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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병의 맥주, 또는 섹스의 전조가 되는 음식에 대해

진지하게 야한 농담들 6

by 최영훈

새해 첫날, 또 이런 글이나 쓰고 있다. 아내와 딸은 어제 시몬스 침대 매장에서 주머니에 몇 개 넣어 온 레몬 캔디를 먹으며 거실에서 <모동숲>을 하고 있다.


넘치는 맥주

이 매거진의 새 글을 쓰는 법은 간단하다. 쓰고 싶은 주제나 소재가 생각나면 우선 지난 십몇 년 간 써 놓은 <진지하게 야한 농담들> 파일을 열어서 키워드로 검색한다. 그와 관련된 문단이 몇 개 있으면 그중에서 하나를 고르고 그 글과 매칭이 되는 글을 새로 쓴다. 그 글에 담긴 생각의 요즘 버전을 쓰거나 그 글의 부연이나 의미의 확장, 새로운 해석을 쓴다.


어젯밤에 누워선 맥주에 대해 써 봐야지 했었다. 문서에서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제법 많았다. 궁금해서 내 블로그에서도 검색해 봤다. <진지하게 야한 농담들> 폴더 외에, 거의 모든 제목의 폴더에서 맥주가 언급된 글이 발견됐다. 책 리뷰에서도, 영화 리뷰에서도, 그저 잡생각을 풀어놓은 글에서도.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나, “맥주를 마시는 것도 지쳐서 영화를 찾아봤다.”와 같은 식이다. 그만큼 맥주를 좋아하는 거겠지.

맥주에 대한 질문들

때문에, 종종 어떤 맥주를 좋아하냐, 이런 경우엔 어떤 맥주가 좋냐, 가장 맛있게 마신 맥주가 뭐냐, 언제 마시는 맥주가 가장 맛있나, 가장 시원하게 마신 맥주는 언제 어디서 마신 맥주였냐 같은 질문은 받곤 한다. 심지어 얼마 전엔 이제 겨우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딸에게 “인생 처음으로 맥주를 마시려 하는 딸에게 어떤 맥주를 권해줄 것이냐?”는 질문도 받아 봤다. 그때, 난 하이네켄을 추천했다. 물론 그날이 오려면 좀 더 기다려야겠지만.


개그맨 김준현이 몇 년 전에 가장 시원하고 맛있게 맥주를 마시는 법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아주 무더운 여름날, 일을 끝내고 퇴근하는 길, 단골 초밥집에서 초밥을 사거나 단골 정육점에서 최고급 소고기 안심을 산다. 당연히 시원한 맥주도 산다. 그 맥주를 냉장고에 넣어놓고 장을 봐온 것도 그렇게 한다. 그 후 샤워를 한다. 기억이 맞는다면, 일부러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다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샤워를 끝낸 후, 초밥과 맥주, 또는 집에 있는 그릴에 소고기를 직접 구우며 맥주를 마실 때, 그때 마시는 맥주가 가장 시원하고 맛있다고 했다.


나도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있다. 친한 사이일 경우엔 어김없이 이렇게 답한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이거나 강의나 강연 같은 곳에선 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맛있는 맥주의 시간

더운 여름, 모텔이나 자취방이다. 커다란 창문이 시끄러운 도로를 향해 나있다. 당연히 창문을 열어도 볼만한 풍경은 없다. 솔직히 도심에 있으면 더 좋다. 세상은 더워 죽어나고 사람들은 이 더위 속에서도 묵묵히 일을 하고 있는데 나와 연인은 여기에 자발적으로 유배되어 있다. 좀비 아포칼립스 세상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두 사람.


에어컨은 켜지 않는다. 아무 데나 옷을 훌렁 벗어 놓고, 땀을 흠뻑 흘리며 섹스를 한다. 더위에 느슨해진 몸은 웜업이나 스트레칭이 필요 없다. 모든 근육이 이완되어 있다. 땀이 눈으로 들어갈 정도로 흐른다. 애무를 하면 짠맛이 느껴진다. 그렇게 나른하면서도 격정적인 섹스가 끝난 후 연인은 너부러져 있다. 나도 힘들다. 침대 끝에 걸터앉아 있다. 땀이 흐르는 연인의 엉덩이를 잠시 만지다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냉장고로 간다.

차가운 병맥주 두 병이 있다. 카프리? 버드와이저? 꺼내자마자 물기가 맺히기 시작한다. “푸슉”하고 딴다. 잔은 필요 없다. 티슈가 곁에 있다면 한 장 뽑아 병 입구를 닦는다. 손가락이나 곁에 있는 티셔츠 자락으로 닦아도 상관없다.


병을 들고, 한 모금 들이킨다. 창가로 가 선다. 창을 연다. 햇살이 들이친다. 한 여름의 햇살을 온몸으로 받은 뒤, 그 햇살을 등진 채 침대 위 연인을 본다. 움직이지 않는다. 부끄러움도 없다. 한기도 느끼지 않는다. 당연히 몸을 가릴 필요도, 그러지도 않는다. 대신 온몸으로 만족감을 발산하고 있다.


평일 오후 두 시에서 네 시 사이면 더 좋다. 다른 이들은 어디선가 일하는데, 난 여기, 연인과 있다. 이제 겨우 1막이 끝난 뒤의 인터미션. “나도 한 모금 줘.”, 말은 이렇게 하면서 몸을 일으킬 생각이 없다. 내가 대신 한 모금 머금고 다가간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준다.


반 병이 남았다. 병을 위태롭게 들고 손목으로 빙글빙글 돌리면서 창 밖의 도시를 보며 한 모금씩 마시고 있을 때, 내 말을 듣지 않는 그 녀석이 갑자기 차가워진다. 맥주에 차가워진 그녀의 입 속으로 사라진다. 반 병을 단숨에 들이켠다. 인터미션이 끝난다.


순서의 역전

많은 남자들이 연인과 술을 마시고 한다. 저녁을 먹고 모텔을 가고 호텔을 간다. 거의 만취가 되어서 썸을 타는 그/그녀의 자취방에 간다. 또는 그 방에서 취할 만큼 취한 뒤 사고를 치기도 한다. 난 그런 적이 없다. 대체로 맨 정신으로 간다. 대신 맥주를 사들고 간다. 물론 많이는 아니다. 한두 캔, 한두 병, 페트병이 나온 뒤로는 1리터짜리 정도.


예전엔 나도 그랬다. 젊었을 땐 점심 먹고, 영화 보고, 저녁 먹고... 그렇게 데이트의 절차를 거쳐 모텔에 다다랐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시간 낭비 같았다. 인생은 짧은데 청춘은 더럽게 짧고, 우리의 체력과 정력 또한 한도가 정해져 있으니 말이다.


순서를 바꿔도 될 것 같았다. “오빠, 나 이러려고 만나?”라고 묻는 연인이 없어서 그랬나? 어느 사람, 어느 순간부터는 우선 일단 하고, 그리고 하면서 마시고, 나와서 밥 먹고... 뭐 그런 프로세스로 갔다.


섹스의 전조를 알리는 의식이나 음식이나 옷이나 속옷이나 말이 필요 없던 사람이 있었다. 일단은 날 안고 나서야 다음 것들이 생각나는 그런 연인이 있었다. 하이라이트가 먼저, 클라이맥스가 먼저, 절정이 먼저여도 몸도 마음도 놀라지 않던 시절의 이야기다.


요즘엔... 전조의 상징도, 순서의 뒤바뀜도 없다. 올해로 쉰이 넘었다. 맥주 그 자체를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다하는 나이가 됐는지도... 얼마 전 아내가 한 편의점 온라인 행사에서 24캔, 맥주 한 박스를 사줬다. 술 마신 다음을 기대하며 사준 것이 아니기에 뭔가 짠한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맥주를 좋아하는 남편에게 맥주를 사주는 것이 쉰을 넘긴 남편과 사는 사십 대 아내의 사랑 표현일지도.

2023.0101



섹스를 예고하는 음식

나이 들면서 불편해지는 거야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단은 소화능력도 떨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뭔가를 먹고 섹스를 한다는 건 서른다섯 이후엔 금기다. 지금은 섹스 자체가 금기가 된 것 같지만.

섹스를 예고하는 음식들이 있었다.

20년 전 얘기다. (나이 먹어서 좋은 건 예전 얘기를 공소시효가 끝난 기분으로 편하게 할 수 있다는 거다.) 대학 때 사귀던 여자랑 일 년 정도 사귄 후 의도한 게 아닌데 데이트 코스가 굳어져 버렸다. 주말에 그녀의 동네-충남대 근처-에서 만나 유부초밥을 먹고 모텔로 가는 거였다.


웃긴가? 근데 난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유부초밥을 먹어본 기억이 없다. 사실 초밥 자체를 먹은 기억이 거의 없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어머니가 평택에 처음 이마트가 생겼을 때 거기서 초밥 세트를 사 온 걸 보고 무지하게 놀랐었다. 아니 이런 걸 대체 어디서 사 왔냐고 말이다. 마트에선 이런 것도 파냐고 말이다. 옛날 얘기다.


어찌 됐든 유부초밥을 먹고 나면 우린 다리 하나 - 아직도 충남대와 유성을 연결하고 있다 - 를 건너, 늘 가던 모텔을 갔다. 맥주 두병을 사가지고. 카프리. 맥주를 한병 나눠 마시고 섹스. 나머지 한 병을 마시면서 쉬다가 또 섹스. 그렇게 대실 시간을 꽉 채우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근처를 산책했다. 야외 공연장에서 노래도 부르곤 했다. 정말 옛날 얘기다.


나이 들면서 이런 프라이밍 되는 싸인이나 음식이 사라졌다. 아내는 메타포도 없고 성욕도 평범한 사람이라 나 역시 섹스의 메타포, 싸인이 사라졌다.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단칸방에 살던 가난한 집에 열 살을 갓 넘긴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러던 어느 쉬는 날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맨 날 보는 아내지만 비가 오고 싱숭생숭 하니 안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철수네 집 놀러 안갈껴?" 하고 집을 내보낼 구실의 운을 뗐다. 그러자 속 깊은 아들이 한마디 했다. "아이고 철수 아빠라고 그 생각 안 나것슈?"


은유가 사라지자 삭막해졌다. 섹스를 부르는 눈빛도, 손짓도, 유혹도 어디선 간 없어졌다. 은유대신 먼 산을 울리는 이상한 메시지만 가득하다. 은유와 튕기는 걸 혼동하는 듯도 하고. 20년 전에는 유부초밥을 먹고 바로 섹스를 해도 체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새삼, 젊다는 건 이래저래 좋고 편리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15.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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