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여행이었다. 무주를 거쳐 거제도에서 여정을 끝냈다. 그래봐야 고작 2박 3일. 생전 설산도, 눈 덮인 벌판도 본 적이 없던 딸에게 그저 눈을 구경시켜주기 위해 나선 길이었다. 거제도에선 장인이 한 보따리 사 오신 가리비를 먹었다. 모처럼 3대가 모여 새해 첫 주를 보냈다.
여행지에서 더 많이 마시는 이유
집에서도 술을 마시지만 여행에서 더 많이 마신다. 애초에 여행을 안 좋아하는 사람, 지역의 술이라도 맘껏 마시게 해야 여행에 재미를 붙이지 않을까 싶어 아내가 그냥 놔두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여행엔 술을 이고 가진 못해도 마시고 갈 순 있는 처남과 동행했기에 아내가 더 너그러웠다. 덕분에 무주에선 그 지역의 막걸리로 시작을 해서 맥주로 주종을 바꿔가며 마셨고 거제도에서도 외포 막걸리를 시작으로 전통주와 맥주를 마셔가며 가리비를 먹었다.
물론 이렇게 마음 놓고 마시는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집에서는 혹시라도 밤에 자러 가면 모처럼 아내가 동할 수 있기에 그래도 몸뚱이가 말을 듣는 선에서 잔을 치우지만 여행지에선 그럴 일이 없기 때문이다.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그랬고 애를 낳은 뒤엔 더 그렇다.
맨 정신, 준비된 신체
사실, 이건 취향의 문제이자 윤리적 문제일 수 있는데, 난 섹스에 있어서 두 가지 경우를 기피하는 편이다. 하나는 술을 마시고 하는 것, 다른 하나는 돈을 주고 하거나 억지로 하는 것.
전자의 경우엔 사실 별 다른 설명이 필요 없지 않을까? 음주 운전이 위험한 건, 음주 등산과 음주 라이딩과 음주 수영, 골프 등등 여하간 음주의 후의 액션이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정도의 위험을 안고 있는 건 신체 능력과 판단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정신과 육체의 감이 떨어지는 것이다.
뭐, 매일 하는 섹스, 하루쯤 술이 떡이 돼서 하면 어떠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상대방을 생각하면 그게 또 그렇지 않다. 상대방은 어쩌면 큰 결심을 하고, 큰 기대를 하며 날 유혹했을지 모른다. 며칠, 아니 몇 주나 몇 달을 망설이다가 정말 큰마음먹고 승부를 내기로 결심하고 내 옆구리를 찔렀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순간 나를 안기로 마음먹은 사람에게 전력을 다해주는 것이 이쪽의 책임이자 의무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미리 예약을 해라
그래서 몇 년 전부턴 아내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그런다. “하고 싶으면 퇴근 전에 카톡을 보내, 미리 예약하던가. 그럼 한 며칠 금주하면서 몸을 좀 만들어 놓을 테니까.” 아내는 실없는 남편의 농담으로 듣고 넘기는데, 사실 난 아주 진지하다. 아무리 21세기를 함께 헤쳐 온 오랜 전우 같은 사이여도 그 순간만큼은 “역시, 내 남자야.” 뭐 이런 기분을 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니까.
물론 나 말고 어디 가서 딴 놈하고 잔다면 상황이 좀 다르겠지만, 출퇴근 시간과 엄청 바쁜 회사의 일정을 봐서는, 글쎄... 그게 가능하려나? 여하간 남자는 나 하나밖에 없으니 나름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을 아직은 갖고 있다.
서로가 원하는 서로
후자도 같은 맥락이다.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다. 연애 상담을 하는 후배나 제자들에게 늘 해주는 말인데, 사람은 위에서부터 통해야 다 통한다. 그러니까 머리, 즉 생각이 같고, 그다음 마음이 통하고, 그다음에야 몸이 제대로 통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건 같은 액션이야 욱하고 훅하고 불어오는 기운에 그럴 수 있지만 언제 봐도 좋고 언제 안아도 좋은 사람은 저 세 개가 다 통해야 한다고 늘 말해준다.
하기 싫다는 사람과 억지로 하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다. 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고 인연인가. 그 인연과 보내는 그 시간에 한 사람은 뜨겁고 한 사람은 심드렁하다면 불이 제대로 붙을까?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몸과 마음을 다해 임해도 잘 안 될 수 있는 것이 섹스인데 하물며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사람과, 그렇게 마음이 동하지 않는 사람과 섹스를 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 낭비요 체력의 낭비다.
그런 이유로, 어이없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모텔까지 들어가서, 여자의 자취방에서 분위기를 잡다가 그냥 나온 적도 많다. 살면서 이런 기회가, 그러니까 한 남자의 몸과 마음을 온몸으로 받을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는 걸 모르거나 아니면 그런 기회가 많아서 이번 한 번쯤은 건너뛰어도 무방한 사람에게 뭐 굳이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필요 있나?
섹스는 캐치볼이나 프리미어 리그와 같다. 캐치볼에 대해선 밑에 글에 썼으니 프리미어 리그 얘기를 해보자. 아니 거의 모든 축구 시합, 두 팀이 맞서는 거의 모든 스포츠가 그렇다. 양 팀이 기필코 이기고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갖고 필드에서 모든 걸 쏟아낼 때, 그래서 두 팀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뼈와 근육을 부딪히며 필드 구석구석을 그야말로 배틀 필드로 만들 때, 우리는 재미를 느낀다. 한쪽이 너무 약체이거나 이길 의지가 없거나 엉덩이를 뒤로 빼고 수비만 하는 시합은 당연히 재미가 없다. 격투기로 치면 한 명이 오로지 주짓수로만 승부를 보겠다고 걸핏하면 드러눕는 경기와 비슷하다.
성매매를 안 한 이유
이런 이유 때문에, 그러니까 결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평생 성매매를 해 본 적이 없다. 우스갯소리로 나 혼자 좋으라고 하는 게 아닌데 내가 왜 돈을 내야 하나,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그걸 직업을 삼는 사람으로부터 내가 원하는 열정이나 몰입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도 같고. 또 앞서 말했듯, 섹스는 생각과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해야 제대로 한다는 생각도 있고.
같은 맥락에서 여자 종업원이 있는 룸쌀롱이나 도우미가 있는 노래방에 가 본 적도 없다. 이 또한 우스갯소리로 들릴지 모르지만 아니 내 돈 내고 노래방 시간 끊었는데 모르는 사람이 더 부르는 건 너무 비합리적이지 않나? 비싼 술을 시켜서 왜 모르는 사람과 나눠 마시는 거야? 뭐 이런 생각도 없지 않아 있다.
여하간 이런저런 이유로 적극적이지 않는 사람과 해 본적은 거의 없다. 서툰 사람이나 경험이 없는 사람과 해서 조심스럽게 한 적은 있어도 말이다. 세상이 흉흉해서 섹스를 하기로 계약서를 쓰고 도장까지 찍은 뒤에야 섹스를 하라는 말은 아니다. 그저 다음에도 당연히 할 수 있으리라 여겨 오늘 내게 열리는 그 뜨거운 공간과 시간, 그리고 사람을 적당히 대하지 말라는 말이다. 우리가 어디 내일이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 존재던가?
밑의 두 글은 위의 생각을 부연으로 보면 되겠다.
2023.0107
섹스와 캐치볼의 공통점
어제 문현 로터리에서 대연동 방향으로 좌회전을 기다리다 길 가 모텔들의 불이 다 꺼진 게 보였다. 방이 다 찼다는 건가? 그래서 내가 "다들 들어갔나 보네..." 했더니, 마누라가 "추우니까 얼른 저녁 먹고 들어갔겠지"하고 맞장구를 쳤다. 그래서 "난 배에 뭐가 차 있으면 안 되더라. 밥 먹고도 그렇고 술 먹고도 그렇고...", 그리고 덧 붙였다. "진짜 내년엔 좀 컨디션 좀 좋았으면 좋겠다. 진짜 바람피우는 아저씨들 대단한 거야. 두 집 살림하는 남자들도...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 건지..."
저녁을 먹고 술까지 먹고.. 그것도 모자라 2차까지 하고 모텔로 입성하는 불금의 밤을 보내는 사람들의 얘기를 건너 듣는다. 게시판에 다들 자랑들이다. 코스 어떻게 짜면 되냐고 묻는 청춘들도 수두룩하다. 심지어 숙박 애플리케이션에선 인근 지역의 데이트 코스에서 부터 멋진 모텔까지 풀코스로 정보 제공한다. 심지어 사용자가 직접 제공하기도 한다.
"00 갔는데 분위기 좋았어요. 그리고 거기 00 맛집 맛있어요. 해지고 나서 오빠랑 00 모텔... 분위기 짱...."
참... 세상이 변해도 많이 변했다 싶지만 생각해보면 우리 젊었을 때도 겉으로 소문만 안 냈지 루트는 같았다.
만취 상태에서 무슨 동의를?
그래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술 마시고 인사불성 상태에서 누군가를 덮치는 것. 사실 음주 상태에서의 섹스는 건강상으로 그렇게 좋지 않다. 당연히 나이가 들면 발기도 잘 안되고... 술만 더 올라온다. 그래도 청춘일 때는 이런 악조건을 넘어서 할 수는 있겠다만 문제는 있다. 상대가 만취 상태라면 그(그녀)의 동의 상태를 구할 수 없는 것.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아예 법으로 만들었다. 아주 명시적이고 적극적인 동의가 있어야 합의된 성관계로 본다. 워낙에 대학 내에서 이런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는 미국이니까 이런 걸 굳이 법으로 만든 거라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오산. 최근 우리나라도 이런 판례가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술 마시고 하는 거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저렇게 만취 상태에서도 할 생각이 난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그 체력이 가상하기도 하다만...
가장 큰 문제는 만취 후 잠들어 있는 상대의 의사를 물을 기회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혹자는 여자들은 훅 덮쳐주길 바라고 있다, 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만.... 그것도 둘이 어느 정도 사귀고 난 연인 사이일 때나 가능한 거... 솔직히 부부 간에도 훅 덮쳤다가는 욕먹을 수 있다.
놀라운 건, 아내한테조차 종종 이런 내 성향이 거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해석받는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섹스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해서 그렇게 조심스러운 것이라는 것. 그러나 이것이 두려움이라면 약간 뉘앙스가 다르다. 이 마음이 두려움이라면, 동의 없이 덮쳐진 이의 두려움으로 인해 내가 혐오의 대상일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한 번의 강제로 파트너에게 혐오대상으로 찍히는 것만큼 두려운 게 또 있을까?
그러나 이건 두려움이 아니다. 사람에 대한, 그리고 파트너에 대한 예의다. 나에게 마음과 몸과 시간을 내어준 타자에 대한 예의이자 배려다. 인생의 뜨거운 순간을 함께 만들 이에 대한 감사함과 존중의 마음이다.
캐치볼의 윤리와 미덕
사실 이건 캐치볼과 비슷하다. 캐치볼을 하려면 일단 두 사람 다 글러브를 껴야 한다. 그리고 마주 보고 오케이 해야 한다. 내가 던지면 그가 받고, 그가 던지면 내가 받아야 한다. 상대가 준비가 안 돼서, 글러브를 끼고 있지 않다면 내가 던지는 공은 놀이의 차원이 아니라 폭력의 차원이 된다. 또 글러브를 끼고 있더라도 하기 싫다고 한 상대를 향해 공을 던지면 그것도 폭력의 차원이 된다. 또, 당연하게도, 준비가 안 돼 있고 하기도 싫은 사람한테 던지는 것도 당연히 폭력이다.
더 중요한 건 두 사람의 균형이다. 한 사람은 전력으로 던지고 싶고 한 사람은 느긋하게 주고받고 싶은데 그것이 합의가 안 이뤄졌을 때, 그래서 한쪽이 전력으로 계속 던지고 한쪽은 겨우 그것을 받아내면서 날아오는 공을 두려워하고, 받을 때마다 손바닥이 아파 고통스러울 때. 그것도 폭력이 된다.
캐치볼처럼 섹스가 즐겁기 위해서는 결국 동의와 균형, 그리고 조화가 있어야 한다. 놀이에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동의, 만반의 준비를 하고 놀이터로 나오는 자세, 그리고 어느 강도, 어느 정도 하겠다는, 상대의 실력과 힘을 물어보고 놀이를 하는 자세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후에야 비로소 동의와 실력의 균형맞춤, 오랫동안 즐길 수 있는 조화로운 육체의 티키타카.
생각해보면 고수일수록 상대에게 맞춰준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어린이 팬과 캐치볼 하는 거 보면 알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게임에서 애들한테 안타를 맞기도 한다. 상대가 즐거울 수 있다면, 아니 내가 맞춰줘야 비로소 상대가 즐거울 수 있다면, 그리고 상대가 즐겁고 행복해야 나도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사이라면 기꺼이 맞춰줘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섹스와 캐치볼의 미덕이다.
2017. 12. 12. 11:47
여름, 허벅지, 삼세번
많은 남자들이-공부 많이 한 교수들도 포함해서-여자의 허벅지를 마음대로 만져서 문제다. 옆에 있는 여자의 허벅지를 만지려면 여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말로든, 문자로든.
...
후배의 이름은 여름이다. 수원이 본가인 후배가 집에 내려오는 김에 평택들러 나를 보러 간 것이 지난해 봄이었다. 그때는 밥만 먹었던가? 그 뒤로, 5월쯤이던가, 한 번 더 왔었다. 그때는 아마 술도 한 잔 했을 것이다. 그때까지도 그저 인사차 들르는구나 싶었다. 또 동생이 근처에서 자취를 한다고 하니 겸사겸사 들른 거려니 했다.
무더웠던 여름, 세 번째 만남에선 바로 생맥주를 마시러 갔다. 컨테이너 박스 몇 개를 절묘하게 배치해서 마치 이층 테라스처럼 만든 맥주 집이었다.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거기서 그녀가 500cc 두 번째 잔을 주문했을 때, 어쩐지 오늘 이 친구랑 섹스를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첫 번째와 두 번째 맥주의 차이가 뭔지는 정확히 얘기하긴 어렵다.
세 번째 맥주를 시켰을 때 어쩔 수 없이 핫팬츠 밖으로 탄탄하게 뻗어 나온 허벅지에 자꾸 시선이 갔다. 그녀의 허벅지를 만져도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그 이유에 대해선 딱 꼬집어 말하진 못하겠다. 여하간, 세 번째 맥주를 마시면서 그녀의 허벅지를 자꾸 흘끔거리자 후배는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그날 밤 섹스를 했다. 그 이후, 여름 내내, 세 번을 더 만나 섹스를 했다. 세 번 다 지독히도 오래, 힘들게, 쉼표 없이 했다. 모텔 대실 시간을 꽉 채워서 섹스를 한 적은 처음이었다. 한 시간 하고 좀 쉴만하면 그녀는 어김없이 손을 뻗어 내 등에 흐르는 땀을 훔쳐내며 다가왔다. 땀과 체액이 범벅된 물건을 부드럽게 만지며 압박해 왔다.
그 며칠 후, 후배는 일본으로 떠났다.
한 여름, 세번의 기억을 님기고.
...
그녀에게 다시 보자, 언제 보자는 말도, 연락도 없었다. 소문에는 계속 일본에 있다고 들었다. 두세 달에 한 번쯤 문자를 보내도 연락이 없는 건 아마도 일본에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혼자 생각했다. 그 후로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어찌 됐든 그 해 여름 이후 느닷없이 찾아오는 성욕이 줄었다. 그때처럼 지독하게 잘, 열심히, 뜨겁게, 습하게, 소진하며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일까? 어떤 여자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알 수도 없었기 때문일지도. 아니면, 그 해 여름, 많은 걸 비워내고 쏟아냈기 때문일지도. 여름이 다시 올까? 지금은 너무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