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주망태 Mar 06. 2024

나의 금주 다이어리 | 프롤로그

2n년차 애주가 주당걸 술고래 고주망태 씨의 어느날 갑자기 금주 다이어리

나의 금주 다이어리

2n년차 애주가 주당걸 술고래 고주망태 씨의 갑자기 금주 다이어리


  단 한 번도 술을 끊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놀랍게도. 그만큼 나는 술을 좋아했던 것이다. 몇 모금 만에 내 기분을 하늘 끝 구름 위로 올려놓는 이 마법의 액체를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무리 골칫거리인 일이 있어도 맛있는 음식에 술 몇 잔을 곁들이면 그저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흘려 넘길 수 있었다. 제법 미운 사람이 있어도 술에 취해 떠올려 보면, 그래 그쪽도 나름대로 힘든 일이 있겠지 끌어안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술은 맛있다. 깊은 쌀의 향이 나기도 하고 시원하게 목젖을 때려주기도 하며 오색과일의 맛을 떠올리게 하는가 하면 생알코올을 들이켜는 것 같이 뜨거우면서도 한편으로 부드럽게 위장을 마사지해 주는 오묘하고 기가 막힌 녀석이 아닌가. 정말, 기가, 막힌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 술을 그리 사랑해마지 않는 이유를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변기통을 부여잡고 지난밤의 과음을 속죄하는 시간에도 나는 “잘못했어요”라고 고백할지언정 “다시는 안 그럴게요”라고는 약속한 적 없다. 흔히들 하는 “내가 다시 술 마시면 개”라는 농담조차 해본 적이 없다. 이 좋은 걸 왜 끊나요? 해맑게 되물을 수 있는 사람이 나였으니까.


태국 방콕의 루프탑 바, 드라이 마티니
베르무트 향이 살짝 스쳐가고 뒤이어 진이 목젖을 강타하는 '으른의 칵테일'.


  그랬던 내가 단 한 번의 사건을 통해 금주를 결심한 건 그러니까 어쩌면 청천벽력 그 자체일 수 있다. 내가 금주 결심을 밝힌 처음 상대는 내 얘기를 듣고 펄쩍 뛰며 되물었다.

  “술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물음표 세 개를 붙여 써도 부족할 만큼 격한 반응이었다. 단 한순간에 결심을 내리면서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첫 반응을 접하고 나서 오히려 역으로 깨닫게 됐다. 그래, 내가 술을 좋아하긴 좋아하지. 엄청나게 좋아하지.


  술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그래서 또 한편으로 지긋지긋하게 술을 마셔본 사람으로, 나는 미련 없이 술 끊기를 선택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내 다짐이 얼마나 지켜질지 문득문득 의문이 고개를 들기는 하지만, 나는 그 의문에 시선을 똑바로 맞추고 눈싸움을 시작한다. 나란 사람, 한다면 하니까. 잘 돼가냐며 금주 상황을 물어보는 지인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에도 똑같이 답해주고 있다.


  “한다면 한다.”

  그래도 우리 사랑은 너무 깊고 진해서 나는 이 술을 그냥 보내주기가 못내 아쉽다. 사랑한 동안 기록하지 못했던 우리의 일들을 헤어짐을 마주하는 시간 동안 적어 내려가려고 한다. 내가 술을 만나고 술이 나를 만나서 벌어졌던 이야기들, 숱한 낮과 숱한 밤동안 우리가 함께한 사건과 없었더라도 좋았을 사고들, 사람들, 쥐어뜯긴 머리카락, 아차차 여기까진 아니고. 서론은 짧을수록 좋은 거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