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언젠가 혼자서 삼겹살 구우리

#5 씬디로운 혼밥생활

by 씬디북클럽


드디어 먹었다. 수제비와 보리밥.


요 며칠 전부터 어찌나 먹고 싶었던지. 수제비가 나오기 전 나온 보리밥의 보리들은 탱글탱글 윤기가 흘렀다. 갓 따온 열무로 담그신 건지, 함께 나온 열무김치는 아삭아삭하고 싱그런 향이 났다. 그냥도 집어 먹고 보리밥에 넣어 고추장과 비벼 먹었다. 맛있었다.


아껴가며 절반쯤 먹고 있을 즈음 수제비가 나왔다. 오래 끓인 멸치 육수에 바지락, 황태가 보인다. 손으로 뜯어 넣은 수제비의 익힌 정도는 딱 내가 좋아하는 상태였다. 밥 한 톨 국물 한 모금 남김없이 먹었다. 맛있게 배부르게 행복하게. (아, 열무김치는 한 접시 더 부탁드려 다 먹었다.)


차에서 내내 이동하는 직업일 때도 실은 혼밥을 자주 했었다. 버거 세트 DT라든지 은박지에 싼 김밥 한 줄이라든지. 허기는 채웠지만 속이 텅 빈듯한 차에서의 혼밥을 좋아하지 않았었다.


코로나로 외출은 물론 외식조차 자유롭지 않았을 때, 배달 음식과 밀키트 만으로는 부족함이 있었다. 상황이 나아지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시작했다. 나는 혼자서 이것저것 하기 시작했다.


혼밥은 주로 혼 등과 연달이 이어진다. 땀 흘리며 오를 때 목표점을 찍고 내려올 때도 여러 메뉴들이 함께 오르고 내린다.


붐비기 전 시간을 이용해 1인 좌석에 자리 잡는다. 창가 또는 구석진 자리도 좋다. 혼밥이 부끄럽지는 않지만 아는 얼굴을 일부러 마주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칼국수, 수제비, 냉면, 비빔국수, 잔치국수, 냉메밀, 쌀국수.. 주로 면 요리가 최종 낙찰된다. 원래도 면 요리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교정인의 상황상 이 사이에 끼이는 것 없이 후루룩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면 요리는 포장해서 가면 그 맛이 나지 않기 때문에 주로 혼밥 메뉴로 낙점된다.

면 요리를 좋아하지만 면치기는 잘 못 한다. 젓가락으로 면발을 조금 들어 왼손에 들린 숟가락에 올려 가만히 얌전히 먹는다. 밖에서는 주로 오물오물 예쁜 척하며 먹는다. 집에서는 물론 와구와구 막 묻혀가며 먹는다.


혼밥의 장점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정할 수 있다.

천천히 또는 빠르게 내 속도대로 먹을 수 있다.

내가 사네 네가 사네 각자 계산은 정 없네.. 계산할 때 찰나의 주저함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쌀국수와 함께 책 사진을 찍었던 날. 세 가지 생각으로 가게 문을 나섰다.


가성비 최고였던 국물 맛이 조금은 달라진 것 같군. 당분간 안 와도 되겠다. 그리고 다음에는 누군가와 함께 먹고 싶다.


의자를 잘 넣어놓고 빠진 물건이 없다 살핀다. 계산을 하고 기분 좋게 인사한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혼자 점심 먹는 사람을 위한 시집, 강혜빈 외, 한겨레출판, 2022




keyword
이전 05화매일 글 쓰는 사람의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