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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부맥가이버 Oct 17. 2023

[시] 시가 온다

어느 날 시가 오더니 가랑이 사이에 

고개를 처박는다

그 뒤로 줄줄이 고개를 박아대는 언어들

저 뒤에서 숨 고르기를 하는 물음은 누굴까?

성난 소처럼 발을 구르고

성냥불처럼 지이익 그으며

냅다 달리기를 하는데

엄마가 작두를 타듯 기역의 등에 올라타

니은과 디귿 종국에는 히읗과 사타구니가 만난다

엄마의 푸른빛 촘촘한 발이 칼 위에서 춤추면

나는 멀찍이 떨어져 실눈을 뜨고 의심했지

저 위에서 숨 고르기를 하는 여자는 누굴까?

칼이 뭉뚝한 것일지도 몰라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언어의 속삭임

시와 엄마가 손 잡고 칼을 타네

나는 멀찍이 떨어져 달눈을 뜨고 감탄했지

저 아래서 숨 고르기를 하는 문자는 누굴까?

사타구니를 타고 오르내리는 전율

엄마의 발바닥에 새겨지는 신음

고개 숙인 시의 영원히 답 없는 질문

엄마는 훠이훠이 가고

나는 뜨문뜨문 알고

시가 절룩절룩 온다

어긋난 말뚝박기의 삼중주

시는 가랑이 사이로 

꼭 그렇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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