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렵다.

아이의 강박증


아이의 강박증이 또다시 일상에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두려웠다. 작년 여름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던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몰라.. 무엇보다 아이의 괴로움보다 나의 감정이 더 무서웠었다.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두려워졌다. 그리고 신호를 모른 척하고 싶었다.

이내 아닐 거야… 부정하고 싶었다.




오늘 아침 마라톤이 있어서 아이를 깨웠다.

아이는 (내 눈에) 생트집을 잡았다. 확신했다. 강박증이 터져 나왔다.

건너방에서 자고 있던 남편이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올 정도였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

옷이 바르게 걸려있지 않았다고 몇 번이고 옷장에서 꺼내서 다시 입고, 다시 입고 다시 입고를 반복했다.

예민한 게 아니다. 아이도 힘든 것이다. 괴로운 것이다.

작년 강박증이 피크를 찍었을 때, 책을 제대로 읽지를 못했다.

소리 내어 읽다 한글자라도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했기 때문에 울면서 첫 장으로 돌아가고 소리치면서 첫 장으로 돌아가고

한약을 먹이다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같이 달리는 것이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로마마라톤을 신청했던 것도 아이의 강박증이 이유였다.

강박증이 희미해지면서 신청 이유가 <나>만 남았던 것이었다.





아이는 (내 눈에 아빠의 눈에) 무척 이기적이다.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른다. 동생에게 양보를 하지 않고, 엄마인 나를 빼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기적이다.




사실 나는 동생이 정말 싫었다. 하나뿐인 동생인데 유년시절 나를 졸졸 쫓아다니던 내 동생이 너무 싫었다.

오히려 다른 동생들은 그렇게 이뻐하면서 이상하게 내 동생은 거머리 같았다.

동생에게 왜 그러냐고 엄마한테 많이 혼났는데, 동생을 아끼라는 것이 나에겐 강요고 협박이었다.

진짜 싫은데, 동생이라는 이유로 왜 내가 아끼고 배려해야 하지?

나도 그런 생각을 품고 있기 때문에 (사실은 현재진행형) 동생과 우애 깊게 지냈으면 하는 것이 엄마의 욕심이라는 것도 사실 잘 알고 있다.



강박증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냥 희미해지는 것이지

주변 환경에 따라 언제든 자신의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

그로 인해 내 마인드컨트롤이 힘든 것이 <괴로워하는 아이>보다 더 힘들고 싫다.


아이의 강박증도 어쩌면 아이의 본성이다.

동생을 강력한 라이벌로 여기는 아이의 본성

그걸 잘못했다고, 넌 왜 그러냐고 혼내본들 아이가 나의 언어를 자신의 언어로 해석이 가능하긴 한 걸까?


아이의 본성을 존중해 주면서

아이가 괴롭지 않게 자신을 괴롭히면서 살지 않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이 데리고 달리기를 하는 게 맞는 것인가…

오늘 마라톤을 끝내고 감흥 없이 무대 공연을 바라보는 아이를 보니,

내가 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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