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겠네 엄마가 있어서

아기들은 초록 위에 웃고

by 박경이

1

밤새 비 뿌리더니 가늘디가는 냉기가 비열하게 스며든다. 등 한가운데서 퍼지는 한기는 ‘등뼈 있음’을 잊지 말라 한다. 이렇게 등뼈를 정밀하게 인식하고 살아야 하는 걸까, 등뼈동물은 그런가. 거기서 태엽이 감기고 풀리는지 미세한 통증과 가려움조차 느껴진다. 엄마... 엄마... 나는 달무리에 감싸인 듯하다. 많이 운다. 몸은 뜨거운 물이다. 수상한 독수리 한 마리 휘르르 힘차게 딛고 날아오른 우듬지처럼 출렁이는 영혼의 졸음. 뇌가 60g만 있어도 좋겠다, 달걀 한 개.


스러진 재에 불씨가 일고 따뜻한 살냄새에 눈이 떠진다

주황색 접시에 쩍 갈라져 포슬포슬 반짝이는 고구마의 연금술

담금질로 투명해진 시간의 껍질을 뚫고 나온 황금

참으로 떳떳한 풍성함이다

노른자만큼 떼어 먹으니 침이 고이며 힘이 오른다


엄마 숨소리, 마지막 숨 고르던 엄마 모습은 하얀빛이었다. 그러니 이제 자작나무를 심어야겠다, 뼈처럼 곧게 서서 흔들리는 작은 잎새 사이 눈부시게 반짝이는 노골적 아름다움을 볼테다. 좋아하는 색이 아님에도 늘 유혹당하는 하양. 감당 못하면서도 몸에 감고 싶은 색, 완벽하고 아름답되 치밀하지도 친밀하지도 않은 색이다. 무한히 튕겨내는 순정한 오만함이거나 무화 또는 기화의 소멸감. 심한 빈혈 상태에서 부서지는 세상, 백색의 빛가루, 현란한 질식이거나 단절과 해체의 가벼움 따위. 그리고 새벽 교회 가시던 할머니의 색이다. 여명에 반짝이며 부서져 빛 가운데로 사라지던 하얀 몸. 그 흰색은 침묵과 적막으로 이어졌다. 어떤 완결이자 시작. 할머니 없이는 내가 없고 아무것도 없는 거니까. 엄마도 하얀 빛이었다.


이으락끊이락, 생각의 질긴 꼬리를 뚝 자르기 어렵다. 고개를 드니 햇빛이 눈을 친다. 바람은 잔디 위로 흩어지고 스며드는 갈볕은 현실 같지 아니하다. 빛을 팽개치던 허공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며 시커매지는 찰나 동공을 꽉 움츠린다. 쏟아지던 가을볕과 울창한 나무 그늘의 대비가 극명하여 더욱 꿈같던 그 날, 엄마를 보내던 날... 초록과 초록을 벗어던진 색들의 어울림. 검은 옷들 위로 주홍색 태양이 참으로 따스히 빛나던 그 날. 풍경이 끊임없이 움직인다. 아기들은 초록 위에 웃고 있다. 천지에 만연한 선한 힘들이여, 이들에게 닿으소서.


2

“고추 없어~ 엄마, 고추 못 찾겠어.”

이제 밥 생각이 나는가, 저 좋아하는 두부찌개 먹으려고 냉장고에서 고추를 찾았던 모양이다.

“고추? 없지~.”

“뭐야? 고추 넣어서 먹으라더니.”

“밭에 있지. 너는 아직도 네 집이 아파튼 줄 아니. 잘 생긴 녀석으로 따오너라. 부침개도 하자.”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쩍 벌리더니, 그렇군!, 끄덕이며 냉큼 나간다. 모자 집어 쓰고 부엌 뒷문 열고 계단 6개, 왕복 서른 걸음도 아니 될 밭에서 두루가 고추를 따왔다. 풋고추보다 갸름하고 보들한 손가락이 유난히 곱고 예쁜 두루. 내 손이 저러할 때 우리 엄마는 밭을 갖지 못했다. 이제 밭은 있는데 엄마가 없다. 두루는 좋겠네, 엄마가 있어서. 나도 엄마가 있으면 좋겠네, 엄마한테 꽃 심을 땅을 주면 좋겠어. 나는 조용히 방에 들어가 운다.


조그만 창문 아래 벽에 기대어 엄마는 해마다 꽃밭을 만들었다.

유리창 두드리는 나팔꽃 바로 아래 분꽃, 칸나, 봉숭아, 한련과 백일홍, 과꽃이 촘촘했다.

엄마는 어느새 씨앗을 받아 놓았다가 해마다 뿌리고 키웠던 걸까.

씨앗들은 그 작은 집 어디서 갈무리되어 겨울을 났던 걸까.

아침마다 동쪽 창에서 꽃나팔 불어 나를 깨우고는

저녁이면 또로롱 접어 놓던 푸른보라 나팔꽃.

엄마 아침 목소리,

‘경이~, 안 일나나? 나팔꽃 나발 벌써 불었는데.’

엄마의 한 뼘 꽃밭, 춤추는 천연색, 용솟음치는 바다

그건 경이, 엄마의 경이驚異였다.


아프게 아름다운 것들은 잊어도 좋을 거야

이제 가보지 않은 다른 문을 여는 거야

더이상 이전의 내가 아니어야지

슬픔의 뱃속에서 새롭게 태어날 때까지 울어야 한다

내 밭은 내가 가꾸어야지

엄마는 필요 없다 이제 내가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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