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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고 싶은데, 벗어나고도 싶어

그럼에도 꽃은 피어난다

by 햇살나무 Mar 28. 2025

그럼에도 꽃은 피어난다.

엄마의 그림자에서, 나라는 꽃이 피기까지     

1부. 그림자 속에서 나를 찾다

3장. 사랑받고 싶은데 벗어나고도 싶어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왜 자꾸 도망치고 싶은 걸까요?
 
 민서 씨는 상담실에 들어오자마자, 조용히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사랑을 갈망해 왔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는 그녀에게 언제나 모순적이고 복잡한 감정으로 다가왔다. 가까워지면 숨이 막히고, 멀어지면 외로웠다.  사랑하고 싶은데, 자꾸 벗어나고 싶었다.
 
 그녀가 처음 그런 감정을 느낀 건 아주 어릴 적, 엄마와의 관계 속에서였다. 엄마는 늘 바빴고 예민했다. 웃는 날보다 인상을 찌푸린 날이 많았고, 칭찬보다는 지적이 먼저였다. 민서 씨가 엄마 품을 찾아갔을 때, 엄마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지금 바빠. 저리 가 있어.” 그녀는 차가운 말투를 견디며, 마음 한편에서 사랑은 곧 ‘거절당하는 일’이라는 믿음을 품게 되었다.
 
 성인이 된 후에도 그 믿음은 그녀를 따라다녔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표현할수록 더 두려워졌다. 상대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마음은 경계했고, 스스로를 자꾸 작게 만들었다. 그녀는 “내가 싫어질까 봐, 그냥 맞춰주고 참는 게 편했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그녀의 감정은 하나둘씩 눌려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도 모르게 되었다.


    
 
 심리학자 존 볼비는 이런 상태를 ‘혼란 애착’이라 설명했다. 사랑의 대상이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던 경험은, 마음속에 양가감정을 남긴다. 사랑받고 싶고, 또 동시에 그 사랑이 아프고 무섭다. 민서 씨는 “사랑하는 사람과 있으면 오히려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서 씨는 그 마음이 잘못되었다고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은 그 감정의 뿌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녀는 말한다. 


“이제는 내 마음이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 알 것 같아요. 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때 민서 씨가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엄마랑 놀고 싶어? 하고 1분만 안아주고 눈 맞춰주는 거! 그거면 충분할 것 같아요.”

민서 씨는 한참 동안 조용히 있다가  말을 이었다.

“그랬다면 아마, 지금보다 덜 외로웠을 것 같아요.”

민서 씨의 눈동자에 깊은 외로움이 담겨 있다. 세상이 무섭다고 말하는 두려움도 함께 있었다. 민서 씨가 살아온 시간들이 내 마음에도 함께 담기고 있다.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의 기억을 품고 살아간다. 그 기억이 때로는 사랑을 왜곡시키고, 때로는 스스로를 단단히 지키게도 한다. 민서 씨는 지금, 그 기억을 바탕으로 새로운 선택을 하고 있다. 그녀는 엄마처럼 되지 않으려 애쓰기보다, 그때의 ‘작은 나’를 다시 만나고 있다.
 
 그 아이는 말하고 싶다. “나는 외로웠어.” “나는 사랑받고 싶었어.” 그리고 지금의 민서 씨는 그 아이의 곁에 조용히 앉아, 말없이 손을 잡아준다. “그때 너는 잘못한 게 아니야. 그저 너무 오래 기다렸을 뿐이야.”
 
 사랑하고 싶은데, 벗어나고 싶은 마음. 그 감정은 결코 모순이 아니다. 그것은 치유의 여정에서 반드시 지나가야 할 통로다. 우리는 상처받은 방식으로 사랑을 반복하려 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이해하고, 감정을 마주해야 한다.
 
 민서 씨는 지금, 그 여정을 걷고 있다. 그 길의 끝에서 그녀는, 사랑을 해도 괜찮은 사람, 벗어나도 괜찮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치유 글쓰기 실습: 함께 피어나요

1. ‘사랑하고 싶은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순간이 있다면 떠올려보세요.

2. 그 감정 속에 숨어 있던 진짜 내 마음은 무엇이었을까요?

3. 나를 지키기 위해 내가 해왔던 방식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4. 지금, 나는 내 안의 ‘어린 나’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싶은가


사진: 픽샤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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