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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Yeo Oct 11. 2024

에필로그

은경 언니는 몇 달 뒤에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가는 날까지 혼자 남겨질 딸, 민희 걱정을 하면서. 

그리고 내 걱정을 하면서.
그리고 난 오늘, 내 전 재산을 털어 떠난다. 

내 나이 서른에 꼭 이루고자 했던 일인데, 정말 실행할 수 있을 줄은 나조차도 몰랐다. 

뚜렷한 계획은 없다. 

당분간은 유럽을 떠돌아다니며 여행을 할 생각이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나라에 짐을 풀고 어학원을 다녀볼 생각이다. 

이왕이면 바다가 많은 나라에.




“여권 잘 챙긴 거 맞지? 그리고 거기 소매치기 많아. 조심해야 돼.”
날 데려다주기 위해 공항까지 함께 온 영웅이는 마치 냇가에 내놓은 아이 보듯 나를 보며 말했다. 

홀로 출국하는 내가 영 마음이 놓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걱정 마. 어떤 간 큰 소매치기가 이 백설이 가방을 털려고.”

영웅이는 내 말에 역시 못 말린 다는 듯 웃어 보이고는 날 꼭 품에 안았다. 그리고 내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항상 몸조심 하고, 무슨 일 있음 바로 전화해.”
영웅이의 말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한 달 뒤에 파리에서 만나.”
그리고 나는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여전히 영웅이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영웅이에게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기다려 달라 부탁했다. 

염치없지만 내 곁에 있어 달라고, 날 떠나지 말아 달라 말했다. 

영웅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웅이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의 장기 여행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데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영웅이에게 여행을 함께 가지 않겠냐고 제안한 사람은 바로 나다. 

영웅이는 부모님을 설득할 시간이 필요하지만, 바람과 같이 떠도는 이 여행에 흔쾌히 합류하기로 했다. 

영웅이는 내게 덧붙여 말했다. 

함께 세상을 돌아다니다 우리의 선택에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곳에 눌러 앉자고. 

나이 서른이던 마흔이던, 삶의 모든 선택이 오로지 우리의 것인 곳에 정착하자고. 

위험한 선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한순간 영웅이의 맘이 바뀔 수 있다는 것도. 

반대로 내 맘이 어느 쪽으로든 변할 수 있다는 사실도. 

하지만 지금부터는 내가 미래에 어떤 선택을 하던, 자유로워지려 한다. 

결과가 어찌 되던 영웅이를 내 마음껏 사랑하려 한다. 

그와 꿈꾸는 모든 미래를 상상하며, 더 이상 엄마에게 미안해하지는 않으려 한다. 

이제는 기억 속의 엄마를 불행 속에 내 멋대로 가두지 않는다.

진짜 기억 속의 엄마는 늘 날 보고 활짝 웃었으니까.
 
 난생처음 타는 비행기가 드디어 공중에 떠올랐다.
 그리고 하늘 위에서 난 꿈을 꾸었다.
 문어 엄마가 보인다.
 작은 새끼 문어와 사이좋게 넓고 푸른 바다를 헤엄치는 문어 엄마가.

 



 <나는 문어가 될 수 없어>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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