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가 사는 동네
철든 여자 철없는 남자 #4
- 철든 여자 -
"안녕하세요? 오늘은 더 예쁘시네요?"
그가 웃으며 인사를 해왔다. 아이구 사람 볼 줄은 알아가지구! 그의 예쁘다는 말에 난 기분이 좋아져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요즘은 정말 살맛 나는 세상이다. 그에게 줄 국수 그릇에 방금 삶은 국수를 가득 담고 고명도 골고루 잔뜩 얹었다.
"야 이년아, 그렇게 퍼줘서 밥 벌어먹겠냐?"
뒤에서 엄마가 한소리 했다. 그가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뜨아한 표정을 지었고 난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사랑을 위해서라면 엄마의 잔소리쯤이야. 같이 일하는 언니도 덩달아 삐딱하게 말했다.
"그 사람하고 진도 잘 나가냐? 괜히 몸조심해라! 나중에 질질 짜지 말고..."
그 언니는 아직 사귀는 남자가 없다. 하긴 그 얼굴 그 몸매에 성질마저도 한가닥 하니. 밉다 밉다 하니까 언니가 한 마디 덧붙였다.
"그 사람 친구 중에 나랑 어울릴만한 킹카 없다던? 언제 소개 좀 시켜줘라."
오늘은 월요일 난 늦잠을 즐기면서 내 침대에서 뒹굴고 있었다. 매주 월요일은 도서관이 휴관이다. 덕분에 남들이 말하는 월요병은 나의 사전에 없다. 그 사람도 오늘은 집에서 쉬겠지? 하기야 맨날맨날 공부하기도 힘들 테니까!
"지혜야, 이 지지배야. 일어나라! 밥 안 먹냐?"
엄마의 성화에 좋던 기분 다 잡쳤다. 마지못해 식탁에 앉아 밥숟갈을 뜨는 둥 마는 둥 했다.
"이 지지배야, 그러면 복 다 나간다!"
엄마의 긁는 소리에 그냥 내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아.. 오늘은 무슨 일로 뜻깊은 청춘의 하루를 보낸다? 그렇지! 난 허겁지겁 옷을 챙겨 입고 대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그가 사는 동네로 향했다. 그의 집 주변을 네 바퀴나 돌았다. 혹시 그를 볼 수 있을까 해서.
저 멀리 골목 끝에서 한 남자가 아이 손을 잡고 올라오고 있었다. 입에는 둘 다 아이스크림 한 개씩을 물고 있고 남자의 한쪽 손에는 목욕가방이 들려있었다. 근데 어쩐지 낯익은 모습이었다. 그렇다!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근데 웬 아이일까? 그의 모습이 가까워질수록 내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안녕하세요?"
"어? 지혜 씨! 여긴 웬일이세요?"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아.. 이 동네에 친구 집이 있어서요. 그런데 이 동네에 사시나 봐요?"
"예..."
"근데.. 쟤는 누구예요? 좀 닮은 것 같은데요?"
"예? 아.. 예, 얘는 제 조카예요."
아이의 입을 막으며 말하는 그의 모습이 어딘지 어색하게 보였다. 조카랑 목욕을 가나? 어렵사리 그를 만났지만 어색해하는 모습에 별 말도 못 하고 헤어졌다.
"저 누나 누구야?"
아이의 손을 재촉해 끌고 가는 그의 모습과 몇 번을 뒤돌아보며 나와 눈길이 마주치는 아이의 모습이 묘한 여운을 남긴다.
아.. 괜히 기분이 이상해지려고 한다.
- 철없는 남자 -
그녀는 내가 예쁘다고 해줬더니 맨날 화장을 하고 다닌다. 화장하는 실력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 이젠 쥐 잡아먹은 모습까지는 아니다. 격려차원에서 한마디 해주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더 예쁘시네요?"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거짓말도 때로는 가치 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야 이년아, 그렇게 퍼줘서 밥 벌어먹겠냐?"
그녀가 국수를 좀 듬뿍 말아줬다고 주인아줌마한테 한 소리 들었다. 그 아줌마 성질이 딥따 드럽다. 조심해야겠다. 옆에 있는 다른 아가씨도 그녀를 째려본다. 그녀 혼자 왕따 당하는 것 같아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월요일 도서관도 휴관하고 갈 곳이 없다. 하루 종일 아내랑 아들 녀석한테 시달려야 할 것 같다.
"영철이 데리고 목욕이나 다녀오세요!"
아내의 등쌀에 아들 녀석 데리고 목욕탕엘 갔다. 아들 녀석 핑계 대고 아이스크림 값도 얻어서.
목욕탕에서 영철이가 때 안 벗긴다고 고집 피우는 바람에 그 어린 녀석의 엉덩이를 몇 대 때렸다. 옆에 앉아서 불룩 나온 아랫배를 들어 올리고 씩씩대며 때를 밀던 아저씨가 한 마디 했다.
"애를 살살 달래야지 그러다 애 잡겠어!"
난 속으로 투덜거렸다. 누군 때리고 싶어서 때리냐? 애가 지 엄마 닮아서 말을 안 들으니까 그렇지. 하지만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아빠인가 보다. 내 성질을 못 이겨 때렸지만 몇 대 맞고 우는 영철이를 보니까 마음이 아팠다.
목욕탕에서 나와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토라진 영철이를 달랬다. 역시 아이는 단순했다. 아이스크림 한 개에 금방 헤헤 거렸다. 덕분에 나도 한 개 얻어먹었다. 입에서 살살 녹는 아이스크림 맛에 기분까지 좋아졌다.
좋아서 깡충거리는 영철이 손을 잡고 골목길을 오다가 그녀를 만났다. 정말 뜻밖이었는데 이 동네에 친구가 산다고 했다.
영철이를 가리키며 '누구냐?'는 그녀의 질문에 전에 한 말도 있고 해서 엉겁결에 '조카'라고 했다. 영철이가 입을 열려고 해서 급하게 영철이의 입을 막았다. 하마터면 들통날 뻔했다. 아! 또 한번 내 순발력과 임기응변 능력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두꺼운 얼굴과 획획 잘 돌아가는 잔머리 게다가 말발도 이 정도면 정계로 진출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녀와 헤어져 돌아오는데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았다.
"저 누나 누구야?"
몇 번을 뒤돌아 보며 묻는 영철이가 아무래도 집에 가서 지 엄마한테 일러바칠 것 같다.
"아빠가 아빠 아니래!"
아! 아무래도 내 주위에 아군은 없는 것 같다. 오늘 하루를 밥 굶지 않고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지고 무지무지하게 허기가 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