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서 사라지는 사케동(연어덮밥)과 규카츠(소고기튀김)
그것은 아주 오래된 기억까지는 아니고.... 아니, 지금 쓸려고 다시 기억을 더듬어 보니까 꽤 나 오래된 기억이다. 내가 막 3개월 간, 근무하던 군부대에서 3개월 간의 막사 생활 기간을 마치고 거의 처음으로 부산에 휴가를 나왔던 때였다. 그때는 (당연히) 나는 결혼을 하지 않은 겨우 20대 중반의 (그래, 10년 전이구나) 어린 애송이 하사였고 지금처럼 맛있는 미식을 즐기러 도시의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찾아다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게 아무 곳이나 내 눈에 괜찮아 보이면 스윽하고 혼자서 들어가서 맛을 보던 그러한 시절에 나는 할머니와 다른 친척들이 함께 지내시고 계시던 곳에서 매우 가깝게 있던 부산대에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대학가라서 그런지 저렴하고 양 많고 맛있는 음식들이나 카페, PC방 등등 그 당시의 내가 즐기며 놀만한 것들이 많았다.
그때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일본 가정식 열풍이 한동안 불어닥쳐서 이런저런 일본 가정식 식당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었고, 부산대의 대학가도 그러했었다. 그중에 부산대 정문 근처의 2층에 있어서 그랬는지 내 눈에 띈 '교토밥상'이라는 이름의 일본 가정식 집이 있었는데 그곳에 들어가서 인생 처음으로 일식 사케동(생연어를 다시마에 12시간 이상 삭힌 연어를 얹어먹는 덮밥)을 먹고서 눈이 휘둥그레지는 미식 경험을 했었다. 그래서 가방에 갖고 다니던 펜과 3M 포스트잇을 꺼내서 음식에 대한 칭찬을 잔뜩 적어서 당시 주방에 계시던 사장님께 전해드렸었다. 사장님은 당시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밥장사하면서 이런 건 처음 받아보네요'하고는 주방과 계산대 사이에 있는 벽면에 내 칭찬이 담긴 포스트잇을 잘 보이는 자리에 붙여두셨었다, 그 자리에서.
그러고 나서 여러 세월이 흘러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인하여 나는 교토밥상에 다시 가지는 못했지만, 결혼을 하고 나서야 함께 사는 이쁜 여자와 함께 거의 10여 년 만에 재방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에 부산대 근처에 있던 수많은 일본 가정식 집들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이 집만은 같은 자리에서 같은 메뉴로 아직 영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 집의 맛이 그때와 변치 않았겠다는 것에 대한 기대와 감사를 느끼며 식당에 입장했다. 20대에 혼자서 왔었던 곳을 30대에 부부가 되어 둘이서 손을 잡고 들어오다니, 기분이 묘했다. 나는 그렇게 많이 변했는데, 교토밥상은 그때와 변함없이 많은 손님들로 가득 차서 잠시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내가 느낀 추억의 맛을 나의 이쁜 여자에게도 허락해줄 사케동과 먹고 싶었던 규카츠를 곱빼기로 주문했다.
규카츠: 한반도에 일본 가정식 유행이 불어닥쳤을 때 함께 유행했었던 일본식 쇠고기 튀김이다. 식당마다 신선도와 특유의 맛을 위해서 사용하는 부위가 다르기에 어느 부위를 썼다고는 말은 못 하겠다(내가 정육 전문가도 아니니까). 바삭하고 짭짤한 얇은 튀김옷에 쇠고기가 가장 겉면만 살짝 익혔는데, 쇠고기가 서늘하고 아주 쫄깃하다. 치아 사이에서 자본주의 맛이 폴폴 나는 대기업의 껌의 식감처럼 찰지게 씹히고 씹을수록 쇠고기가 부드러우니 이가 즐겁다. 바삭함과 쫄깃함 사이에서 육질이 부드럽게 목안으로 넘어가는데, 쫄깃한 맛보다 좀 더 부드럽게 익은 쇠고기를 더 좋아한다면 철판에 쇠고기의 겉면을 살짝 익혀서 먹으면 더 부드러운 식감을 즐길 수 있다. 쇠고기는 너무 많이 익게 되면 부드럽기보다 더 질겅거리는 질긴 고기가 될 것이므로 철판에는 살짝만 익혀서 먹는 것을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그냥 규카츠는 양이 적어서 우리는 곱빼기를 주문해서 먹었다.
사케동(삭힌 연어덮밥): 사케동에서 '사케'는 숙성시켰다는 의미인데, 생연어살을 다시마에 감싸서 12시간 이상 숙성시킨 연어를 의미한다. 나도 처음 메뉴의 이름을 들었을 때 구글에 검색해보고서는 '오, 이건 무조건 맛있는 메뉴다'라는 생각이 들어 주문을 해서 먹었고 그때의 맛이 나의 뇌리에 '교토밥상'이라는 맛이 되었다. 타래와 식초로 간이 적절하게 된 밥 위에 숙성된 연어회, 양파, 무순 그리고 고추냉이가 함께 나온다. 밥 위에 연어를 덮고 양파와 무순을 올려 고추냉이를 살짝 찍어서 먹으면 정말 맛있는데, 이렇게 먹고 있노라면 일본의 떠먹는 초밥인 '지라시스시'를 먹는 기분이다. 연어회는 해물 비린맛이 1도 없으며 고소하고 신선하며 부드러워서 조금 씹으면 입안에서 스윽하고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연어회를 조금 더 다채롭고 오래 즐기기 위해서(?) 밥에다 올려먹으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고소하고 부드럽고 신선한 연어에 달큰하고 알싸한 양파와 아삭한 무순으로 식감과 맛의 균형을 잡고 매콤한 고추냉이로 혹시나 지루할 수 있는 끝 맛을 마무리한다. 사실, 연어만 먹고 있으면 연어회가 금방 사라져 버리기에 나는 밥과 다른 토핑에 함께 먹으면서 조금 더 긴 시간으로 즐기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신선하고 고소하고 부드러운 첫맛, 양파와 무순으로 보충하는 달큰하고 아삭한 중간맛, 매콤하고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끝맛. 내가 좋아하는 형태의 음식이다, 한 그릇으로 코스요리를 먹는 그런 음식. 교토밥상에 처음 오시는 분이라면 규카츠보다는 사케동을 먼저 권하고 싶다.
교토밥상에 규카츠와 사케동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외에 스테키동이나 살몬아보동이나 쉬림프동 등등 여러 가지 메뉴가 있다. 하지만 나는 삭힌 연어덮밥만으로도 입맛이 충분히 만족이 되고 그 한 그릇 안에 코스요리가 담겨있기 때문에 그 외의 메뉴는 주문할 생각은 없다. 사케동 먹어라, 두 번 먹어라. 앞으로 있을 10년 이후에도 교토밥상이 건재하기를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