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논리를 익히고 기하학을 배우면서
내 사랑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난 휘파람을 잃었고
우린 심심찮게 말다툼을 했고
그때부터 세상은 내 삼각자 밑에 놓인 도면이었다.
- 이윤택, <맑은 음(音)에 대한 기억> 부분
나도 ‘맑은 음(音)에 대한 기억’이 있다. 옆집에 예쁜 중학생 누나가 있었다. 어스름한 저녁이면, 고등학생 형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옆집을 기웃거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형이 내게 중학생 누나에게 주라며 편지를 건네주었다.
그런데, 편지를 전해주다 그 누나 할머니에게 걸렸다. 노발대발하던 할머니가 내게 편지를 읽으라고 했다.
나는 마당에 서서 편지를 낭송해야 했다. 지금도 벌벌 떨며 연애편지를 읽는 열 살배기 남자아이가 선명하게 보인다.
나는 그 끔찍한 경험을 하고서는 휘파람을 불 생각을 아예 하지 못했다. 혼자 조용히 방에서 분 경험이 몇 번 있다.
사랑을 말로 할 수 있을까? 시인은 한탄한다. ‘내 사랑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난 휘파람을 잃었고’
말은 오해의 근원이다(생텍쥐페리). ‘우린 심심찮게 말다툼을 했고/ 그때부터 세상은 내 삼각자 밑에 놓인 도면이었다.’
사랑의 몸을 잃어버린 남자들은 말한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이 말에 속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랑을 잃어버렸는가!
사랑은 온몸으로 하는 것이다. 우주의 반쪽과 반쪽이 서로에게 다가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