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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정 Aug 15. 2023

그래도 사람이다

 부도난 기업, 연체 중인 기업을 찾아가는 일은 껄끄럽다. 가기 전,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대표자를 만나는 것 자체만으로 부담스럽다. 사업이 어렵게 된 경위를 묻고 향후 대출금 상환 가능성을 짐작하기 위해 질문하고 조사하는 일은 마뜩잖다. 자칫 대표자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복기토록 하는 것이라 자괴감을 불러일으킬 것 같기 때문이다.     


 B 기업도 연체하고 있어 상황은 좋지 않았다. B 사는 SI(System Integration) 업체로 직원들 대부분은 IT 개발자들이었다. 방문한 날, 사무실 자리는 대부분 비어 있었다. 직원들은 개발 기업 현장에 나가서 없는 것 같지만 눈치로 봐선 직원 대다수가 그만둔 것처럼 보였다. 사무실에는 대표자와 나, 둘밖에 없었다. 음료수를 앞에 두고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 고민스러웠다.      


 대부분 기업이 그러하듯 B 기업도 당초 계획한 만큼 매출이 발생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당시는 IT 붐의 끝물이어서 그런지 수주물량이 예전만 못했다. 들어오는 돈은 적은데 나가는 인건비 등 고정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향후 상환계획 등을 묻고 조사를 마친 뒤 바로 자리에서 일어설까 하다, 둘밖에 없는 사무실의 썰렁함을 두고 나가는 것이 미안해졌다.      


  ‘어떻게 하다 이렇게 되었나요?’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왔다. 대표자는 담담하게 처음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하더니 점차 직원들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직원들이 원인인 것처럼 들렸다. 처음 창업할 당시 대표자는 정말 좋은 기업을 만들고 싶었다. 대기업에 근무했을 때 불합리한 점, 안 좋았던 조직문화를 생각하면서 대표자는 대기업 못지않은 복지 수준과 다양한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 일할 맛 나는 기업을 만들고 싶어 했다.

    

 문제는 너무 잘해주다 보니 직원들이 복지제도를 이용해 일보다는 혜택만 누렸다고 한다. 임신한 여직원의 출산 휴가 사용일이 웬만한 대기업 근무자 휴가보다 많았고, 개발 실력이 생각만큼 높지 않은데 직원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 힘들었다고 한다. 대표자의 입에서 직원들로 인해 기업이 어렵게 되었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많은 기업을 다녀보았지만, 기업 부실의 원인 중 하나로 ‘직원’을 말하는 것에 적잖이 놀라웠다. 대표자의 능력 중 리더십, 직원 관리 실패를 스스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물론 오롯이 직원의 문제로 기업이 어려워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영향을 크게 주었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대표자가 처음부터 성실하고 능력 있는 직원을 채용하지 못했거나 잘 뽑았지만, 인재로 키우지 못해 그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복지혜택도 기업이 감당할 수준에서 시작해 점차 여건이 나아지면 늘려나갔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중소기업은 상황이 넉넉지 않아 대기업 수준의 복지 수준을 따라 한다는 것이 재정적으로, 인력 운영상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대표자가 직원들을 배려해 주었는데도 알아서 일하는 선순환적인 기업 문화를 정착하지 못한 아쉬움이 깊게 느껴졌다.


 다른 대표자들을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직원 관리가 쉽지 않음을 토로한다. 개발자들이 흔히 말하는 근성을 부려 뜻대로 되지 않고, 생각만큼 사업이 더디다 보니 상처받고 사업을 포기하게 되는 이야기도 들었다. 퇴사하면서 노동청에 신고하는 직원, 경쟁기업으로 가거나, 다른 직원과 같이 창업을 해서 경쟁기업이 되기도 한 사례도 있었다. 큰마음먹고 교육을 보냈는데 다른 기업으로 이직한 사건을 겪은 후 직원 교육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 대표자도 보았다.     


 반면에 잘 나가는 기업, 업력이 오래된 기업일수록 장기 근속하는 직원이 많다. 직원들은 대체로 친절하고 분위기가 밝다. 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한다. 얼마 전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재무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기업을 지원하게 되었다. 대표자가 해외 출장으로 서류 작업에 전혀 관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여직원에게 신청 방법을 안내해 주었는데 야무지게 잘해왔다. 그 과정에서 회사를 생각하는 마음도 보게 되었다. 재무제표의 마이너스 숫자에서 오는 불안감이 다소 해소되는 것 같았다.      


 인간이 만든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이다. 일은 사람을 통해 이루어지기에 얼마나 훌륭한 인적자원을 갖추었느냐, 리더가 얼마나 구성원을 잘 이끄냐 하는 것은 고금을 막론하고 중요하다. 기업의 대표자는 자신의 사업 아이템을 매력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로 만들어 시장에 내놓아 팔리게 하는 사업 마인드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함께 하는 직원들을 설득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성과를 창출토록 하는 리더십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최근, 창업 기업을 보면 사람이 없어 인력을 채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방 소멸 위기 속에 젊은 창업자도 귀하지만 일할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대표자들은 여기저기 구인광고를 내지만 사람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한다. 사람도 없지만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지 않으려는 세태도 한몫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근무환경과 자신의 미래 등을 고려할 때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려는 결심은 쉽지 않다.   
  

 대표자는 사업마인드와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직원을 얻기 위한 스카우트 역할도 중요하다. 자신의 사업 비전을 직원에게 제시하고, 함께 일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금전적인 보상과 미래의 성장 모습까지 보여주고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책에서 ‘사람이 자산이 아니라 적합한 사람이 자산’이라고 했다. 적합한 사람인지 여부는 전문지식이나 기술보다 성격상 특질이나 소양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대표자의 리더십과 적합한 인재가 어우러져 위대한 기업으로 성장 발전하는 중소기업의 모습을 그려본다. 리더십도, 적합한 인재도 결국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기에, 그래서 결국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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