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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Yeo Oct 11. 2024

8화. 여자의 일생

영웅이가 돌아가고, 나는 거의 동이 트고 나서야 잠들 수 있었다. 

여러 이유로 꼭 이 두 가지가 꿈이었으면 했다. 

내가 정녕 서른이 되었다는 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거.
하지만 불행히도, 꿈이 아니었다.
슬픔은 왜 파도가 되어 한 번에 찾아오곤 할까.





“어이! 백설! 문 좀 열어 줘 봐.”
문밖에 들리는 뜻밖의 목소리의 주인공은 은경 언니였다. 

언니의 목소리에 잠에서 막 깬 나는 정신없이 현관문을 열었다.

“언니! 전화도 없이 웬일이야?”

문을 열자 찬바람이 그 틈을 타 집 안으로 들어와 나를 감싸 안았다. 

“어흐~! 추워! 빨리도 열어준다! 야, 이 지지배야! 전화를 세 통이나 했는데 니가 안 받아서 그냥 와 봤지! 점심때가 다 됐고만!” 

언니가 꽁꽁 언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뒤늦게 확인한 핸드폰에는 정말 부재중 전화가 정확히 세 번 찍혀있었다. 

“미안... 어제 너무 늦게 잠 들어서 이제 봤어. 얼른 여기 앉아, 언니.” 

나는 아직 졸린 눈을 비비며 대답했다. 

“오늘 너 쉬잖아. 아직 밥도 안 먹었지?”
은경 언니는 검은 비닐봉지에서 김밥을 주섬주섬 꺼내며 물었다. 

나는 끄덕이며 언니가 사 온 김밥 두 개를 바로 입으로 가져갔다. 

평소보다 허기가 졌다.
“맛있다 언니. 근데 그러고 보니까, 민희는 어쩌고?”

이 시간에 언니가 홀로 밖에 외출한 건, 언니가 어린 딸 민희를 낳고는 잘 없는 일이었다. 

이제 막 돌을 맞이한 어린 민희에게서 언니는 좀처럼 떨어질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 어디 좀 다녀오느라고. 친정에 잠깐 맡겼어.”

“아침부터 어딜 갔는데 언니가 민희를 친정에 다 맡겼어?” 

언니의 말에 난 대수롭지 않게 김밥을 손에 가득 쥐며 물었다. 

“병원. 설아, 나 위암 말기래.”

입에 막 김밥을 넣으려던 내 손이 자동으로 멈췄다. 

나는 말없이 은경 언니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몸이 요 몇 주 사이 너무 아프더라고. 갑자기 사람이 이렇게 아플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뭐, 방법이 없다 나 봐. 길어야 석 달이라는데, 치료는 지금 와서 무슨. 나 그냥 자유롭게 살다 가려고. 인생 참.”

아무렇지 않게 김밥을 집으려던 은경 언니의 손을 내가 덥석 잡았다.
“언니가 가긴 어딜 가. 이게 다 무슨 소리야. 살 생각을 해야지. 치료받자. 치료받으면...”
언니가 더 말하려는 내 입에 손에 쥔 김밥을 넣어버렸다.
“야, 나 그 얘기 이따 민희 데리러 가면 친정 가서도 들어야 되거든? 너는 그냥, 오늘 이 불쌍한 언니 하소연이나 좀 들어주라. 남편 있는 집구석은 들어가기 싫고, 어린 딸 얼굴 보면 눈물부터 터질까 봐 일단 이리로 피신 온 거니까. 알겠냐?”

나는 터져 나올 것만 같은 눈물을 참으며 입안 가득한 김밥을 억지로 우물거렸다.
“설아. 나 이렇게 금방 죽을지 알았으면 나이 많은 개새끼랑 결혼 안 했을 텐데, 그치? 내가 너무 구식이었다? 나 자신한테 미안해 죽겠어. 우리 시댁은, 내가 무슨 애 낳는 기계인 줄 알아. 결혼할 때부터 애 빨리 낳으라고 난리셨거든. 근데 애를 하나 더 낳아야 우리 앞으로 떨어지는 지원금 그거 좀 늘어나거든? 그거 본인들 용돈으로 쓰게, 민희 동생 빨리 만들라는 거 있지. 우리 어머님은 이 얘길 얼마나 뻔뻔하게 하시던지... 남편이란 작자는 내 나이 서른 후반에 결혼해 준거 그거 하나로 허구한 날 사람을 얼마나 개 무시하는지 아냐? 나쁜 놈, 지 나이는 생각 안 하고. 그 인간 하루 세끼 밥상 차리다 내가 병을 키운 거 같아. 그 인간은 나 죽으면 바로 새 부인 얻을 인간이야. 어휴! 개새끼! 작년에 내가 일이 이리 될지 어찌 알 수 있었겠냐? 우리 민희만 불쌍하게 됐지...” 

나는 봇물 터지듯 억울함을 토로하는 은경 언니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터져 나오는 눈물을 소매로 닦으며 언니를 바라보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설이 너 괜히 내 말 듣고 맘에도 없는 결혼 덜컥해 버리지 말라고. 그 말 해주러 왔어. 내가 뭐라고 너한테 영웅이 만한 남자가 없다느니, 어쩌고저쩌고. 네 인생인데 건방졌지, 내가. 설이 너 주변 의식하지 말고 네 마음 가는 대로 살아. 결혼을 하든 말든 그건 네 인생이니까. 설마... 벌써 오케이 한 건 아니지?"

나는 아니란 의미로 계속해서 눈물을 닦으며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은경 언니는 조금 안도한 눈치였다. 

언니는 자신의 입김으로 인해 내가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선택을 할까 봐 마음을 졸였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차마 언니에게 그의 청혼을 거절했다, 그와 이별했다 말하진 못했다. 

나의 불행까지 차마 은경 언니에게 옮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설이 너, 이렇게 우는 건 진짜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야! 그만 울어! 내가 죽지, 니가 죽냐?” 

나의 서러운 울음이 은경 언니에게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으리란 걸 알기에, 나는 참아보려 애썼다. 

하지만 마음이 아팠다. 

나는 어느새 눈물이 차오른 은경 언니를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끌어안았다. 

은경 언니는 내게 안겨 조금 훌쩍이다, 이내 엉엉 큰 소리로 울어버렸다. 

나는 그런 은경 언니의 등을 토닥이며 가여운 언니를 더 꽉 끌어안았다.
그 어떤 여자의 일생도 이렇게 끝나서는 안 되는 거였다.
은경 언니도.
우리 엄마도,
엄마 문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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