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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석근 Nov 05. 2024

성과 사랑의 거리   

 성과 사랑의 거리      


 창밖엔 무드 있게 비가 내리고

 어느 여대 앞 정거장에서 그녀의 가방이 올라 탄 거야

 나는 빗방울의 애무에 축축히 젖은 그녀의 가방을

 내 성기 위에 올려놓았어


 - 함민복, <나는 여대생의 가방과 카섹스를 즐겨보려 한 적이 있다> 부분             



 예전에는 버스에서 가방을 들어주는 문화가 있었다. 느긋하게 앉아 있을 때, 여학생이 다가오면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녀의 가방을 두 손으로 감싸 무릎에 올려놓았다. 가방을 꼭 안고 꾸벅꾸벅 졸았다. 시인처럼 과감한 상상은 하지 못했다. 아마 ‘감수성’이 제대로 깨어 있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이렇게 ‘동물적’이었던 시인이 어떻게 고상한 시를 쓰게 되었을까? 아프로디테는 아들 에로스를 사랑하는 프시케에게 네 가지 과제를 준다.     


 첫 번째는 밀·보리·기장·콩 등이 섞여 있는 곡식들을 각각 종류별로 분류해놓는 것, 수많은 개미의 도움으로 해결하게 된다.     


 두 번째는 황금 털을 가진 양들에게서 양털을 구해오는 것, 바람의 도움으로 덤불과 나무줄기에 걸려 붙어 있는 양털을 구해오게 된다.     


 세 번째는 천 길 낭떠러지 계곡에서 폭포수를 길어오는 것, 독수리의 도움으로 물통 가득 물을 길어오게 된다.     


 네 번째는 명부의 세계에 내려 상자 속에 아름다움을 담아오는 것, 지상에 도달하기 전까지 절대 열어보지 말라는 금기를 어겨 영원한 잠인 죽음에 빠져들게 된다.      


 이 과제들을 통과한 프시케(정신)에 의해 인간의 성은 비로소 에로스가 되는 것이다. 개미, 바람, 독수리는 무의식의 힘을 상징한다.      


 시인은 이 네 가지 과제를 치열하게 살아가면서 통과하게 되었을 것이다. 성과 사랑의 사이에는 레테의 강이 있다. 작은 나가 죽고 큰 나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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