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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막차처럼 더디 올 때

그날의 시로 오늘의 너를 위로한다. 36

by 최영훈

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중앙일보 1981, 신춘문예 당선작)


시대의 숙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읽어야 될 시와 소설이 있었다. 90년대 대학에 들어온 사람들에겐 전공을 막론하고 숙제처럼 주어진 시와 소설이 있었던 것이다. 박노해와 기형도, 이생진과 곽재구가 그랬다.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그런 숙제였다. 그렇다. 그들이 쓴 시와 소설을 읽는 건 우리에게 숙제였다. 오렌지 족이라는 호칭이 따라붙었던,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맞이한 풍요의 시대에 무임승차한 70년대 생들에겐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니며 한국의 민주화와 산업의 최전선에서 청춘을 불살랐던 선배들에 대한 일종의 채무감이 있었다. 광복 전후에 태어나 강점기의 고통과 전쟁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어낸 세대에 대한 존경에 대해선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없는 이들도 있었겠지만.


여하간, 이런 맥락에서 우리에겐 읽어야 될 책과 시와 알아야 될 이론과 사상이 숙제처럼 놓였었다. 불행히도 당시엔 몰랐다. 그 안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그 행간에 담긴 아픔이 무엇인지 다 알지 못했다. 숙제였기에 사서, 빌려서 읽었고 밑줄을 그어가며 반복해 읽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것을 읽었다고 말을 해야 대학생 대접을 받던 시기였다. 아니 최소한 인문/사회과학을 공부했다면, 이 중 몇 개는 읽어야만 했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안 그런 이들도 있었지만.


당시 내가 시집을 읽었던 건, 그것이 다른 책 보다 상대적으로 얇고 저렴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또, 많은 책을 꽂아둘 수 없었던 당시의 기숙사 상황에서,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고려했을 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생각해 보면 이런 유명한 시집, 그러니까 우리 세대의 대학생이라면 숙제처럼 읽어야 될 시집을 서점에서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홈쇼핑이 90년대 중반에 등장했으니 온라인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을 때였다.


읽고 싶은 책을 사기 위해선 시내의 서점을 들어가 봐야 했다. 직원에게 물어볼 수도 있지만 그건 어쩐지 쑥스러웠다. 아니 어쩌면 그 책을 찾는 과정 자체가 그 책에게 다가가는 절차 중 하나라고 인식했는지도 모르겠다. 수백 권의 시집에서 찾고 또 찾았다. 사회과학이나 인문 교양 코너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강사가 무심히 말한 학자와 그의 저서를 찾고 또 찾았다. 그렇게 어렵게, 책의 숲에서 찾아낸 두어 권의 책을 사들고 기숙사에 오면 공들여, 시간을 들여 읽었다. 그렇게 애써 찾아 마음을 들여 읽은 책들 중 몇 권이 내 곁에 남아 쉰이 넘은 요즘의 독서의 마중물이 됐고, 이런 글을 쓰게 한다.


한 장의 스냅사진

<사평역에서>도 그런 시였다. 사진 같은 시다. 요즘엔 이런 대합실-대합실이라는 표현도 없어지지 않았을까?-은 보기 힘들다. 내가 타는 동해선, 벡스코역 승강장에 있는 고객 대기실엔 자동문과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으며 자판기도 있다. 겨울에는 당연히 히터가 들어온다. 겉모습만으로 그들의 속사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일단 겉모습은 여유가 있어 보인다. 궁핍과 험난한 일상의 주름살은 보이지 않는다. 튼 손도 땀에 젖은 셔츠도 무릎이 나온 바지도 해진 신발도 보이지 않는다. 다들 말쑥한 옷차림, 담담한 표정으로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며 전동열차가 다가올 때 울리는 팡파르를 닮은 음악을 기다릴 뿐이다.


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동시에 많은 말을 하고 모든 걸 말한다. 흔한 말로 시대의 풍경이자 삶의 풍경이며 시인이 포착한 그 지역의 풍경이다. 시골역이다. 밤늦은 시간, 작은 간이역에 모인 사람들, 어쩌면 서로가 서로의 사정을 알지도 모른다. 각자가 짊어지고 있는 일상의 피로를, 인생의 무게를, 암담한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설령 모른다고 해도 속일 수 없던 시대였다. 삶을 꾸며낼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서로가 그렇게 마주 앉으면 서로의 가난이, 과거가, 미래가 어슴푸레 가늠이 되던 시절이었다. 말이 필요 없다. 할 말도 없다. 열기보다 연기를 더 많이 내뿜는 작은 조개탄 난로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얇은 창밖으로 쌓이는 눈의 소리를 들을 뿐이다. 그리울 새도 없어 미처 그리워하지 못했던 사람과 고향을 그리워하며 눈의 소리를 들을 뿐이다.


절망을 위하여

바람은 자도 마음은 자지 않는다.

철들어 사랑이며 추억이 무엇인지 알기 전에

싸움은 동산 위의 뜨거운 해처럼 우리들의 속살을 태우고

마음의 배고픔이 출렁이는 강기슭에 앉아

종이배를 띄우며 우리들은 절망의 노래를 불렀다.

정이 들어 이제는 한 발짝도 떠날 수 없는 이 땅에서

우리들은 우리들의 머리 위를 짓밟고 간

많고 많은 이방의 발짝 소리를 들었다.

아무도 이웃에게 눈인사를 하지 않았고

누구도 이웃을 위하여 마음을 불태우지 않았다.

어둠이 내린 거리에서 두려움에 떠는

눈짓으로 술집을 떠나는 사내들과

두부 몇 모를 사고 몇 번씩 뒤돌아보며

골목을 들어서는 계집들의 모습이

이제는 우리들의 낯선 슬픔이 되지 않았다.

사랑은 가고 누구도 거슬러 오르지 않는

절망의 강기슭에 배를 띄우며

우리들은 이 땅의 어둠 위에 닻을 내린

많고 많은 풀포기와 별빛이고자 했다.


절망 뒤에 오는 것들

집에 실린 시들은 시인이 1980년대 초반에 쓴 시들을 모은 것이다. 그 시들을 읽다 보면 그 색이 어둡다. 희망이니 소망이니 하는 것들은 지금은 입 밖에 낼 엄두도 안 나는, 꿈조차 꿀 수 없는 초현실적인 무엇인 것만 같다. 현실 저 너머에 있는 무엇. 그래서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이 생각난다. 중간이 없었던 삶의 양태들이 적나라하게 묘사 영화가,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 한 번에 모든 걸 움켜쥔 사람과 아무것도 없이 서울에 올라온 사람만이 살던 시절의 서울, 가난한 이에겐 이별도, 죽음도 밤도둑처럼 예고 없이 찾아오던 그 시절의 대한민국을 묘사한 영화가.

그러나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풀포기와 별이 되고자 했던 사람들은, 그런 소망을 품고 삶을 꾸려가던 사람들은 도처에 있었다. 그의 시집에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신춘문예에 당선된 날, 소주 한 잔 속에 축하 인사를 담아주던 동료들의 모습도, 그 축하 속에도 좁은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무던한 아내의 모습도 담겨 있다.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나해철 시인에게 축전을 보내기 전, 그 들뜬 마음과 그 시인의 시에 담긴 가슴 아픈 가족의 사연을 위로하는 시도 있다. 사랑과 사람만 보고 살림을 합하여 살던 가난한 부부의 이야기도 있다. 가난을 못 이겨 이방인의 여자가 되어 조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첫사랑의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그가 광주에서 겪은 시대의 아픔도 행과 연 사이에 흉터처럼 숨겨져 있다.


요즘의 연재는 내 젊은 시절 했던 숙제 검사를 이제야 받는 건지도 모르겠다. 물론 누구한테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모르기에 내가 선택한 방법이 이것인지도. 두 편의 시만 실었다. 마음 같아선 모든 페이지를 다 싣고 싶었다. 이제 나에 숙제를 그대들에게 건넨다. 그대들이 찾아 사 읽어 서점에서 이 시인과 시집이 현역으로 남을 수 있게 해 주길 바란다. 과거의 전설이 아니라 살아 있는 전설로, 오늘의 현실로, 시대의 육신과 뜨겁게 흐르는 피와 요동치는 맥박을 가진 이 땅의 고백으로 언제까지나 남아있게 이 시집을 손에 들어주길 바란다.


판본을 봤다. 초판은 1983년 5월 25일에 나왔다. 개정판의 초판은 1993년 11월 15일에 나왔고, 난 2003년 9월 5일에 나온 개정판 18쇄를 샀다. 잘 된 일이다. 이 꾸준히 팔린 시집 덕분인지 시인은 그 뒤에도 계속 시를 썼고 시집을 냈다. 나 또한 한 권 더 갖고 있다. 현재는 한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듬해 신춘문예에 당선됐던 나해철 시인은 당선작 <영산포>에 담아냈던 그 모진 가난을 이겨내고 의대를 나와 현재 성형외과 원장으로 있다. 시대를 통과한 이들이 좋은 시대에 좋은 노년을 맞고 있다. 김민기 선생님처럼 너무 일찍 가시지 않길 소망한다.


사평역은 존재하지 않는 역이다. 현재 서울에 있는 지하철 역과는 무관하다. 일설에 의하면 전남 나주의 남평역이 모티브가 됐다고 한다. 참고로 이 시를 소재로 한 단편 소설, 임철우 작가 <사평역>이 있다. 이 소설은 1985년 <TV 문학과 - 사평역>으로 제작됐다. 유튜브에서 전편을 볼 수 있다. 디지털 아카이브의 순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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