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라는 도시는 그야말로 거대 도시다. 텔레비전이나 사진으로도 뉴욕의 거리나 건물을 보는 것 자체가 벅찬 일이다. 언제 한 번쯤 뉴욕이라는 곳에 갈 수 있을까. 못 가 볼 곳이라면 당연 입 벌리고 감탄만 할 뿐이다. 하물며 실제로 뉴욕 거리를 밟는다면 가히 상상이 되지 않을 만큼 심장이 터질 것 같다.
거대 도시 뉴욕, 기안 84가 뉴욕 마라톤에 참가했다. 기안 84는 청주 마라톤 참가를 계기로 뉴욕 마라톤을 꿈꿨다고 한다. 뉴욕 마라톤은 세계 6대 마라톤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그는 완주를 목표로 1년간 훈련하며 연습했다며 4시간대를 목표로 잡았다.
그가 잡았던 목표대로 4시간대에 들어왔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충분한 현지 적응도 되지 않았을 것이고 당일날 오전 베이글 두 개를 먹는 걸 보고 잘 뛸까 내가 더 걱정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다. 기다리는 동안 수분 보충을 하고 똥도 싸고 와야 했다.
출발선에 선 그는 약간 상기되어 있었고 하체보다 상체가 약간 무거워 보였다. 그러다 중간 지점에 닿기 전에 인상은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다리에는 힘이 풀렸다. 그럼에도 옆에 같이 뛰는 동료를 보며, 시각장애인이 스스로의 무게를 감내하며 자신과의 사투를 벌이는 걸 보며 그는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뛰다가 죽을 수도 있는, 주저앉아 울 수도 있는 그 길을 죽더라도 누군가는 뛰었다. 그가 그랬다.
결국 출발선을 통과한 곳에서 피니쉬를 끊었다. 다섯 시간이 걸린 풀코스지만 그의 인내를 보고 말았다. 죽을 수 있는 순간에 나는 그에게서 강한 살아내는 끈질긴 생명력을 느끼고 말았다. 그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다.
지금 우리 사회는 기안 84를 인정하는 사회다. 웹툰을 하는 일반인이 어느 날 텔레비전에 나와 정리되지 않은 말투로 좌중을 불안하게 만들고 위생 관념 없기로는 전형적인 인물로 비쳤던 기안 84였다. 혼자 사는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찍어도 그는 절대 과장이나 포장이 없다는 걸 느꼈다. 생각 없이 말하는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는 인물이었다. 충분히 거짓으로 꾸며도 될 텐데, 기안 84의 꾸밈없는 대사와 너무 리얼한 그의 생존 모습은 오히려 진정성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어찌 보면 앞뒤 없이 자기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그렇다고 타인을 생각하는 배려는 별 기대하지 않았다. 털털하고 꾸밈없는 진실성으로 방송가를 사로잡았다. 그야말로 리얼 그대로다.
오히려 그것이 먹혔다.
십여 년 전 처음 기안 84를 보고 경악을 했다. 그런 그가 방송에서 대상을 타고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를 하며 화려한 도시가 아닌 가난한 나라, 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를 방문하면서 가미하거나 꾸미지 않은 진심을 전달했다. 대상을 받아도 거들먹거리지 않았다. 나름대로 살림도 정돈되고 말투도 정리된 어조였으나 진실로 가식은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타인에 대한 배려도 배우고 사랑도 베풀 줄 알며 타인의 고통도 함께 이겨내려 노력하고 있다. 공감도 조금 는 듯하다.
작년에는 청주 마라톤 풀코스에 참가하더니 온 국민의 걷기 열풍을 일으켰고 올해 뉴욕 마라톤에 참가하면서 또 한 번 강한 인내의 끝을 보여주었다.
누군가는 그랬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그러나 혹자는 굳이 안 해도 되는 일을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나는 그를 거짓 없이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자유인이라 생각한다.
"뉴욕 마라톤을 하면서 즐거우면서 뒤질 뻔했던 묘한 매력에 빠졌다"라고 말하는 그에게 한 번쯤 빠져 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굳이."라고 하면 할 수 없지만.
ㅡㅡ기안 84의 뉴욕 마라톤을 보고, 사람만큼 아름다운 꽃은 없다고 느꼈던 하루다. 어린 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