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를 참 좋아한다. 우선적으로 피곤함이 항상 가득할 때 어떠한 커피라도 안 먹으면 쏟아지는 잠을 참을 수가 없었고 이를 계속, 지속해서 먹다 보니 안 먹으면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일종의 커피는 휴식과 즐거움이 아니라 각성제와 같은 약이 되어있었다. 과거에는 커피의 향이나 맛을 즐기기보단 우선 먹고 보자 하는 삶의 형태였기에 그 향과 맛을 즐길 수가 없었으나 지금 와 생각하길 무엇을 위해서 그 많은 것들을 먹어왔을까. 나는 오늘날에 들어 카페라테를 먹으면서 커피와 우유가 함께 있으므로써 주는 고소한 풍미와 쌉쌀한 커피와의 후각과 미각을 느껴보게 되었다. 또한 커피 그 자체만으로도 느낄 수 있는 맛을 느끼게 되었다. 하나만이 가질 수 있는 멋진 그 자체로도 존재하는 부분이 있으나 서로 다른 성질의 두 가지가 만나 생각보다 멋진 무엇이 되었다. 그로서 느끼는 감정은 휴식과 편안함, 이로 인한 행복감에 도취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작품을 감상하는 것, 음식을 먹는 것, 노래를 듣는 것과의 예술의 모든 분야는 이렇게 안식을 가져다준다.
후유증
지금 와 생각해보니 무엇을 좋게 해석할까. 지난 과거, 그 오래된 시간 동안 나는 모든 것들을 혼자 해결하며 살아왔다. 내 기억이 바르게 작용한다면 나는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이 싫었다.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건 좋은 것일까.
어느 날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을 이제와 다시 중간의 단계를 거치고 다른 과정을 거친 후 돌아와 보니 어떠한 것이 더 좋았는지 알게 된다. 그렇게 인간은 ‘선’을 ‘선’이라 해석하지 못하고 ‘악’을 ‘악’으로 해석하지 못한다. 그 상황에서 벗어나 다른 세상을 살아봄으로써 무엇이 ‘악’하고 무엇이 좋았던 것인지 알게 된다. 결과는 남는다. 내가 힘들게 이뤄낸 무언가는 어떠한 결과로써 남기 마련이니깐. 아픔이 후유증이 되어 남는 것처럼, 좋은 것도 남게 마련이니깐. 아픔이 후유증이 되어 남는 것처럼. 좋은 것도 남게 마련이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의 강물을 마시기에 아픔과 슬픔을 잊어버린다.
그러나 그것은 몸에 남는 무언가 이기에 정신은 그것을 잃어버려도 몸에는 그 기억의 상처가 남게 된다. 그 자리에는 또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 또는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나는 모르게 진행되는 일처럼. 인간은 ‘악’하다. 3명. 내 기억이 맞다면 다른 곳에서 다른 내가 아는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발견한다. 내 주의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발견하는 기분이다. 한 명, 그 엄마, 그 가족, 그 가족들의 가족들, 세상 모두가 적으로 보인다.
자유로움과 오만 사이.
‘오만하다.’라는 단어에 잠시 생각에 접어들며 오만이란,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거나 거만함.이라고 한다. 여기서 오만에 접근해보며 오만이란, 뭘까?
상대성을 지니고 있는 그 오만함에 기본적인 예의는 무엇일까. 내가 보았을 때 오만이라 평가하는 그 누군가 더 오만하지 않을까. 인간은 자유로움을 억압 당 할 때, 불편함 감정을 지닌다. 또한 인간의 습관은 변화되지 않기에, 인간의 ‘무지’,’ 편견’에 치우친 삶을 살아가는 것에 조심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망각되고 인간은 지속적으로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그 또한 습관이다. 그러나 이는 망각되고 인간은 지속적으로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그 또한 습관이다. 변한다고 변하지 않는 성질, 그 고유가 가지고 있는 본성. 처음에는 아무런 본성이 없는 ‘무뇌’의 상태이지만 그 이후의 행동들은 쌓여 습관이 된다.
무엇이든 지속적으로 하게 되면 습관은 형성된다. 때로는 알지 못함이 얼마나 무지한 소산인지 깨닫게 된다. 인간의 사회적, 정서적 발달에서 영아가 되면 정신은 급속하게 발달하게 된다. 출생 후 3개월이 되면 불쾌와 만족의 분화되고 6개월부터는 분노, 혐오, 고통 등으로 분화된다. 12개월이 되면 만족에서 분화된 애정과 의기양양이 나타나게 된다.
나는 모르고 너희가 아는 그 무언가, 지금까지 그 과정에서 그때 그 이후로 지속적으로 연결되는 기분을 지을 수가 없다. 벗어나지 못하는 건 나 일까. 또는 내가 잘 못 느끼고 있는 것 일까. 내가 잘 못 느끼고 있는 것 일까. 내가 첫 번째 글을 작성할 때 지속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억압받을 때, 이미 큰 틀을 정확하지 않지만 규정이 되어 있을 때, 어쩌면 글이 인생을 대변하듯, 인생의 경로를 만들어가는 내가 생각한 데로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기분을 들었다. 누군가 지속적으로 잘못된 정보인지 사실인 지구분 할 수 없는 것을 지속적으로 쌓아오며 만들어간다. 나는 망각되지 않고 있다. 일부러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처럼, 잊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처럼. 누군가 자구 나의 길을 만들어가는 기분을 지을 수가 없다. 나를 혼자 두고 싶어 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