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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산 안 좋아하는데요.

#2 씬디로운 혼등생활

by 씬디북클럽


산을 안 좋아한다. 산 싫어한다. 내려올 걸 뭐하러 올라가지?


2020년 코로나 절정기, 하도 답답해서 등산 쟁이 남편을 따라 어영부영 광교산에 올랐다. 할 만하네? 블랙야크 100대 명산, 일명 BAC 100도 해볼까? 작년까지 25개의 산 정상을 밟았다. 여름 산도 겨울 눈산에도 갔다. 첫 경험들이다.


한번, 혼자 가 볼까? 이젠 익숙한 광교산. 아무도 없다. 아무 생각도 없다. 내 속도로 걷는다. 내 맘대로 쉰다. 새소리도 들린다. 바람 소리도 들린다. 음, 좋다.


광교산 형제봉을 맘먹고 가 보자. 올해 안에 44번 가 보자.. 100번? 노노, 일단 44번 찍어 보자.




아이들 등교 후, 민낯에 검은 모자, 물 하나만 챙긴다. 좀 외진 곳의 주차 명당. 천천히 오른다. 꽃도 보고 나무도 보인다. 일주일 만에 색깔이 다르다. 산에 어울릴 책을 챙겨 책 사진도 찍는다. 올라갈 때 한 시간, 내려올 때 30여 분 남짓. 딱, 좋다.


요새는, 오르는 30분은 매일 아침 원서 음원이 도착하는 쉬다이닝 @shedining을 듣는다. <Where the crawds sing>을 두 달째 구독 중. 조용한 숲길이 왠지 책 내용과 찰떡이다.



나머지 30분은 그냥 오른다. 거의 안 쉰다. 물은 딱 두 번 마신다. 할 만하다.


형제봉 인증 사진을 찍는다. 셀카는 노노. 화장한 날만 가끔씩 한 컷.


내려오는 30분은 바람처럼 빠르게. 뭘 먹을까 생각만 한다. 등산로 초입의 해장국? 초밥이나 쌀국수를 포장? 오늘은 줄 서서 먹는 칼국수집 오픈 시간이 맞아졌다. 당첨. 아아도 한 잔 들고 아껴 마신다.


함께 해서 힘이 나지만, 때로는 힘이 빠진다. 미타임으로 충전해야 방전되지 않는다. 혼자 놀아야 함께도 잘 놀 수 있다. 나는 나랑 제일 잘 논다. 놀 수 있을 때 부지런히 나랑 놀자


티베트어로 '인간'은 '걷는 존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 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는 않는 사람이기를.

(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하정우씨, 함께 걸어요. 먹방도 함께 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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