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함께 성장한다.

딸 바보의 시간이 끝난 뒤 37

by 최영훈

고비

지난 겨울, 가족이 몇 번 갔던 거제도의 한 풀빌라의 가장 좋은 숙소를 잡아 장인, 장모님, 처남까지 함께 묵었던 적이 있었다. 그날 밤이었나? 아내가 "내년에 승진하면 또 와요." 했었고, 그때 잠시 쉬고 있던 처남도, "내년에 일이 잘 풀리면 나도 보탤게.", 뭐 이런 식으로 화답했었다.


그 몇 달 후, 처남은 지난봄 직함과 직위와 연봉을 모두 업그레이드해서 한 IT 회사에 들어갔고, 아내는 5월에 승진을 했다. 아내 정도 위치에 있는 직원은 전체 약 2,3천 명의 직원 중 한 2,3퍼센트 정도 되는 것 같고, 그중 여성은 더 적다.


둘 다, 초조한 봄을 보낸 뒤 풍성한 여름을 만났다. 덕분에 딸과 나는 다시 거제도를 찾을 수 있었다. 떠나기 몇 주 전, 아내가 장인과 통화를 했다. "제가 모시러 갈까요?", "아니, 아들 차 타고 가지 뭐.". 결국, 퇴근한 후 이동하려 했던 처남은 아들 차로 가고 싶어 하시는 장인어른을 위해 하루 휴가를 냈다. 참고로 처남은 회사를 옮기자마자 차를 리스했다. GV70... 흠.. 한 번 타봤는데... 거리에 왜 제네시스가 많은지 알겠더라...


올라야 보이는 풍경

거제도에 들어가자마자, 뜬금없이 케이블카를 타기로 계획했단다. 따라가 보니 산골짜기다. 거제도에서, 왜 하필 이런 산속에 케이블카가 있을까? 송도 케이블카처럼 바다를 건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주처럼 높은 산을 올라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실제로, 절반까지 오르는 동안 산만 보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고, 정상의 전망대에 도착하자 거제도를 둘러싼 바다와 섬과 모든 산줄기가 보였다. 내가 한마디 했다. "아, 이러면 오를만하지.", 이 케이블카 생기기 전까지, 이 산을 힘겹게 오르는 사람에게만 허락됐을 풍경이었을 것이다. 이 풍경을 보는 순간 올라오며 쌓였던 모든 피로는 날아갔겠지?


등산하는 사람에게 산에 오르는 이유, 수영하는 사람에게 열심히 수영을 하는 이유, 그 밖에 어떤 것이든 열심히 해서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하고 싶은 사람, 도달한 이후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왜 그리 열심이냐고 물어봐야 소용없다. 그들에게도 답이 없으니 말이다. 어떤 수준, 어떤 위치에 도달했을 때만 누리는 자유와 시각과 정신이 있다. 그걸 말로 설명할 수 있으면 누구나 하겠지...


두려움

도착한 날엔, 물이 너무 따뜻했다. 여름이어서 그냥 찬물로 받아도 되지 않을까, 하고 아내가 말했지만... 내가 "아니, 장모님이 가시면 온수로 받아."하고 말했다. 아내는 굳이 전화를 걸어 확인, 장모님은 역시 온수로 받아달라고 하셨다.


여하간, 난 너무 따뜻한 물에서 수영을 하면 다음날 몸살이 난다. 그래서 도착한 날, 딸은 삼촌과 할머니, 그리고 엄마와 놀았다. 나? 나야 뭐 맥주나 마시면서 멀리 보이는 와현 해수욕장의 풍경을 봤다. 다음 날 아침, 물이 좀 식었기에 아침 여덟 시부터 물놀이를 하자는 딸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수영도 하고 물놀이도 했다.


딸과 물놀이를 갈 때마다 수영을 가르치려고 했지만 결코 무리는 하지 않았다. 수영을 하지 않아도 "물놀이"를 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으니까.... 그렇게 구명조끼와 튜브를 활용하며 몇 년을 놀았다. 그러다 작년, 학교에서 생존 수영을 배우면서 물에 대한 두려움을 좀 없앴는지 잠수도, 뒤로 뜨기도 제법 했다. 문제는 엎드려 뜨기. 그러니까 고개를 물속에 박고 바닥에 시선을 두고 뜨는 걸 두려워했다. 귀와 코와 입으로 물이 들어올 수 있으니까... 사실 어른도 못하거나 안 하는 사람이 많다.


딸이 하고 싶어 하는 눈치를 보였다. 시범을 보여줬다. "딸, 봐봐. 이렇게 툭 힘 빼고 뜨기만 해도 앞으로 갈 수 있어.", 그다음 요령을 가르쳐 줬다. "숨을 들이마셔서 몸에 부력을 높인 뒤에 숨을 참고, 엎드려. 시선은 바닥, 팔은 바닥을 향해서 Y자로 축 늘어트리고. 출발은, 자, 벽에 발을 대. 달리기 스타트하는 것처럼. 준비가 다 됐으면, 벽을 살짝 차면서 몸을 물에 맡겨."


놀랍게도 딸은 한 번에 성공했다. 몇 번 성공하더니... 발을 차려했다. 그러니까 킥을 하려고 했다. "아, 발은 안 차도 돼. 차려면 그렇게 크게 차면 힘만 들고 앞으로 안 가. 다리는 차렷자세에 가깝게, 폭을 좁혀서 잔망스럽게, 가볍게, 톡톡, 잘게 빠르게."


딸은 그대로 했다. 제법 앞으로 갔다. "여기에 숨쉬기 하고 팔만 돌려주면 자유형이 되는 거야.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딸은 물에 뜨기와 발차기만으로도 한 시간 넘게 즐겁게 놀았다. 이게 되니까 잠수도 더 쉬웠고, 물에 가라앉힌 뒤 건져오는 놀이도 더 재미있어하는 눈치였다. "야, 너 발 너무 차면 내일 아침에 못 걷는다.", 노인네 아빠의 걱정도 무시하고 열심히 발을 차며 놀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에게 얘기를 해줬다. "다음 물놀이 때, 숨 쉬기랑 팔 젓기만 배우면 그럴듯하겠어." 하니, "일 년에 하나씩 배우는 거야?" 딸이 웃으며 말했다. "응, 뭐, 천천히 하면 돼, 그리고 뭐 여름 방학 때 어디 수영장이라도 가면, 그때 배울 수도 있고... 너무 서둘 필요 없어."


다른 두려움

지난주, 딸과 함께 시립박물관에서 역관을 주제로 한 기획전시를 보고, 그날 저녁, 오랜만에 롱 보드를 탔다. 작년 가을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올 해엔 영재도 합격한 덕분에 토요일까지 바쁠 정도로 이런저런 스케줄이 많아져서, 일요일에는 딸도 쉬고 싶어 했기에 보드는 꽤 오려 걸려만 있었다.

딸은 꽤 오랜만에 타는데도 불구하고 금세 감을 잡았다. 이걸 처음 배울 때도 속도보단 기본을 중시했었다. 정확히 앞으로 가는 것에 집중하라고 했었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기본기를 닦았다. 그 덕분 일까? 딸은 다시 올라선 보드 위에서 금세 감각을 찾았고 좌로, 우로 자연스럽게 회전했다. 킥 보드도 가져가서, 딸이 그걸 타는 동안 내가 잠시 보드를 빌려 타봤는데... 앞으로 똑바로 가는 것이 쉽지 않다. 노인네는... 두려움이 있으니까.. 엉거주춤...


사족 1

올봄, 미국의 대형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처제가 고향에 왔을 때, 두 여자가 자신들의 삶을 돌아봤다고 한다. 인생이 시원하게 안 풀렸다고, 그래서 삶이 별로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둘 다 여기에 와 있더란다. 처남도 그런 위치에 있고...


사족 2

셋 다, 그러니까 처남과 처제, 그리고 아내까지 AB 형이다. 자기들끼리도 까칠하다고 말한다. 인정, 무난하진 않다.


사족 3

-딸의 다리는 멀쩡하다. 역시 애는 애다. 부럽...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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