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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석근 Oct 20. 2024

사랑과 전쟁   

 사랑과 전쟁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 원을 들고 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 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 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 럭키수퍼 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 마침내 영진설비 아저씨가 찾아오고 거친 몇 마디가 아내 앞에 쏟아지고 아내는 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냥 나는 웃었고 아내의 손을 잡고 섰는 아이의 고운 눈썹을 보았다      


 - 박철,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부분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가 이렇게 힘든 남편, 이런 시인 남편을 둔 아내는 얼마나 힘들까?     


 하지만, 이런 멋진 시인을 둔 아내만큼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그녀는 ‘인간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잘 알 것이다.     


 시 공부를 하며, 이런 시인과 아내들 참 많이 보았다. 요즘 서점에 가보면, 시집은 구석에서 옹기종기 웅크리고 있다.        


 그래도 아내가 버텨주니(사랑과 전쟁을 하며), 우리 사회에 시를 쓰는 사람이 많다. 시는 문학의 왕이다.     


 아니 예술, 문화의 왕이다. 인간이 동물에서 ‘호모사피엔스(생각하는 동물)’로 진화하며, 처음 생각한 게 시였다.     


 시는 전혀 다른 것을 하나로 연결한다. ‘내 마음이 호수’가 된다. 그래서 시적인 마음이 없으면, 다른 사람과 공감하기 힘들다.     


 우리 사회에서 시가 천대받는 건, 우리가 공감의 힘을 잃어간다는 증거일 것이다. 공감이 없는 인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우리 사회가 복지국가가 되어 시인이 마음껏 시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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