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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운백년 Aug 21. 2023

희망과 절망은 한 끗 차이

오열 「강강」

희망과 절망은 한 끗 차이

오열 「강강」



‘오열’이란 가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강강」이라는 노래를 통해서였다. 근무 중 유튜브 알고리즘에 귀를 맡기고 음악을 듣는 경우가 많았는데, 때마침 이 곡이 재생된 것이다. KOCCA의 신인 발굴 프로젝트 ‘2019 EBS 올해의 헬로루키 with KOCCA’ 영상이었는데, 영상 속 가수의 모습이 꽤 신선했다. 딸기 캐릭터가 떠오르는 숏컷에 단정한 셔츠와 슬랙스 차림으로, 무대 단상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노래를 부르던 그녀는 확실히 기성 가수가 낼 수 없는 특유의 분위기를 머금었다. 그리고 독특한 모습과는 또 다른 매력의 단단한 목소리가 귀를 사로잡았다. 노래 가사 중에 나오는 ’강강‘이라는 단어도 너무 독특했다. 처음엔 가사 중 등장하는 ’강강술래‘라는 단어를 들으며 낯선 느낌이었지만, 금세 눈물이 맺혔다. 노래에 휩쓸리듯 빨려 들어가,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느라 애를 써야만 했다.



https://youtu.be/HZ861HvPJO4?si=g2cSdYLmqRo53DUR



「강강」은 고개에 관한 이야기다. 인생을 살아가며 누구나 맞닥뜨리는 고개. 언젠가는 무사히 잘 넘어가고, 또 언젠가는 한계에 부딪혀 좌절하고야 마는. 하지만 누구든 마주칠 수밖에 없는 고개. 그리고 결국에는 고개를 잘 넘어갈 수 있다는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곡이다. 누구나 그럴 힘이 있다는 용기를 준다. 나는 자꾸만 나의 고개가 생각났다. 지극히 평범해 누구에게도 내세울 만한 고개는 아니었지만, 내게도 숱한 고개가 있었다. 쉽게 좌절했고 쉽게 외면한 여러 인생의 고개들. 서글픈 밤이 계속되고 매일 같이 불행을 마주할 때마다,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다. 끝끝내 ‘우리의 고개는 넘어간다‘고 부르짖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작은 희망이 느껴졌다. 당신을 수렁에 빠뜨릴 어떠한 시련들이 있지만, 결국 모두 지나갈 것이라는 위로였다.



출처 : 오열 인스타그램 (oyeolofficial)



‘오열’이라는 이름이 그녀의 곡과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가사 때문일까? 그녀의 목소리에는 한이 있었고,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름 그대로 ‘오열’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반전. 그녀에 대해 조금 알아보던 중 그녀의 이름에 대해 알게 됐다. 그녀의 이름인 ‘오열’이 당연히 목메어 울게 되는 오열이라고 굳게 믿었지만, 사실 그녀의 이름은 전혀 정반대의 뜻이었다. ‘밝을 오’에 ‘물들일 열’ 즉 ‘오열’은 ‘밝음을 물들인다’라는 의미를 품은 이름이었다.


 ‘오열’과 ‘오열’ 참 신기하게도 정반대의 뜻을 지닌 단어였다. 절망과 희망을 오가는 느낌. 그녀의 노래가 딱 그랬다. 어차피 비극과 희극은 한 끗 차이였다. 그녀의 이름처럼, 노래처럼. 결국 희망은 절망에서 길어 올리는 것. 그러고 보니 나도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울었다가 결국엔 희망을 품게 되지 않았던가. 그녀의 음악은 전반적으로 그런 식이었다. 무작정 절망을 노래하지 않았다.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가끔 날 울게 했지만, 우울로 데려다 놓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희망을 생각했다. 밝음을 생각하고, 밝게 물든 아름다운 노을을 생각했다. 찰나의 순간을 물들이고 지나가는 희망일지라도, 모두에게 오래 기억될 수밖에 없는 그런 노을.


신기하게도 그녀 덕분에 한 단어의 정체성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나는 그녀를 안 뒤로 ‘오열’이라는 말을 들어도 이전처럼 가슴 한구석이 시큰하거나 자꾸만 어딘가로 깊숙이 빠지는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을 느끼진 않는다. 무조건 반사처럼 가수 ‘오열’을 떠올린다. 그녀의 곡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재생된다.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중 ‘오열하게 만드는 노래’와 같은 제목이 있어도 나는 그냥 오열을 떠올린다. 「강강」을 떠올리고 「연」을 떠올리고 「그때 그 소나기처럼」이라는 곡을 떠올린다.





오열은 JTBC 프로그램인 <싱어게인2>에 53호 ‘말하는 가수’로 출연했다. 당시 그녀가 이상은의 「언젠가는」이라는 곡을 부른 영상은 유튜브에서 조회수 130만 회를 훌쩍 넘어갔고, 어느새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언젠가는」이라는 곡을 듣고 싶어 했다. 나는 사실 최근 공연에서 그녀가 그 곡을 부르기 전까지, 그 곡을 불렀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었었다. 그녀의 커버 곡도 물론 좋았지만, 나는 아무래도 그녀가 직접 만든 곡들이 더 좋았다. 진심을 담은 위로를 전하겠다는 그녀의 뜻처럼, 많은 위로를 받았기에. 꼭 그런 가수들이 있지 않은가. ’나만 알고 싶은 가수‘ 그게 그녀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녀가 더 유명해지면 아무래도 그녀의 공연을 지금처럼 쉽게 찾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한편에서는 그녀가 더 유명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 모두가 「강강」이라는 곡을 듣고 각자의 고개를 떠올릴 수 있다면.




차곡차곡 노래를, 마음을, 위로를 쌓아가는 그녀를 아주 오래 지켜보고 싶다. 그녀는 절대 오열하지 않는다. 나는 그녀가 그렇게 하듯, 오열이 그렇게 하듯 오열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결국 오열 뒤엔 오열이 온다는 믿음으로. 절망에서 희망을 길어 올리는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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