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일기] 보이후드, 부산

치킨난반과 가지덮밥. 우연한 방문, 잊지 못하는 맛.

by 김고로

우리의 부산 전포동 방문은 강릉에서 자주 보았던 원두의 판매처인 WERK(베르크)로스터스를 찾아가는 것을 계획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런저런 검색을 하고 보니 청주의 카페지구나 강릉의 안목 카페거리처럼 부산에도 전포동에 카페거리라는 동네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베르크 로스터스에서 커피를 한 잔 하려고 생각해보니 그전에 간단하거나 혹은 푸짐한 점심식사를 미리 하고서 핸드드립 커피를 한잔 즐기면서 집에 오자는 것이 우리의 처음 계획이었다. 지도 어플로 전포동 지하철역 근처의 수많은 카페들과 식당들의 더 수많은 사진들과 리뷰들, 메뉴들을 살펴보면서 고심을 하던 나는 결국 누군가가 여기에서만 맛볼 수 있는 (사실 모든 식당의 메뉴들은 그 식당에서만 맛볼 수 있다, 기성품이 아니라면) 맛을 가진 옛날 감성의 일식 카레집이 있다고 하여 부푼 기대감을 안고 찾아갔던 것이다.


날은 따뜻하고 선선하며 전포동 뒤로 우뚝 솟은 산을 배경으로 깔린 골목과 건물들, 활기찬 사람들과 느긋한 카페의 풍경들이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그러한 미식 여정의 출발이었다. 우리가 가려고 했었던 카레집의 개점 시간은 오전 11시 30분, 그리고 우리는 전포 지하철역에 11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했기에 이쁜 여자와 나는 전포동에 있는 아담하고 젊은 친구들의 감성이 느껴지는 술집, 빵집, 밥집 사이를 누비고 다니며 예상보다 감성적인 장면을 자랑하는 전포동의 매력을 즐겼다. 하지만 여기서 변수가 하나 발생했다, 오전 11시 30분이 지나도 우리가 입장하려고 했던 일식 카레집이 문을 열지 않는 것이었다, 갈색의 양철 스테인리스와 통유리창으로 외벽을 꾸민 집이었기 때문에 내부에 사람이 있는지 영업을 하는지 안 하는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집이었기에 이 집에서 끝내주는 카레를 먹고 나서 끝내주는 커피를 먹으러 가려고 행복회로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던 나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양철문 위에 불쑥 솟아있는 잠금장치는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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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 여자의 위장은 이미 배고픔으로 고통받고 있었고 두통과 어지러움과 피곤함이 그녀에게 뒤따라 찾아왔다, '매우 배고프다, 밥을 내놔라'라고 하는 이쁜 여자 신체 특유 굶주림에 대한 표현이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이미 그 전포동 골목에 들어오면서 주변에 자리 잡고 있던 간단하게 무언가를 먹을 만한 점포들을 한눈에 훑어보고는 입구 근처에 자리 잡고 있던 피낭시에와 머핀들을 팔고 있던 집으로 이쁜 여자를 데려가 달걀과 베이컨으로 구워진 머핀을 입에 넣어주고 잠시 배고픔에 대한 여유가 생긴 우리는 다시 전포동의 거리들을 어슬렁거리며 계획의 목적지 중 하나였던 카레집이 열기를 기다렸지만 그저 야속하기만 했다. 결국 나는 이쁜 여자에게 말했다.


"오늘 여기 안 열어"


"그럼 우리 어디로 가?"


"자... 내가 몇 개 보여줄게."


혹시나 하는 마음에 Plan B를 세워서 가져온 나는 그녀에게 전포동 카페거리에 있는 서너 개의 맛집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됐고, 아까 그 카레 집 옆에 있던 그 일본 가정식 먹으러 가자."


라고 말하며 우리의 갈팡질팡 할 수도 있던 시간낭비적인 행동을 단숨에 잘라버렸다. 그랬다, 우리가 그 카레집 앞에서 언제 열리나 오매불망 기다리지는 못하고 그 앞에서 조금 왔다 갔다 했었는데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보이후드'라고 적힌 감성 소품샵처럼 생긴 식당에 몇몇 팀들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었다, 나도. 파스텔 혹은 커다란 크래용으로 꾸며진 입간판과 원목, 유리창, 식물들로 이루어진 인테리어 유행을 따라가는 아담한 규모의 집이었다. 하지만 원래 방문하려고 했던 카레집에 미련이 남아서 그냥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던 그 집.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중요한 사실은, 그녀가 (나도) 배가 많이 고프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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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윽 하고 들어가서 바깥 골목이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았다. 젊어 보이는 두 남자분께서 운영하시는 집이었고 친구 집에 놀러 온 듯한 예의를 지켜야 하는 편안함이 느껴지는 식당이었다. 열려있는 주방에 그 앞에도 탁자가 있었기에 그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싶었지만 그렇게까지 하기에는 우리가 많이 지쳐있었다. 보이후드의 주 메뉴는 연어장과 새우장 덮밥이었지만 간장으로 절여진 익혀지지 않은 해산물류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이 아니었기에, 나는 가지 덮밥을, 이쁜 여자에게는 치킨 난반을 주문해주었다. 이쁜 여자는 닭고기를 좋아하니까.


연어장덮밥이나 새우장덮밥을 먹어보지 않았기에 이 가게의 음식에 대한 전체적인 총평은 할 수가 없지만 우리가 먹었던 음식들을 기반으로 이야기해보자면, 이쁜 여자는 나에게


'처음 가는 동네에서 맛집을 찾는 너의 능력은 정말 대단해'라고 할 정도로 맛있는 집이었다. 그러면 각 음식들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풀어보자.


부산 맛집 일식 일본 가정식 일본가정식 부산여행 부산맛집 부산일식 부산일본가정식 보이후드 가지덮밥 치킨난반 2.jpg 보이후드 가지덮밥과 일식 된장 소스를 얹은 가지구이
부산 맛집 일식 일본 가정식 일본가정식 부산여행 부산맛집 부산일식 부산일본가정식 보이후드 가지덮밥 치킨난반 3.jpg


가지덮밥: 많은 한국 사람들이 한국식으로 조리한 한국식 가지무침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중식으로 조리한 가지튀김이나 가지만두, 일식 가지구이가 지금의 세대들에게 많은 인기를 끄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도 그렇다. 나도 집에서 가지를 먹을 때면 튀기듯이 구워낸 가지에 어향소스를 끼얹어 먹는 것을 즐긴다. 보이후드의 가지덮밥은 짭조름하고 간간하게 가지와 갈린 돼지고기를 밥 위에 얹어내고 직화로 그을려 불향을 가미한 덮밥이었는데 짭짤하면서도 약간의 단맛과 감칠맛, 그 위에 살며시 올라간 그을려진 맛이 환상적으로 서로 균형을 잡아주며 밥과 잘 어울렸다. 거기에 생노른자를 하나 올려주는데 조심스럽게 터뜨려 가지와 돼지고기 위로 부드러움을 살짝 얹고 달걀의 진득함을 얹어주니 가지, 돼지고기와 함께 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잘 구워지고 간이 된 가지와 돼지고기가 밥 위에 얌전히 앉아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밥과 섞어서 먹기보다는 원래 있던 그대로 밥에 살며시 얹어서 먹었다. 그들을 함부로 섞었다가는 그들에게 배어있는 훈연의 맛과 향이 토라져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그러지 않았다. 거기에 고슬고슬 잘 지어진 흰밥이라니. 짭짤하고 감칠맛 넘치는 간장의 맛, 그리고 돼지고기의 쫄깃한 식감, 수분 넘치고 아삭 거리는 가지의 조화, 살아있는 흰밥에 마지막으로 코와 목젖을 훅 치고 들어오는 직화로 그을린 훈연향. 괜히 이곳의 추천 메뉴가 아니었다.


일식 된장 소스를 얹은 가지 구이 (미소가지구이): 맛에 대해서 설명을 듣기 전에 꼭 기억해라. 전포동 보이후드에 가면 가지구이를 꼭 시켜야 한다, 두 번 시켜야 한다. 수분이 넘치고 아삭한 씹는 맛이 살아있지만 씹고 나면 부드러운, 훈연 향이 살아있는 가지구이에 부드럽고 달달하며 짭짤한 일식 된장소스, 그 맛들의 조화는 흡족 그 이상이다. 가지에서 배어 나오는 채수와 일식 된장 소스가 서로의 맛을 보충해주며 식도로 금방 사라지게 되어있으니 당신은 그저 씹기만 해라, 그리고 혀 위에서 느껴지는 맛을 즐겨라, 그거면 된다. 나의 생각에 '이것은 무조건 맛있다, 맛없을 수가 없다'라는 예감으로 주문한 메뉴인데, 안 시켰으면 후회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메뉴에 1개씩 제공이 되어 나오지만 한번 맛보고 나면 '주문해야겠어'라고 생각이 들 것이니 미리 주문해서 먹어라.


부산 맛집 일식 일본 가정식 일본가정식 부산여행 부산맛집 부산일식 부산일본가정식 보이후드 가지덮밥 치킨난반 1.jpg 보이후드 치킨난반

치킨난반: 일본의 전형적인 가정식이다. 바삭하게 튀겨진 가라아게(일식 닭튀김)에 마요네즈와 달걀을 기본으로 한 타르타르소스를 듬뿍 올려 밥 위에 얹어먹는 순살 닭튀김 정식. 위의 사진을 뚫고 나올 것만 같은 튀김옷의 결을 잘 관찰하시라. 보이는 것보다 더 바삭하고 부드러운 닭튀김이다. 한 입 배어물면 바삭한 소리지만 부드러움이 그 바삭함의 식감을 뒷받침해주고 튀김옷을 입은 순살 닭다리는 어떠한가? 염지의 상태가 완벽하다, 그 살결이 매끄럽고 부드러우며 간간하며 쫄깃하다. 와, 세상에, 입에 넣자마자 탄성을 내지르는 내 옆에 이쁜 여자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리고 그 위의 고소하며 상큼하며 진한 타르타르소스, 함께 나온 레몬즙을 뿌려서 닭튀김 밑의 채 썬 양배추를 함께 얹어먹으면 바삭아삭한 식감은 곧 고소하며 상큼하며 쫄깃한 치킨의 맛으로 전환되어 있다. 이것을 함께 나온 매콤짭짤한 후리카케가 뿌려진 생노른자밥에 얹어먹으면....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겠다, 이 사진을 보며 글을 쓰면서도 또 먹으러 가고 싶은 욕망과 충동이 솟구친다. 치킨난반만 2인분을 시켜서 나 혼자 다 먹고 싶다. 치킨난반 앞의 내가 침을 흘리는 모습은, 반강제적인 조건 반사이며 여러분도 맛을 보시면 그렇게 될 것이다.


이외에 식사에 함께 나온 달걀말이도 부들부들하고 탱글탱글하여 식감이 좋았고, 후식으로 나온 요거트는 복숭아잼이 곁들여져 있으니 주 음식을 먹은 후에 달달하고 깔끔하게 식사를 마무리하기 바란다. 전채 요리로 나오는 수프라고 생각해서 미리 먹지 말고, 꼭 식후에 후식으로 드시기를 추천한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오래오래 장사하세요, 사장님'이라는 미소 담긴 인사를 건내드리고 가게를 나왔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사령관이자 추후 미합중국의 대통령이었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는 이러한 말을 남겼다.


"나는 전투를 준비하면서 계획은 무용하나 계획하는 것은 꼭 필요함을 항상 발견해왔다"


이 날 우리에게 딱 알맞은 명언이다. 우리는 계획을 세워서 식사와 커피를 마시러 왔지만 그 계획대로는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그 근처의 식당을 우연히 발견하여 성공적이고 즐거운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다. 보이후드를 나온 후에는 내가 생각했던 계획대로 (이전 글에 작성된 것처럼) WERK로스터스에 방문하여 핸드드립 커피를 홀짝 거리며 점심식사를 마무리했다, 그 얼마나 행복한 오후였는지. 우리의 망친 계획과 우연한 방문은 맛있는 시간을 선물해주었다. 이래서 내가 미식 여행을 그만둘 수가 없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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