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ED Oct 24. 2021

엄마에게 쓰는 편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눌러쓰는 전달되지 않을 혼잣말

-1번 엄마


안녕, 엄마.

만약 이 세상을 FM대로 살아야 한다면 시작부터 FAIL.

효와 부모 공경이 으뜸 덕목인 우리나라에서 천륜이라는 끈은 시작부터 쉽게 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내게 가르쳐준 존재. 당신이 꼭 살아있길 바랍니다. 만약 살아있다면 이 지구 어딘가에서 재혼을 해서 혹은 혼자서 살아나가고 있겠죠. 당신은 사랑을 좀 받고, 사랑을 좀 주면서 살고 있나요?

세상의 어느 포유류도 자기가 낳은 새끼는 버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좀체 계란 한 판이 넘은 나이가 되어서도 나는 이해가 안 갑니다. 내 배로 낳은 새끼를 궁금해하지도 않고 인생이 좀 재미나신지요, 윤택하게 살아나가고 계신지요.

당신에게 받은 유전자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게도 나는 인간에게 있어서 자식이란, 존재 자체만으로도 무. 한. 한. 사랑을 받아 마땅한 생명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자식이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군요. 어쩌면 당신은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받지 못해서 그랬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무식은 무지를 대물림합니다. 당신은 나 말고도 또 사랑하지 않을 자식을 낳았을 지도 의문입니다.

나는 당신이 약간은 궁금하고, 또 약간은 궁금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나의 태몽이 뭐냐고 물을 때 당신에 대해 떠올리고, 내 얼굴의 모습과 체형과 기저질환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야 할 때 당신이 궁금하고, 비자 서류를 준비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당신의 이름 세 글자에 문득 궁금하다가, 이제는 더 이상 엄마라는 존재가 필요 없는 나이임을 자각할 때 별로 존재가 궁금하지 않습니다.

다행히도 나는 당신 없이도 잘 살아남았습니다.

당신에게 있어서 그것은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 있을지도 모르는 무언의 마음의 면죄부일 테니까요.

우리가 삶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루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기초적인 것이며 대개 유년기에 인과 관계를 증명하는 엄마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배웁니다. 당신은 당신네 엄마에게 무얼 배우고 자라난 사람인가요. 내게 부정적으로라도 반응해 줄 사람이 없다는 재앙을 선사함과 동시에 그것을 신속히 깨달을 지적 능력을 주신 것에 대해 수긍합니다. 덕분에 나는 어린 나이에 이미 부유함과 똑똑함이 인간에게 있어 얼마나 종잇장 같은 무기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제 당신에게 악한 감정이 없습니다.

그것 또한 당신에게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버림받은 애들은 질척거리는 혐오감을 갖게 마련이죠.

당신에 대해 알게 된 지난 8년 동안 찾아볼 노력은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10대였다면 당신이 너무도 찾고 싶었겠지만, 지금 내 친구들은 엄마가 되기 시작했고 나는 더 이상 나를 낳아 준 사람이 누군지 따위에 시간을 쓸 사람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혹은 이미 나는 알았는지도 모르겠네요. 내 인생에 있어서 그런 '엄마'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아니면 여린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돈 얼마쯤 쥐어주면 언제든지 당신이 어디서 무얼 하는 사람인지 찾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렇지만 그 얼마간의 돈은 그냥 멋진 코스요리 사 먹는 데에 쓰고 내친김에 팁도 챙겨주고 싶습니다.

때때로 한 번의 선택은 인생의 방향을 한 번에 바꾸어 놓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어떻게 살건 어떻게 살 예정이건 신중하지 못했던 한 때의 어리석음은 평생, 그리고 죽어서도 속죄하시길 바랍니다. 그게 당신의 판단이었든 아니었든 당신이 한 선택의 증거가 여기에 이렇게 있고, 인생의 업보는 당신에게 돌아갑니다.

난 당신이 내게 남겨준 눈에 보이지 않고 설명할 수 없는 생채기들 속을 헤쳐왔고, 그 짧은 순간들이 내 인생 전반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내가 앞으로 아이를 낳지 않고, 아이 없는 삶을 산다면 그건 어쩌면 당신이 뱃속에서부터 알알이 남겨준 기억들 덕분일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숙제이고 내가 해결해야 할 내 문제입니다. 당신의 역할은 더 이상 없습니다.

안녕, 나의 생물학적 엄마.



-2번 엄마


안녕, 엄마.

마지막으로 내게 남겼던 그 메시지를 기억하시겠죠. 그 간단한 텍스트에서조차 비겁하고 졸렬한 당신은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당신의 자아가 주름진 얼굴과 세월에 나약해진 몸과 비틀거리는 정신을 애석해합니다.

내가 평생 자라지 않을 줄 알았거나, 아니면 너무나 순진해서 당신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는 가스라이팅에 효과적인 아이로 자라났거나, 혹은 당신이 만든 시나리오대로 순탄하게 자랄 수도 있었을 테죠. 안타깝게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습니다. 다 큰 코끼리가 쇠사슬을 뜯고 나갈 때, 당신 속에 존재하는 양심은 뭐라고 말을 하던가요.

사람은 각자 자신의 인생이 가장 불행하고 가장 불쌍해서 자신의 입장밖에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당신 혼자만의 문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경험했던 어려움을 수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고, 미래에도 겪을 것입니다. 당신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엄마가 처음이었고, 나도 계모가 처음이었습니다. 나는 당신 마음에 들지 않던 딸의 모습일지언정 최악의 딸은 아니었음은 당신도 인지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기대했던 동생을 살뜰히 챙기고, 얌전하고 성숙하며, 순진하고, 사고를 안치며, 거짓말을 절대 하지 않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죠. 있는 그대로의 저의 모습은 그 나이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보통 아이의 모습이었습니다. 동생에게 질투하고, 학원 가기 싫어하고, 문방구 물건을 훔치다 걸리고, 친구들이랑 매일 놀고 싶어 하고, 거짓말하다 걸려서 반성문을 쓰고, 숙제를 종종 안 하고, 심부름을 하고, 다음날이면 쾌활한 그런 보통의 아이.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이 내게 당신의 말은 이 세상의 절대 법이었고,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엄마를 너무 사랑했고, 너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실망시키기 싫었고, 어떻게 해서라도 칭찬을 받고 예쁨을 받고 싶었습니다. 정말 사랑받고 싶었습니다. 캠프파이어에서 어머니 얘기가 나오면 늘 펑펑 우는 아이였고, 엄마 생일날 선물 고르는 게 즐거웠고, 엄마와 함께 쇼핑이라도 가면 행복했습니다. 나의 과장되고 거짓된 표정 연기를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런 스타일, 그런 색깔을 좋아한 적이 없습니다. 비록 내가 원하는 옷이 아니더라도 기쁜 척 행복한 척했습니다. 엄마가 골라준 옷이니까.

그런데 나의 타고난 천성은 내가 감추고 가면을 쓴다고 감춰지는 게 아니었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은 늘 엄마의 외면을 당했죠. 그저 밝고 덜렁대고 활발하고 뺀질대고 인사성 바르고 긍정적인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동생은 나랑 대체로 정반대였고, 여느 남매가 그렇듯 우린 자주 싸웠습니다. 동생보다 시험운이 좋은 내가 꼴보기 싫었나요 아니면 동생을 종종 놀리는 내가 꼴보기 싫었나요. 아님 동생보다 인내심이 많아 무언가를 성취하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드셨나요. 늘 비교했다는 사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해합니다. 난 남의 자식이니까. 내가 남의 자식을 키워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시어머니에 대한 불만은 왜 저한테 풀었나요? 아빠에 대한 원망과 비수를 왜 저한테 꽂으셨나요? 아빠를 닮은 내 모습이 꼴보기 싫었나요? 내가 무언가 아주 나쁜 아이라고 생각했고, 눈치 보는 법을 습득했습니다. 

엄마 덕분에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기보다 싫어하는 방법을 먼저 배웠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니 내가 이 세상의 절대법처럼 여겼던 엄마의 말이 틀린 점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습니다. 그것은 내게 지진이나 화산 폭발만큼이나 격렬한 지각변동이었습니다. 

엄마는 '너가 감히'라는 말을 가장 많이 썼습니다. 기억은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엄마는 우리 셋 중에 나만 성을 붙여서 이름을 불렀습니다. 누구든 인간관계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을 자기 맘대로 할 권리는 없습니다. 다만 그것도 당신의 사랑의 표현 중 하나이긴 했을까요. 좋은 이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알겠더군요. 엄마라는 이유로 존경이라는 타이틀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도 널 키워준 엄마인데, 그러면 못 쓴다"

이런 말을 제게 하는 사람이 여전히 있습니다.

어쨌든 니 상황은 딱하지만, 자신의 값비싼 효심을 어필하려는 작자들이 있습니다. 혀는 입 안에 든 주먹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겠죠. 힘이 없고 판단력이 없는 아이를 몽둥이로 때려야만 학대가 아닙니다. 당신이 나를 키워 준 20년의 세월이 바로 '학대'입니다. 가해자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피해자는 단어 한마디 한마디까지 묘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폭력입니다.

아직 당신이 내 꿈에 나옵니다. 24살 때는 매일을 정신과 약을 먹어도 당신이 나와서 날 죽이지 못해 괴롭히더니, 지금은 반년에 한 번씩 나옵니다.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용서하라고. 그게 널 위한 길이라고. 그러면 저는 물어봅니다. 그런 엄마를 겪어본 적이 있냐고. 두 번 버림받아 본 적이 있느냐고. 아 세 번인가요.

당신이 내게 못할 짓만 한 것도 아니고, 보통의 엄마들처럼 해준 것들도 간혹 있지만 내가 왜 이런 것들만 간직하고 있냐면 내 마음속의 무언가가 죽어버려서일 겁니다. 인간은 긍정적인 파장보다 강력하게 부정적인 파장을 기억해냅니다. 당신과 함께 지냈던 시간들은 나와 같은 아이들을, 그리고 당신과 같은 여자들을 딱하게 여기는 마음을 키워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무감각해졌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아직도 사랑을 주는 법을 모릅니다. 당신이 내게 사랑을 주는 척 연기했던 것처럼 나는 사람들의 감정을 믿지 못합니다. 당신이 내게 엄마라면 절대 해서는 안될 말들을 했듯이, 나는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될 차갑고 냉소적인 말들을 나의 수많은 관계들에게 쏟아냅니다. 끊임없이 사랑받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가 이 속에서 자라지 못하고 발버둥 치는 모습을 매일 마주합니다.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23살에 홀로 5만 원짜리 용달차를 불러 집을 뛰쳐나올 때 침대 위에 올려 둔 편지에 이렇게 써둔 것 기억하시겠죠. 10살부터 유관순도 아닌 저의 소원은 독립이었고, 매일 나가라고 한 당신 덕분에 13년 만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루게 되었습니다. 정신적으로 불구를 만들어서 세상에 던져놓았지만, 그래도 좋은 외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기에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민을 와서도 잘 살 수 있는 이유는 어쩌면 당신 덕분입니다. 가족이라는 끈이 제게는 아주 끈끈하지는 않습니다. 냉정하고 험한 사회생활 속에서 싹싹하고 눈치 빠르게 행동해 어딜 가서도 일 잘한다는 소릴 듣는 데에는 당신 몫이 분명 있습니다. 웬만한 욕이나 비판이나 남의 시선에는 아무 영향조차 받지 않는다는 사실도 당신이 일조한 바가 있습니다. 고급스럽게 가르친 식탁예절부터 건강식 위주의 식단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도 지금의 저에게 아주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당신이 내게 이십여 년을 쏟아내었던 업보를 부디 잘 끌어안고 살아내길 바랍니다. 여기 그 업보의 결과물이 평생 살아 숨쉽니다. 약한 사람은 복수를 하고 강한 사람은 용서를 합니다. 나는 당신을 무시합니다.

잘 지내길 바랍니다.

안녕, 나를 23년 동안 키워준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