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감나무
키가 너무 높으면
아기들 올라가다 떨어질까 봐
키 작은 땅감나무가 되었답니다
- 권태응, <땅감나무> 부분
경허선사가 사미승과 함께 길을 가다 도랑물이 불어나 개울을 건너지 못하는 처녀를 만났다. 처녀가 말했다. “저를 업어서 개울을 건네주시면 돈을 드릴게요.”
경허선사는 그녀를 업어서 개울을 건네주었다. 그녀가 돈을 건네주자, 경허선사는 손바닥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철썩 때렸다. “품삯은 이것으로 됐으니 그냥 가시오.”
이를 본 동자승은 경허선사에게 따져 물었다. “스님! 공부하는 중은 아녀자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하는데 어찌하여 스님은 계율을 어기셨습니까?”
이에 경허선사가 말했다. “나는 그 아녀자를 내려놓았거늘 너는 어찌하여 아직도 그 아녀자를 품고 있느냐?”
그는 그 처녀에게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사고를 ‘모욕’을 주고서라도 깨닫게 해주고 싶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있을 것 같다.)
만일 공동체가 살아 있는 사회라면 어땠을까? 힘이 약한 처녀가 개울을 건너지 못하고 있을 때, 힘이 강한 남자가 업어주는 게 너무나 당연하지 않았을까?
경허선사는 물신(物神) 숭배가 팽배해지는 세상에서 한 사람이라도 구하고 싶었을까? 그의 경지는 엄청 높은 듯하지만, 사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시인은 키가 작은 ‘땅감나무’를 눈부시게 바라본다. ‘키가 너무 높으면/ 아기들 올라가다 떨어질까 봐/ 키 작은 땅감나무가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