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은유와 안방에서 놀고 계시던 시어머님이 살며시 나와 나에게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속삭이셨다.
나는 거실에서 돌돌이로 여기저기 먼지를 떼며 눈으로는 둘째 은호를 쫓고 있던 참이었다.
"어머, 진짜요? 그거 은유 애착이불이라서 안 될 텐데."
"아냐. 정말로 버려도 된대."
이불을 돌돌 말아 봉투에 넣고 묶는 손길이 거침없으셨다.
"아닐 텐데. 은유가 밤에는 찾을걸요? 여행 가서도 자기 이불 어딨냐고 찾는데."
"이제 은유도 좀 큰 거지. 세상에 이 이불 좀 봐. 다 찢어지고 해어지고. 누가 볼까 무섭다."
"은유야. 김은유~엄마한테 와 봐."
나의 부름에 딸이 순진무구한 얼굴로 종종 걸어 나온다.
"엄마 왜?"
"이 이불 정말 버려도 돼?"
"응. 이제 버려도 돼."
"왜?"
"뭐가?"
"이거 은유가 제일 아끼는 이불이잖아. 갓 태어났을 때부터 5년이나 덮었던 이불. 정말 버릴 수 있어?"
"응. 벌레 있어서 싫은데?"
"그.. 그렇구나."
은유는 나올 때처럼 종종 걸어 미련 없이 다시 안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어머님. 그래도 그거 일단 버리지 마세요. 애들은 또 몰라요."
"얘는 참. 그땐 이미 버려서 없다고 해야지. 그래야 정 떼지."
아니 그러니까, 그 정 떼는 게 싫어서 그렇단 말씀입니다...
그 이불은.. 작년에 돌아가신 울 엄마가 사주신 거란 말예요. 나는 소리 내어 엉엉 울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식들 같은 귀여운 아기가 아니니 아무 때나 울 순 없지. 등을 돌려 거실 구석으로 가서 그곳에 먼지가 잔뜩 있는 것처럼 하염없이 돌돌이를 굴리며 애써 밝은 목소리를 냈다.
"그럼 거기 잠깐 두세요. 제가 이따가 버릴게요."
나중에, 그러니까 30년 뒤에 우리 딸 시집갈 때 버릴게요. 다시 한번 마음속 울음 엉엉.
나는 물건에 애착이 없다. 친구들과 스티커 사진을 찍고 온 날에는 80프로의 확률로 당일 잃어버린다. 내 청첩장 한 장 남겨놓지 못했고 어릴 때 썼던 일기 같은 건 당연히 없다. 아이들의 첫 배냇저고리, 탯줄 등을모아 소중히 간직하는 엄마들이 많지만 우리 애들껀죄다 어디가버렸는지 알 수가 없다.
잘 정리하고 제때 버리는 미리멀리스트가 아니라 언제나 줄줄 흘리고 다니는 헐랭이고 잃어버리고 뭘 잃어버렸는지도 잘 모르는 덤벙이다.
그런 나라도 이 이불만큼은 안 된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 배가 서서히 불러오던 어느 가을날 엄마가 말했다.
"백화점에 가자. 아기 이불 사러."
"요즘 인터넷에도 좋은 거 많아. 뭐 하러 백화점을 가."
"안 돼. 인터넷은 믿을 수가 없어. 엄마가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사야 돼."
엄마는 백화점 유아 코너를 돌아다니는 내내 설레 보였다. 신발 좀 봐, 모자 좀 봐, 저 조그만 옷들 좀 봐, 하면서 요리조리 돌아다녔다.
누가 봐도 임신한 딸을 데리고 아기용품을 사러 온 엄마였다. 매출 높여줄 좋은 고객으로 보였다. 그러니 구경하러 들어간 한 브랜드에서 우리를 쉽사리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이불은 저희꺼 제일 많이 하세요. 딸들은 아직 잘 몰라도 어머님들은 딱 알죠. 만져보세요."
직원분은 이불을 꺼내 펼쳤고 엄마는 새하얗고 보드라운 이불을 쓸어보며 이미 상상 속 손녀가 누워있는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걸로 할게요."
오래 고민하지 않고 흔쾌히 결정하는 태도가 부잣집 사모님 같았다. 비록 엄마의 행색은 누가 봐도 동네 아줌마처럼 소박했지만.
이불에서 눈을 뗀 엄마의 눈앞에 직원분은 이미 아기옷 두어 벌을 선보이고 계셨다.
"너~무 예쁘죠? 손자가 아니라 손녀면 이런 게 행복이에요. 딸들 옷은 정말 너~무 예쁘거든요."
그렇게 노란색 내복 하나, 하얀색 우주복 하나, 분홍색 모자 하나도 이불 위에 차곡차곡 올려졌다.
50만 원이 넘는 금액을 일시불로 흔쾌히 결제하고 위풍당당하게 직원의 배웅을 받아내는 엄마를 보니 갑자기 왜 그리 애틋하던지.
본인은 홈쇼핑으로 세 벌에 사만 구천구백 원짜리 옷을 사 입으면서 아직 얼굴 한 번 보지 못 한 손녀에게 벌써부터 정을 주고 큰돈을 쓴다는 것이 고마웠다.
암투병 중인 엄마를 위해 임신을 서둘렀는데 엄마는 임신 중인 나를 위해 밥을 짓고 간식을 만들고 아기용품을 산다. 우리의 사랑이 뱅글뱅글 돌며 점점 더 커진다.
몇 년을 쓴 이불이 조금씩 낡고 해어지기 시작함과 동시에 엄마의 병이 심각해졌다.
엄마는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 종종 은유 이불 걱정을 했다.
"은유 이불 새로 사줘야 하는데. 이제 낡았지?"
"그거 걔 애착이불이야. 없으면 난리 나. 새로 사줘도 싫다고 할걸?"
"그래도.. 너무 낡은 이불은 보기 싫어. 내가 얼른 나가서 새 이불 사줘야지. 할머니가 새로 사준 이불은 또 애착 갖고 잘 쓸 거야."
그러나 엄마는 퇴원하지 못했고 그래서 이불을 새로 사주지도 못한 채 그대로 병원에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이끌고 죽음으로 걸어 들어갔다.
버려지기 일보 직전!
찢어지기 시작한 이불을 세탁기와 건조기에 마구 돌려 만신창이로 만든 내가 문제다. 조금 찢어졌을 때 깨끗이 수선해 두었으면 됐을걸. 누가 봐도 쓰레기처럼 보이게 관리를 못 한 내 잘못이다.
만약 엄마가 살아계시다면 그 지경이 된 이불을 내가 먼저 갖다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불은 결국 외할머니가 사준 마지막 이불이 되었기에 관리를 못 하면서 포기도 못했던 것이다.
나는 어쩌면 은유가 엄마가 사준 그 이불을 애정하는 걸 보기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은유가 생각보다 그 이불에 미련이 없는 것을 속상해한 것도 같다.
우리 어머님은 좋은 분이시다. 그래서 더더욱 이런 얘기를 구구절절하지 못했다. 나는 말하다 분명 울음을 터뜨릴 것이고 그러면 우리 어머님은 오래오래 마음에 담고 미안해하실 테니.
어머님이 이불을 가지고 내려가실까 봐 계속 머릿속으로 대사를 연습하긴 했다.
"어머님. 사실 그게 저희 엄마가 사주신 건데 추억이 많아서요. 제 마음이 정리되면 그때 버릴게요."
이 말을 울지 않고 하기 위해 수십 번 되뇌며 연습했다.
다행히 어머님은 이불을 잊고 (혹은 버리겠다는 나를 믿고) 집에 가셨고 나는 그제야 이불봉지를 재빠르게 장롱에 숨겼다.
나중에 어머님이 이 이불봉지를 다시 보시게 되면 어떡하지?
그때쯤이면 울지 않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보다 내가 단단해져서 어쩌면 넉살 좋게 농담을 건넬 수도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