 그래요. 참 잘했어요. 우리는 어쩌면 같은 시공간에 공존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성인자아: 맞아. 적어 너는 늘 같이 있었어. 어쩌면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지. 네가 있어서 고맙다. 처음으로 말하는 것 같아.. 고마워..


7살 아이: 나를 만나러 와주고 나에게 물어봐 줘서 고마워요. 이 말을 꼭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다행인건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말하고 있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이 모든 걸 알겠어요.


성인자아: 그래, 알 수 없지. 차마 할 수가 없는 말이지. 버림 받은 기분을 말하는 게 어디 쉽겠어. 수치심을 말하는게 어디 싶겠어. 우리가 오늘 처음 만나서 우리만의 공간에서 얘기를 했는데,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날 수 있어. 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나를 불러. 이 오래된 마음은 언제든 다시 올라올 거야. 그럴만큼 크고 소중한 감정이거든.


7살 아이: 크고 소중한 감정이라고요. 부끄럽고 없어져야할 것이 아니라요?


성인자아: 어, 사실 나도 몰랐는데 감정 중에 그런건 없는거 더라구. 감정 아래에는 본심이 있어서 감정자체가 표면마음이면 본심은 말 그대로 본래의 마음이래. 정말 원하는 본래의 마음. 니가 원하는 건 어떤 거야?


7살 아이: 내가 원하는 건, 내 곁에 엄마가 있든 없든 나도 한 생명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내가 아는 거예요.


성인자아: 똑부러지네. 니가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구나. 너도 한 생명으로 소중하다는 것. 너는 소중한 아이라는 걸 느끼고 싶었구나. 얼마전 보라돌이 상담사가 상담중에 너를 찾아가 그 마당에서 말해주었을 때 '너는 싫다고 그냥 니가 없었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었잖아' 그 말을 듣고 나는 너를 이해했지만 무기력해졌었어. 무슨 말을 해도 변할 것 같지 않게 느껴졌거든. 그런 니가 먼저 말을 해주다니...


7살 아이: 보라돌이 상담사 아저씨의 말은 맞는 것 같아요. 다른 누가 해준다고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성인자아: 그래 니 말이 맞다. 니가 나보다 낫다. 솔직하고 분명하구나. 니가 정말 원하는 것은 내가 오는 것이었구나. 많이도 오래도록 기다렸겠다.


7살 아이: 딱 40년...


성인자아: 그래 그래... 너는 인내심도 남다르다. 니가 살아온 시간보다 그 긴 시간을 어떻게 기다렸니?


7살 아이: 한없기도 했고 한점같기도 했죠.


성인자아: 보라돌이 상담사가 어린아이는 성인(saint) 이라고 했는데 맞네... 너는 그냥 아이가 아니네.. 나는 너를 만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 내가 감당할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그랬어. 미안해.


7살 아이: 알죠. 왜 못왔는지.. 이제 언제든 말할 수 있다는 게. 이 마음버스 안에는 제가 처음 탄 거죠. 아무 데나 앉으면 되나요?


성인자아: 그럼, 제일 좋은 곳으로 네가 앉고 싶은 곳에 앉으면 돼. 너는 첫 손님이야.(할머니가 손님인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7살 아이: 우선, 운전석 바로 뒤.


성인자아: 그래, 잘했어. 그 자리는 나도 제일 좋아하는 자리인데. 잘했어. 바구니엔 사탕도 있어.


7살 아이: 맛있겠다. 스카치캔디. 이건 할머니도 좋아하던 사탕이네. 그럼, 출바알~!!





가장 긴 거리가 머리에서 가슴 까지라는 말처럼 내 몸 안의 공간. 여행은 길고 멀었다. 하지만 가까웠다. 어리둥절, 혼란, 시원, 뭔지 모를 가벼움이 있다.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면 이 순간이다. 어딘지 모르게 시원하다. 그거면 된 거겠지.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뭔지 모르게 시원하지만 이해가 어려운 첫 번째 여행은 여기서 끝. 여행은 역시 다녀오면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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