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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인 Apr 04. 2024

고녀석! 자기 연민

두려움이 어디에서 오나 봤더니....

나는 두려움이 많은 겁쟁이다. 무서운 영화 그러니까 총과 칼이 나오거나 피가 나도록 싸우는 영화, 전쟁영화, 심지어 SF영화 등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잔잔한 드라마 정도가 내게는 딱이다.


얼마 전에는 이지성 작가의 책 '1만 킬로미터'를 읽고도 두려움이 몰아치는 경험을 했다. 첫째는 탈북민의 한국까지의 여정이 너무나 끔찍해서 그 인생을 상상하며 끔찍함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둘째는 슈퍼맨 목사도 이지성 작가도 책에 등장하는 순교한 주인공들도 너무나 대단하지만, 하나님께서 어느 날 내게 명하시는 사명이 그렇게 생명을 거는 일이면 어떡하지? 괜한 상상의 나래에 겁이 덜컥 났다.


그러나 기도는 제정신을 차리고 언제나 내가 있어야 할 자리, 생각과 의식의 좌표를 선명하게 해 준다. 무엇 때문인지 어떤 생각에 끌려 엄습하는 두려움에 당도할 때도 주님의 손길을 찾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 용기가 없고 두려움이 많습니다. 제 갈 길이 어떤 길이든 그래도 주님께서는 먼저 가셔서 예비하시지요? 치밀하게 계획하시는 주님의 걸음을 의지합니다. 두렵더라도 제게 맡기실 일이라면 주님께서는 제게 먼저 말씀하실 테지요? 오늘과 내일 켜켜이 쌓여있는 제 삶의 인도자는 오직 주님이십니다. 저는 주님의 명령을 알아차리고, 주님의 마음을 알아차리며, 주님 기뻐하실 바로 그 자리에 머물 수 있는 용기와 인내를 갖기를 소원합니다. 장막 속에서 가짜 기쁨, 가짜 복을 누리며 우둔한 자로 살지 않기를 원합니다. 지혜와 명철을 주셔서 구별하고 두려움 없이 주님께 순종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위험 천만하고 생생한 탈북에 대한 기록은 너무나 안전한 곳에 살고 있는 나에게는 알 수 없는 깊은 곳의 두려움을 자극했다. 실제로 나는 이틀 동안 밤잠을 설치며 두려움이 에너지가 되어 탈북민과 그들을 돕는 사역을 위한 기도를 했다.


심연의 두려움은 중심을 잃은 채 그 화살은 어느새 날아가 열 살 때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일 나간 엄마를 기다리며 혼자 베드 소파에 엎드려 10시간을 꼼짝하지 않았던 공포의 날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걸음소리도 가슴을 철렁이게 했고,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목이 마르지도 않았던 완전히 얼어 있었던 어느 시간의 공포에 대한 기억이었다. 이렇게 과거로 날아간 화살은 다시 부모에 대한 원망과 저항을 자극하고 마음속의 귀착점은 또 어둠의 죄로 옮겨가며 존재의 의미를 땅에 떨어뜨리는 혼란스러운 교란이 마구 벌어지고 있었다. 또 한 번,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주님 제 기억에 찾아와 주세요. 이렇게 쉽게 어두움으로 귀착되는 두려움이라는 정서의 끝에 주님께서 찾아와 그때도 함께 하셨던 그 손길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 주세요!



그때 내가 네 곁을 지나가다가
네가 핏덩이인 채로 발길질하는 것을 보았다.
핏덩이인 네게 나는 '살아나라'하고 말했다.
핏덩이인 네게 나는 '살아나라'하고 말했다.
(에스겔 16장 6절, 우리말성경)

마침 아침 묵상의 말씀이 떠올랐다. 나의 마음이 그랬던 것 같다. 피가 난자한 상태 같았고 그런 내 모습을 내가 바라보는 듯한 엄습하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주님의 말씀은 그때에도 주님은 내 옆을 지나셨고 두려움에 몸이 굳은 열 살의 나를 살피고 계셨다. 느끼지 못했지만 그곳에는 분명 주님이 함께 하셨던 것이다. 말씀 묵상을 통해 나의 기도는 일순간 응답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살아나라'라는 핏덩이인 내게 주님을 말씀하셨다. 이것은 명령이었다. 심상치 않은 명령에 나는 정신을 차리고 마흔도 넘은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나의 현재를 살피게 되었다. 나는 다름 아닌 자기 연민의 죄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래서 말씀에 힘을 얻어 외쳤다. "자기 연민의 죄에서 벗어날 것을 선포합니다!" 이 선포가 주님의 능력이며, 예수님의 십자가 능력 아래 있음을 믿는다.


자기 연민과 자기 몰입의 죄는 참으로 간교하게 찾아와 나를 아무것도 할 수 없게 꽁꽁 묶어버리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아직도 다 자라지 않은 어린아이를 가슴에 품고 언제까지 거기에 묶여 살아가야 하는지 답답해하면서도 쉽게 끊어내지 못한다. 내 안에서는 이런 기도가 퍼졌다.

주님! 자기 연민과 자기 몰입에서 벗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그렇게 묶여 있을 존재가 아닙니다. 통곡도 그만하면 됐습니다. 치유도 그만하면 됐습니다. 날마다 새 날이고, 날마다 주의 능력이 내 안에 있는데 상처만 바라보며 살 수는 없습니다. 세월이 아깝습니다. 주님! 저는 돌파하기를 원합니다. 자기 연민과 자기 몰입으로 나를 묶으려는 사단의 교활한 술수에 속지 않고, 구덩이 속에 몸을 피하지 않으며, 독수리 날개 쳐 오르듯 비상하겠습니다.


덧글


기도의 응답으로 나는 1만 킬로미터 책 10권을 사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기부를 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기독대안학교로 북한을 위한 기도하는 아이들이 있었고, 한 동안 아이들이 내가 기부한 책을 함께 읽었고 중보기도의 모임이 만들어졌다. 책을 읽으며 찾아온 두려움은 나의 또 다른 죄의 본질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고, 두려움은 나의 기도의 연료가 되었고, 기도는 다시 세상에 어떻게 확산시킬 지 내가 선 곳에서 깨닫고 실천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 모든 것 수일의 여정에 하나님은 선하게 함께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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