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경험은 당신의 마음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들을 되살려내면서 상실감으로부터 해방되고 새로운 마음을 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신비스럽게 다시 매혹되는 과정은 심장이 뛰며 사랑에 빠지는 당신은 사람만이 가지는 특별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열정적인 사랑은 지속 기간과 관계없이 환희를 가져다 줄 뿐 아니라 변화를 불러일으키며 초월을 경험하게 해 줍니다. 그 사랑은 생각과 느낌, 지각, 심지어는 자신에 대한 인식마저도 바뀌어 놓기에 열정을 경험하는 것은 하나의 관계 그 자체보다 훨씬 큰 일입니다. 심지어 그 경험은 상대방에게 의존하지 않고 또한 로맨스는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생성되는 흥분의 느낌입니다.
‘우리가 늙으면 우리의 삶은 사랑했던 사람들을 모두 더 해가면서 이루어진다. 어떤 한 사람도 그대로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의 후반을 살아가면서 해야 할 숙제 중 한 가지는 우리가 인생의 전반에 걸쳐 사랑했던 사람들과 사람을 발굴해서 회복시키는 일이다. 삶의 침식 작용을 통해서 이전에는 고통이나 원한이나 미성숙함 때문에 드리워져 있던 소중한 사람의 기억이 드러날 수도 있다. _나이 듦의 기쁨’
그러기에 진정한 사랑은 나비와 같다고 믿는다. 손을 내밀어 보세요. 만약 나비가 날아가기 시작하는데 당신이 붙잡으려고 하면 나비는 날아갑니다. 그러나 그 찰나의 순간, 그 보물이야 말로 나만의 시간이 가지는 권능이며 나만의 시간에 해당하는 한 가지 주제는 잃어버린 사랑의 회복이다.
착함과 악함의 경계.
타인을 ‘착하다.’라고 이야기하는 누군가는 나의 행동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나를 긍정적 또는 믿는 자이다. 나를 ‘나쁘다.’라고 이야기하는 누군가는 나의 행동에 의의를 제기하는 자. 요컨대 ‘나’를 부정적으로 보는 자이다. 다시 말하자면 누군가의 행동에 관해 ‘선’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선’이라 해석하고 이를 ‘믿음’이라고 하자. 또한 반대로 누군가의 행동에 관해서 ‘악’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이를 ‘악’이라 설정하고 ‘의심’이라고 한다.
나는 간혹 인간의 행동에서 누구를 위하는 마음으로 하는 그 행위가 굉장히 타인의 관계를 헤치는 경우를 보았다. 또한 이는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 심리적 공감을 받고자 하는 것의 사이에서 정확성이 없음에도 정확성이라고 판단하는 이유를 ‘나’는 모르지만 ‘타자’는 알고 있지 않을까.
또한 누군가는 그곳에서 ‘내’가 될 수도 있지만 ‘너’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의 측면에서 ‘착하다 : 즉 선’이라 해석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는 사람. 또한 나를 ‘나쁘다 : 악’이라 생각한다면 누군가는 나의 행동에 상처 받는 자이다. 그러나 이제와 생각하길, 인간은 고등 생물이기에 지나치게 똑똑하고 많은 방식을 동원하게 된다. 과연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사람은 자기가 하고도 자신의 잘못을 모르며 자신이 생각하는 그 익숙한 생각들로 연결된다. 인간의 ‘언어’보다 인간의 ‘행동’은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측면에서 어떠한 문제에 직면하는가에 관해서 생각해 보길. 자신도 모르는 그 다양한 방법 안에서 ‘내’가 모르는 무엇을 ‘타자’인 누군가 무엇을 했을 때 ‘나’는 모르지만 ‘너’는 아는 그 무언가. 그럼으로써 다시 생각해보며 시각에 필터가 끼인 것처럼, 인간을 구분할 수가 없다. 거의 모두가 악해 보이고 적으로 보인다. 전체 속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한 ‘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