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미친 운동과 즐기지 못한 괴리감

다이어트 도전기 4화

by 다잘쓰는헤찌

2화의 마지막 문장을 기억하시나요?

제가 단호하게 내뱉었던 한 마디.

“ 저 대회 나가고 싶어요.”

사람이 무언가를 선택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게 이치지요.


그날부터 제 운동법은 바뀌었어요.

저는 그저 그룹 PT 회원이었을 뿐이에요.

그러나 그룹 운동이 끝나면

개인 운동 스케줄을 짜주셨어요.

크로스핏에 가까운 고중량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의아하기도 했어요.

비키니 선수라면 자고로 엉덩이가 커야 하거든요.

그러나 저는 엉덩이 위주의 운동보다는

고중량의 전신운동이 많았어요.


이내 깨달았죠.

체중 감량이 우선이구나.

근력도 키우고 체지방 감소도 필요했어요.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고중량 운동이에요.

근력 운동을 유산소처럼 하는 운동.

케틀벨을 활용한 운동이 많았어요.


얼마나 지났을까요.

헬스 초보 매니아들의 특징,

헬린이들의 함정인 중량 욕심이 시작되었습니다.


자세가 다소 흐트러지더라도 괜찮았어요.

괜히 최고 무게에 도전하고 싶었고,

이 센터의 여성 순위로는

최고 기록을 가지고 싶었어요.


아참, 무게 욕심이 한참 많을 때

저는 깨달은 게 하나 있어요.


여성이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남성의 무게에는 안 된다는 사실을.


헬스장이 처음인 마른 남성 분과

무게 대결 했다가

처참히 졌던 기억이 나네요.


날이 갈수록 저는 무게를 올렸어요.

특히 케틀벨에 욕심이 계속 났어요.

케틀벨 스윙을 하기 위하여 18kg에서

24kg으로 올렸어요.

그러다 욕심이 생겨 28kg까지 올려도 봤습니다.

코어가 무너져 1회만 하고 끝냈지만요.

대회 준비는 고독했어요.


출전 의상부터 포즈 연습까지 열심히 검색해서

채워놔야 했어요.

당일치기로 서울을 많이 갔던 기억이 나요.

비키니 선수복도 맞추러 가고,

포즈 세미나도 열심히 다녔죠.

시합을 준비할 때는 몸이 가벼워서인가

피곤한지도 몰랐어요.

말랐는데 근육이 빵빵한 선수들을 만나는 공간에서

저도 꿈을 키웠던 기억이 나요.



#1. 미친 운동_ 대회 출전, 바디 프로필


“ 니 소말리아 난민 같네~”

이런 얘기에 이제 스트레스도 올라오지 않는다.

그냥 짜증이 났다.

하루하루가 절실한데

이런 시덥잖은 농담에 쓸 기운도 없었다.

쳐다보지도 않고 내 할 일을 한다.


“이것 좀 먹어라!

이미 말랐는데 그러다 쓰러지겠다.”

혹은

“이거 하나 먹는다고 확 안 찐다.

니 어차피 운동 많이 하잖아.”

도 있다.


처음엔 목표가 있어서 안 먹는다고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살 뺀다고 예민한 사람 취급이다.

“이야~ 당근 맛있겠다. 나도 좀 줘~” 혹은

그냥 내 도시락을 집어먹는 사람.

누군가에게는 간식일지 몰라도

나는 한끼를 연명하는 생명줄인데,

쉽게들 뺏는다.



그렇다.

다이어트를 한다는 건

사실 주변 사람들이 툭툭 한마디씩

던지는 것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운동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없으면 더 심하다.

남이 나와 같은 모습이어야

안심하는 부류는

어디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체육이나 미가 필요한 직업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회식에서도

열심히 볶은 양파를 싸서

들고 가며 버텨야 했다.


대회 날짜가 임박하자 트레이너가 말했다.

“이런 식으로 할 거면 때려치우세요.

같이 무대에 올라가는 선수들한테 미안한 줄 아세요.”


일이 터졌다.

피곤한 출퇴근과 많은 수업으로 힘이 들었던 나는

트레이너에게 물었다.

“ 방울토마토는 마음껏 먹어도 돼요?”

“네. 수분이 대부분이라 드셔도 돼요.”


그렇게 나는 방울토마토 한 팩을

그 자리에서 다 먹고 혼나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이뇨 작용을 활용한 다이어트였다.

남은 14일은 하루에 샐러드 50g과

물 11L로 버텨본다.

대회는 성공적이었다.


타고나기를 키가 크고 엉덩이 볼륨이 있던 나는

입상할 수 있었다.


올림픽 경기장에 모인 기자들과

심사위원들이 사진 요청을 하기도 했다.

스포츠모델로 워킹을 하기도 하고,

기사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대회를 나갈수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게 취미인데

언제까지 해야 할까.

나는 이제 본업에 집중해서

아이들이랑 햄버거도 먹고,

교과협의회 때 삼겹살도 먹고 싶은데

언제까지 해야만 할까.


그 불안감은 내 발목을 잡았고,

대회를 위한 다이어트만 하길 시작했다.

평소에는 풀어지게 놀다가 대회 앞두고만 하는 다이어트.


이틀 만에 11kg을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

누드 바디 프로필도 예약을 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며 미친 운동을 했다.



#2. 휴식기_ 즐기지 못하는 괴리감.


결국 나는 신장 기능이 망가져서

다음 대회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무리한 이뇨작용과 폭식은

간과 신장에 무리를 줬다.


우습게도 이 시대에 영양실조 판정을 받고

오랫동안 치료를 해야 했다.

그 당시 나는,

울산 대회를 나가고 울산에 있는 친척 모임에 가려고 했다.

겸사 겸사 다녀오려고 했었다.


결국 대회 출전은 무산되었고,

친척 모임에는 참여하였다.


나를 본 외삼촌은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이야~ 니는 이제 몸매가 되니까

딱 붙는 옷을 입고 댕기네.

인생에서 그런 도전 정신은 좋다.

몸매 보기 좋다.”


분명 건강해진 조카의 몸을 칭찬하고 싶으셨으리라.

그러나 나는 여전히 마음껏 먹지 못했다.

눈앞에 놓인 탄수화물 양을 계산했다.

이따가 해야 할 유산소 시간에 곱하여 계산하였다.


때로는 정반대의 행동을 하기도 했다.

지금 아니면 언제 먹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빵을 욱여넣었다.


별로 먹고 싶지 않아도 넣었다.

또 시합 준비를 하게 된다면 못 먹게 될 테니까.

지금 먹어야 했다.


물론 건강하게 다이어트를 하고

생활화하는 빌더 분들도 많다.

일부는 나처럼 보기에는 좋으나

속은 병약한 빌더가 되기도 한다.



“내 신체에 감사하는 것이

자신을 더 사랑하는 열쇠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107kg인 몸무게를 2년 만에

68kg으로 줄인 미국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의 명언이다.


내 신체를 사랑하고 감사하는 일.

그것이 없는 다이어트는 결국 열리지 않는 문이 되고 만다.

나는 그것을 찾아 고민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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