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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Feb 07. 2023

크라센 교수님의 답장

척박한 영어환경 한 줄로 채워가기

Stephen Krashen.(Professor of Education, USCRossier School of Education)

언어학자로 유명한 스티브 크라센 교수님께 이메일을 보냈다. 한국에 살며 아이들과 부모님들께 영어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여인이, 읽기와 관련하여 궁금한 게 하나 있다고.

메일을 보내고 하루가 가기 전에, 교수님이 답장을 주셨다. 매우 감사하단 말씀 먼저 전한다.




'크라센의 읽기 혁명' <The Power of Reading, 2013> 책이 한국에 소개되었다. 이후, “읽기는 언어를 배우는 최상의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유일한 방법이다.”라는 인용구로 많은 이들이 읽기에 열을 올린 것으로 안다. 나 역시도 그중의 한 명으로, 읽기의 중요성을 뒷받침해 주는 권위자의 힘을 빌 수 있어 좋았다. 파닉스 문제집 푸는 것보다, 그림책을 함께 즐겁게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할 언덕이 생겼으니 말이다. 그래서 영어책 읽기를 집에서도 해 주시길 부탁했었다.  


교수님께 드린 질문의 요지는 이렇다.

자발적 읽기(Free Voluntary Reading)가 중요하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다만, 한국 학생들의 경우, 충분한 영어소리를 접하지 않은 채, 파닉스로 읽기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시겠지만, 시험 점수가 중요시되는 한국에서, '자발적 읽기' 자체까지 가는 것조차도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책의 내용과 연구 결과들-'읽기가 언어를 배우는 유일한 방법'이, 한국처럼 영어를 외국어로 '학습'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공통점이 있다고 해도, 영어를 공식언어로 쓰는 환경의 아이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연구결과를 그렇지 않은 환경의 아이들에게 같게 적용할 수는 없다고 본다. 안다. 알아서 참고하고 절충하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교수님께 직접 메일을 보낸 이유는 하나다. 그분의 의도와 상관없이, 자발적 읽기도 아닌 '읽기'만 뚝 떼어, 읽기를 (영어)라는 언어를 배우는 데 유일한 방법처럼 포장하려는 분들께, 교수님의 목소리로 '그게 다가 아닌데'를 들려드리고 싶었다. 권위에의 호소라고나 할까.  


 Most phonics is acquired by reading.
And a little bit of "learning" is helpful.  
But it is very limited.


파닉스 학습을 통해 어느 정도 도움은 받을 수 있겠으나, 읽기를 통해 대부분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 교수님의 답변 요지다. 자발적 읽기는 당신께서 전제한 것이 충족된다면 어디서든 충분히 가능한 것으로 믿는 분이라고 이해했다. 한국 전체 시스템에는 적용할 수 없지만, 가정에서 개인적으로 자발적 읽기를 통해 영어를 언어로 성장시킨 아이들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영어를 외국어로 쓴다는 것은, 사회에서 쓰는 주된 언어가 영어가 아니라는 얘기다. 교수님의 답변처럼, 읽기를 통해 파닉스를 해결하려면, 차고 넘치는 영어 소리가 읽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머릿속에 들어 있어야 한다. 전제가 쏙 빠진 읽기 혁명을 이루려다 보니, 많은 이들이 미완성의 파닉스부터 완성해야 할 것처럼 생각했다. (파닉스 6개월 완성이란 광고를 비웃듯 파닉스 방학 특강 4주 완성도 보았다.) 문해력 빠진 읽기라도 얼른 시작해야 할 것처럼, 영어는 아이도 어른도 불안하게 만들었다.


교수님이 보내주신 자료에는, '공부를 제일 잘한다는 학생, 선생님 그리고 학자들도 파닉스의 규칙을 모두 알고 익힐 수는 없다'라고 나와있다. 


"Even the best students do not learn all the rules presented in class. In fact, the most knowledgeable teachers don’t know all the rules, and even the most expert scholars have not discovered the rules (Smith, 2004). This is a powerful argument for the reality and usefulness of acquired phonics."


안다. 미국 선생님도 다 모르는 것을 아이들에게 4주 만에 완성시키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아이마다 다르지만, 커리큘럼 4주를 끝내면, 간판 정도는 소리조합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이 이런 힘에 있었음을. (너무 거창했나.)


“읽기는 언어를 배우는 최상의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유일한 방법이다.”

교수님의 말씀이 대다수의 한국 학생들에게도 이루어질 날을 꿈꿔 본다.

기본 시스템과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시간은 조금 더 오래 걸리겠지만.

그래도 그날을 꿈꿔 본다. 한 줄 한 줄... 날실과 씨실이 엮이듯 살아있는 영어를 꿈꿔 본다. 


배움이 느려, 영어가 재미없던 시간이 꽤나 길었다. 그래서일까, 영어시험 점수로 아이들의 언어세상을 재단하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이 꺼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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