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주제: 불안
‘몸은 기억한다’는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을 적은 책이다. 책에는 마이어오아 셀리그먼 연구진은 전기 충격을 받은 개 실험을 소개한다. 우리에 갇혀 있는 개들에게 고통스러운 전기 충격을 반복해서 가하고 문을 열어 놓았을 때 달아날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피할 수 없는 충격’이라고 명명했다.
전기충격까지는 아니더라도 ‘피할 수 없는 충격’처럼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다.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들을 몸은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와 힘들게 헤어진 경험이 있다면 그 계절과 날씨가 되면 마음이 허전해진다거나, 어른에게 혼난 경험이 있다면 비슷한 어른의 표정만 봐도 긴장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좋아했던 사람의 향기가 느껴지면 친근감을 더 느낄 수도 있다. 나는 새 학기에 반응을 한다. 새 학기가 시작될 쯤이면 불안이 증폭되었다. 잠도 못 자고 힘들었지만 그냥 참고 견디었다. 별다른 방법이 있는 줄 몰랐다. 상담을 공부하고도 한참이 지난 후에 트라우마 상담치료 분야를 알게 되었다.
내가 새 학기를 시작하기 전에 느끼는 불안은 고통에 가까웠다. 새로운 아이들과 학부모를 만나야 하는 부담 때문만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할머니에게 맡겼던 나와 오빠를 엄마는 방학에 데리러 왔다. 방학에는 엄마가 있는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가고 함께 생활했다. 그리고 개학 전에 할머니께 돌려보냈다. 나는 방학이 오는 것을 손꼽아 기다렸다. 엄마를 만날 수 있고 함께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방학이 다가오는 것은 천국이 가까이 오는 것 같았고 개학은 지옥에 떨어지는 것 같았다.
방학에 엄마와 함께 있는 것은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문제는 헤어질 때이다. 엄마와의 만남을 손꼽아 기다리고 함께 있는 것 만으로 좋았던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헤어지는 게 죽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때 6년간의 이런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면서 나의 불안은 일 년에 두 번 최고치를 찍고 내려오고 다시 올라가곤 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피할 수 없는 충격’ 같은 것이었다.
나는 선생님 되었다. 평생에 걸쳐 방학과 개학을 일 년에 두 번 겪는다. 이제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몸의 긴장이 내려가지 않았다. 내가 경험한 인지행동주의 상담과 트라우마 상담의 차이는 몸을 이용하느냐 이다.
트라우마 치료에서는 몸을 중심에 두고 시작한다. 힘든 상황을 떠 올 리 때 몸이 보여주는 반응들에 주목한다. 숨 쉬는 모습, 표정, 움직임, 소리 등 자각하게 안내한다.
촉진자: 개학을 생각하면 어떤가요
나: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것 같고 멍해져요.
촉진자: 몸의 어느 부분에서 그 그 감정이나 생각을 느낄 수가 있나요?
나: 가슴 가운데 죽순처럼 굵고 강하고 짧은 것이 박혀 있는 것 같아요. 머리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이 멈춰있어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어요.
촉진자: 가슴에 박힌 죽순 같은 것을 가만히 느껴볼까요. 죽순이 박힌 건 지금의 내가 아니에요.
나: 네
촉진자; 지금의 내가 죽순 같은 것이 박혀서 아파하는 그 아이를 가만히 바라볼게요. 느낄 수 있는 만큼 천천히 바라볼게요.
나: 네.
촉진자: 어떤 기분이 드나요?
나: 불쌍하고 안쓰러워요.
트라우마 치료는 회복하는 것이다. 그 사건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고 흘러 보내는 것이다. 나는 지금의 나와 어린 시절 개학을 앞두고 고통을 느꼈던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가슴으로 느끼고 있던 어린 내가 있었다. 그럴만하다고 잘 견뎌왔다고 마음으로 위로해 주었다. 그러고 나니 좀 숨이 쉬어졌다.
트라우마 치료를 시작할 때 그라운딩을 한다. 그라운딩은 다른 상담분야에서도 사용하는 방법이다. 발을 바닥에 붙이고 발바닥이 바닥을 느끼며 감각을 안정화시키며 자각하는 방법이다. 바닥을 지구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지구의 자기장의 힘을 발을 통해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라운딩을 했을 때 나의 몸의 반응을 느껴보는 것이다. 다리를 꼬고 앉아 있을 때와는 다르게 주는 안정감이 느껴진다면 편안하게 호흡하면 된다.
여러 이유들로 긴장, 불안이 느껴질 때 또는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가벼운 호흡과 그라운딩을 하면 좋다. 가볍게 호흡을 하면서 발이 바닥에 닿은 느낌을 느껴보는 것이다. 불편이 더 커질 수도 있고 안정감이 더 느껴질 수도 있다. 무엇이든지 그럴 수 있다. 이상하네, 왜 그렇지 의문이나 걱정이 올라오면 그대로 느끼며 마음으로 호흡을 한다. 이상할 수 있지, 불편할 수 있지라고 속으로 말하며 호흡을 하면 더 좋다. 오늘따라 더 편안하면 기분 좋은 느낌을 가슴에 담으며 호흡하면 된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중심을 잡고 안정감을 갖는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