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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또 Oct 10. 2023

23) 튀르키예 카우치 서핑 리뷰; 최악의 호스트 편


 여행을 하며 가장 감격스러운 광경을 봤던 곳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 카파도키아를 꼽을 것 같다. 카파도키아는 튀르키예의 중남부에 위치한 유적지로 3백만 년 전 화산폭발과 대규모 지진활동으로 쌓인 화산재가 침식되어 형성된 마을들이다. 화산재로 이루어진 바위는 매우 부드러워서 사람들은 그곳에 동굴을 파고 거주를 하거나 비둘기 집을 만들어 사육을 했다. 동네에는 적군이 오는 것을 감시하면서 사람들이 거주할 목적으로 가장 큰 동굴을 성으로 만들어 보호했는데, 그 위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면 꼭 내가 외계 행성에 온 것 같은 이질감이 들었다. 나는 카파도키아에 있는 동안 우치사르에 사는 호스트 유세프의 집에서 머물렀다.


 옆머리는 바짝 밀고 정수리로만 곱슬머리를 길러 꼭 브로콜리 같은 머리를 하고 있던 그는 나보고 놀라지 말라며 본인을 29살이라고 소개했다. 나는 그의 눈가 주름과 푸석거리던 피부를 보아 거뜬히 나이 30은 넘겼을 거라고 짐작했는데, 그가 나보고 놀라지 말라고 언질을 줬던 이유가 본인이 동안이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데에서 기인한 것을 알고 나는 속으로 짐짓 놀랐다. 그의 차는 비록 범퍼카 같은 외형이었지만 그의 집은 방만 6개인 2층집에 널따란 마당과 수영장까지 끼고 있는 곳이었다. 마당의 한 구석에는 펄럭이는 귀를 가진 짜리몽땅한 강아지 세 마리와 그들이 낳은 새끼강아지 네 마리까지 총 일곱 마리의 개가 살고 있었다.


 처음 내가 카파도키아에 도착한 날 터미널까지 나를 데리러 왔던 그는 본인을 학생이자 사업가라고 소개했다. 부유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지만 본인의 고집대로 자수성가하고 싶었던 뜻이 컸던 그는 부모님의 도움 없이 본인의 힘 만으로 장학금을 투자하여 목돈을 모았고, 그 돈을 다시 투자하여 지금의 집과 작은 호텔 하나를 샀다고 했다. 본인 사업의 규모를 키우려면 더 많은 투자자들에게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데 그 과정 속에서 본인의 학력이 장애물이 되는 것 같아 그는 결국 늦깎이 대학생의 길을 선택했던 것이었다. 그런 그가 카우치서핑에서 사람들을 호스팅 하는 이유는 영어실력을 늘리기 위한 목적 때문이라고 그는 솔직하게 얘기해 주었다.


 그의 집은 넓고 마당은 예뻤지만 크나큰 단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너무 외진 곳에 위치해 있어 그의 도움 없이는 절대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는 거였다. 항상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나는 혼자 있을 땐 그 전날 그가 사다 준 우유나 즉석 초르바 같은 것들로 배를 채워야 했다. 겨울의 카파도키아는 꽤나 추웠는데 그곳은 한국 같은 온돌도, 유럽 같은 라디에이터도 없기 때문에 추위에 대적할만한 것이라곤 거실에 위치한 화목난로뿐이었다.


 하루는 그가 불 피우는 걸 깜빡하고 나가버려서 집에 혼자 남은 내가 추위에 덜덜 떨어야 했던 날이 있었다. 추위 속에서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다 지친 나는 결국 직접 불 붙이기에 시도하기에 이르렀는데, 별 일 아닌 것 같아 보였던 나무에 불을 붙이는 일도 내가 직접 하려니 죽어도 안 되는 거였다. 나는 가지고 있던 라이터도 없어서 주방에서 휴지에 불을 붙인 후 그 불을 난로까지 옮겨야 했는데, 왔다 갔다 그 짓을 30분쯤 하자 더 이상 내 인내심이 남아있지가 않았다. 세상 쉬워 보이는 일도 막상 직접 하면 쉽지가 않은 게 세상 사는 이치렷다. 그렇게 나는 성에 갇혀버린 공주처럼 꼼짝없이 그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렇다고 고작 위의 이런 이유들로 내가 그를 최악의 호스트로 꼽은 것은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함께 클럽을 갔던 날 벌어졌다. 나는 그에게 이성적인 감정 하나 없이 정말 그저 친구사이로 클럽에 함께 가자는 말에 동의를 했던 건데 술이 조금 들어가자 그는 나에게 점점 부담스러운 접근을 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나는 그를 재촉해 집으로 돌아갔는데 이번에는 술에 취한 그가 내 방에 마음대로 들어와서 침대 위 내 옆자리에 벌렁 누워버리는 것이었다. 키도 나보다 훨씬 큰 성인남성을 내가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나는 그가 다시 방을 나갈 때까지 그를 계속 구슬리면서 내가 그에게 이성적인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계속 피력해야 했다.


 그 밤이 지난 다음 날, 그가 나에게 적어도 지난밤에 있었던 일에 대해 창피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완전한 내 착각이었다. 그는 나에게 그렇게 한 번 들이대더니 오히려 이젠 거리낄 게 없다는 듯이 대놓고 나에게 더 매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슬쩍 내 뒤로 와서 나를 껴안았고, 내가 티브이를 보고 있으면 옆으로 와서 슬쩍 어깨동무를 했다. 내가 싫다고 그를 밀어낼수록 그는 재밌다는 듯이 계속 나를 그의 품 안에 가두려고 했다. 그의 장난이 점점 내가 받아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자 나는 그곳을 안전하게 떠날 수 있는 계획을 몰래 세우기 시작했다. 나는 오래 머물 것처럼 행동해 그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그다음 날 아침 일찍이 학교를 가기 위해 외출하려는 그의 차에 급하게 올라탔다. 그렇게 나는 겨우 그가 만든 그의 성을 벗어날 수가 있었다.





 튀르키예의 마지막 도시는 남쪽에 위치한 휴양지 안탈리아였다. 그곳의 터미널에 저녁시간에 도착한 나는 그때도 여느 때처럼 주변 사람에게 핸드폰을 빌려 호스트에게 연락을 취했다. 나를 데리러 오겠다던 호스트의 말을 듣고 나는 터미널에 있는 벤치에 앉아 그가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 그가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 거였다. 결국 나는 다시 다른 사람의 전화를 빌려 그에게 다시 연락을 취했는데 한 시간 전에 출발한다던 그는 횡설수설을 하더니 이제야 출발한다고 했다. 신세 지는 마당에 짜증을 낼 수도 없어서 나는 알겠다고 하며 다시 잠자코 또 그를 기다렸다. 그렇게 전화를 해서 현재 위치를 묻고 그를 기다리고, 다시 전화를 하고 기다리던 시간이 2시간도 넘어 3시간 가까이가 되자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자정이 가까워져 오는 시각까지 터미널에 방치되어 있던 나는 생각해낼 수 있는 해결방법이 몇 가지가 되지 않았다. 이 시간에 예약도 안 한 손님을 받는 게스트 하우스가 있을지도 장담을 할 수가 없었던 나는 꼼짝없이 터미널 벤치에 앉아서 밤을 새울 처지가 될 판이었다. 결국 나는 고민 끝에 미리 연락처를 받아두었던 다른 호스트에게 염치를 불구하고 전화를 걸었다. 내 연락을 받고 상황을 들은 그는 곧장 나를 데리러 터미널로 와 주었다.


 첫 번째 호스트가 왜 나에게 데려오겠다고 거짓말을 한 후 오지 않았는지 나는 끝까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두 번째 호스트 알프의 집은 넓고 아늑했다. 그는 지친 나를 위해 이부자리를 마련해 주고 바로 자리를 피해 주었다. 통통한 체격에 호탕한 웃음을 가진 그는 전직 파일럿이라고 했는데, 건강에 이상이 생겨 지금은 지상직으로 변환한 후 재택근무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가끔 식사 후에 티타임을 같이 보내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결혼을 한 번 했다가 이혼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던 그는 여러 방면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걸 과시하려는 경향이 강한 사람이어서 오히려 반감이 들었다. 자기가 얼마나 아는 게 많고 대단한 사람인지 나에게 어필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는데 말 많은 사람이 딱 질색인 나는 그가 입을 열면 열수록 그에 대한 사람대 사람으로서의 좋은 감정이 뚝뚝 떨어져 나갔다. 이상형을 물었을 때 '너는 아니야.'라고 돌려 말한 나의 의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그는 결국 내가 떠나가던 날 공항에 도착한 나에게 고백문자를 보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물론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엔 이유 없다고 하지만 나는 (안경 쓰고 키 작고 배까지 나온 외모는 차치하더라도) 삼촌뻘의 돌싱인 그가 미혼인 나에게 냅다 사랑고백을 갈기는 게 정상인의 범주 내에 해당되는 일인지 혼란스러웠다. 결국 돌려 말하기가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직설적인 대답을 했다. 쿠션어 하나 없는 돌직구를 보냈더니 그 말이 꽤나 아팠던 모양인지 내 대답을 확인한 그는 갑자기 이상한 쪽으로 급발진을 하기 시작했다. 상처받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은 느닷없이 우리 집에서 물건을 훔쳐갔냐면서 나를 도둑년으로 몰아가는 거였다. 나는 끝까지 발악하는 그가 애잔해서 더 이상의 대답은 하지 않은 채 조용히 그의 연락처를 차단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별다른 대꾸 없이 차단엔딩을 선사해 주는 건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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