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27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성과 사랑의 거리   

by 고석근 Nov 05. 2024

 성과 사랑의 거리      


 창밖엔 무드 있게 비가 내리고

 어느 여대 앞 정거장에서 그녀의 가방이 올라 탄 거야

 나는 빗방울의 애무에 축축히 젖은 그녀의 가방을

 내 성기 위에 올려놓았어


 - 함민복, <나는 여대생의 가방과 카섹스를 즐겨보려 한 적이 있다> 부분             



 예전에는 버스에서 가방을 들어주는 문화가 있었다. 느긋하게 앉아 있을 때, 여학생이 다가오면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녀의 가방을 두 손으로 감싸 무릎에 올려놓았다. 가방을 꼭 안고 꾸벅꾸벅 졸았다. 시인처럼 과감한 상상은 하지 못했다. 아마 ‘감수성’이 제대로 깨어 있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이렇게 ‘동물적’이었던 시인이 어떻게 고상한 시를 쓰게 되었을까? 아프로디테는 아들 에로스를 사랑하는 프시케에게 네 가지 과제를 준다.     


 첫 번째는 밀·보리·기장·콩 등이 섞여 있는 곡식들을 각각 종류별로 분류해놓는 것, 수많은 개미의 도움으로 해결하게 된다.     


 두 번째는 황금 털을 가진 양들에게서 양털을 구해오는 것, 바람의 도움으로 덤불과 나무줄기에 걸려 붙어 있는 양털을 구해오게 된다.     


 세 번째는 천 길 낭떠러지 계곡에서 폭포수를 길어오는 것, 독수리의 도움으로 물통 가득 물을 길어오게 된다.     


 네 번째는 명부의 세계에 내려 상자 속에 아름다움을 담아오는 것, 지상에 도달하기 전까지 절대 열어보지 말라는 금기를 어겨 영원한 잠인 죽음에 빠져들게 된다.      


 이 과제들을 통과한 프시케(정신)에 의해 인간의 성은 비로소 에로스가 되는 것이다. 개미, 바람, 독수리는 무의식의 힘을 상징한다.      


 시인은 이 네 가지 과제를 치열하게 살아가면서 통과하게 되었을 것이다. 성과 사랑의 사이에는 레테의 강이 있다. 작은 나가 죽고 큰 나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화, 수, 금, 일 연재
이전 10화 땅감나무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