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음주에 수업을 나갈 예정이라, 미리 참관수업 겸 여중에 다녀왔다. 중학교는 정말 오랜만이다. 중1 여자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내 귀의 데시벨 한계를 넘겼다.
정말 시끄러웠다. 급식을 막 먹은 직후라 그런지 에너지가 더 넘쳐 보였다. 그런데 그 웃음소리와 뛰노는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나도 여중, 여고를 나왔는데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그 분위기가 고스란히 떠오르며 학창 시절이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갔다. '나도 이렇게 시끄러웠겠지'
뒤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니, 가운데에서 활기차게 분위기를 이끄는 아이, 조용히 있는 소극적인 아이, 시크한 표정의 아이, 수다스러운 아이, 점잖은 아이… 아이들마다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는 가르치는 일을 쭉 해왔다. 가르치는 데 보람도 느끼는 편이고, 제법 재능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지식을 다른 이에게 전하는 일.
처음에는 대타로 한 번 수업을 나갔는데, 그걸 계기로 "같이 일해보자"는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선생님으로 일하게 되었고, 이후로 쭉 가르치는 일을 계속해왔다. 수학, 미술, 음악 등… 4살 꼬마부터 60세가 넘는 어른까지,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가르쳐봤다.
미국에서 회사 다닐 때, 매니저 언니가 나에게 "넌 가르치는 재능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인수인계를 위해 나보다 나이 많은 직원을 가르쳤는데, 쫄지도 않고 이해가 쉽도록 잘 가르친다고 했다.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누군가의 입을 통해 그런 말을 들으니 ‘아, 나한테 진짜 그런 재능이 있나 보다’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가게 될 학교는 남녀공학이다. 남자애들은 잘 모르겠다... 혈기왕성한 애들 감당이 될런지.
저녁엔 오랜만에 여의도 한강공원에 다녀왔다. 평일 저녁인데도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삼삼오오 모인 외국인 친구들, 그리고 땀 흘리며 운동하는 사람들. 각자 다른 이유로 이 공간을 누리고 있었다.
나는 밤바람도 쐴 겸, 친구와 실없는 농담 따먹기나 하자며 나섰다. 오늘 우리의 목적은 그거였다.
별것도 아닌 말에 꺄르르 웃었다. 예를 들면, “나 어릴 땐 땅콩과자 줘도 안 먹었는데… 요즘은 맛있더라.”
물은 흐르고 있었지만, 여전히 도심 한가운데여서일까. 어딘지 모르게 조금은 답답한 기분도 있었다.
마포대교를 건너 반대편에선 차들이 쉴 새 없이 달리고, 고층 건물들엔 불빛이 가득했다.
그 불빛들이 마치 “나 여기서 열심히 살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물멍 하며 있다가 갑자기,
'ㅇㅇ아 우리는 감사해야 해, 한국에 태어나서 지금 이러고 있잖아, 이걸 누릴 수 있잖아, 다른 나라는 전쟁하고 있어...'
친구는 ’얘 또 시작이네, 근데 맞아.'
공간 : 空間, Space, der Raum
정의 : 어떤 물질 또는 물체가 존재할 수 있거나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장소
공간에 대하여 철학, 물리학, 수학의 정의가 나오기도 하지만오늘은 단순한 사람과 공간.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장소'에 초점을 맞춘다.
공간마다 저마다의 기운이 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교회에 가면 왠지 차분해지고 성스러워져야 할 것 같고, 콘서트에 가면 나도 같이 뛰고 소리 질러야 할 것 같고, 클럽에 가면......(모두 다 춤을 추나요...? 안 가봐서 모르겠다. 친구한테 궁금하다고 했는데 너 늦바람 든다고 가지 말라고 한다. 갈 생각은 없고 궁금한 것뿐이야...)
공간은 사람들의 행동을 품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함께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가 있다. 그것이 우리가 ‘공간을 함께 쓰는 법’이다.
보통 한강은 누군가와 같이 오게 되면 가족, 연인, 친구 등 주로 사랑하는 사람,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함께 오며 따뜻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느낀다.
그래서 긴장된 사람들의 표정보다는 온화하고 만족한 표정들을 관찰할 수 있으며 불편한 기운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잔잔한 물결 같은 공간에도 때때로 파도가 치는 순간이 있다. 오늘 한강에서도 그런 파도가 하나 일었다.
어떤 남자가 버스킹을 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그는 노래를 시킬 사람을 찾으며 “노래 부를 사람~”을 수십 번 외쳤고, 결국 한 남학생이 용기를 내어 마이크를 잡았다.
그런데, 학생의 노래가 끝난 후 그 남자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노래 더럽게 못했어요~” 장난이었을까, 진심이었을까. 어떤 의도였든 그 말은 불쾌했다. 그 학생도 상처를 받은 듯 보였다.
곧 경비 아저씨들이 다가왔다. 알고 보니 한강에서의 버스킹은 밤 8시까지만 가능하다고 한다. 한 차례 제지를 당한 후에도 그는 장비를 다시 설치했고, 급기야 안내 방송까지 나왔다.
“한강 버스킹은 8시까지입니다. 인근 아파트에서 민원이 들어옵니다. 공연을 중단해 주십시오.”
경비 아저씨들은 몇 번이나 와서 그를 말렸지만, 그는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큰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시민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나와 친구는 옆에서 듣고 있었는데 그 남자가 경비아저씨께 싹퉁바가지로 말을 해서 기분이 나빴다.
우리 옆에 있던 남자들은 경비 아저씨께 “우리가 지켜보고 있겠다”고 말하며 상황을 전달했고, 결국 경찰까지 출동했다. 많은 이들이 단 한 사람으로 인해 불쾌함을 느껴야 했다.
나는 그 사람의 인성을 보고 한숨이 나왔다. 그가 아무리 노래를 잘 불렀다 한들, 마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그의 태도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는 그렇게 살아갈 것 같아 안타까웠다. 사람은 기본이 되어있어야 한다.
그 남자에게 쑥과 마늘을 선물로 주고 싶다.
많이 먹어야 할 것 같다.
이 공간에서 이런 해프닝이 있었고 그 사람을 만나 사람의 행동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오늘이다.
이 일이 있기 전까진 모두 평화로웠다.
그리고 언제나 공간은 잘못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