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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인 Mar 27. 2024

예수 십자가를 바라보고서야

삶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었다

참 열심히, 부지런히,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고 스스로 평가하곤 하지만 하나님과의 교제에는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니까 당연히 내 맘도 아실 거라고 생각하며 쉽게 여기며 지냈다. 하나님과의 교제에 들여야 할 에너지들을 나의 본성대로, 죄된 습관대로 나를 내버려 둔 채 지나온 시간들이 길었다. 더 일찍, 그 무엇보다 주님과의 교제에 더 집중하고 나의 영과 혼과 육이 온전히 주님과의 연합만을 바라며 살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나 모든 일은 다 때가 있듯, 내 영혼의 방황도 이제 끝이 나고 지금부터 영원히 오직 주님만으로 족한 삶을 살기를 그저 소망해 볼 뿐이다.


나는 최근에 아주 깊고, 기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물론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나의 지성이나 지혜가 아니라 주님이 주신 선물이라 믿는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이 없이는 해석되지 않는 것이며, 어느 누구의 설명이나 해명에도 만족해 본 적이 없는 사실이다. 그것은 인생은 왜 고통일까?라는 질문이다. 나는 집요하고 끈질기게 답을 구하고 해결되고 납득될 때까지 의문을 풀지 못하는 성격인데, 십자가 사건으로 인생에게 임하는 '고통'의 문제가 풀이되고 납득되었다.


사람들은 행복하기를 원한다. 즐겁고 기쁜 삶을 살기 원한다. 나 역시 내 삶에 행복과 기쁨, 즐거움이 가득하길 소망한다. 그런데 삶은 쉽사리 내가 원하는 것들로 만족을 주지도 문제를 해결해 주지도 않았다. 이렇게 노력하고 애쓰면 더 행복해질 조건들을 쟁취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내 욕망을 충족할 수 있는 삶의 목표와 계획을 설정하고 내달리기를 30년 이상 한 것 같다. 수년을 노력하고 애써서 교수가 되었고, 이거면 인생의 큰 목표를 이루었으니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이루고 보니 기쁨도 잠시이고 감사도 눈 깜짝할 사이에 휘발되었다. 물론 내 삶에 대한 회고와 성찰의 시간에는 잊었던 감사들이 깨어나기도 하지만 그런 감사에조차 애씀이 필요했다. 정상에 오른다고 내가 사는 현실의 상황이 고대했던 행복의 조건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행복은 신기루처럼 계속해서 나의 손끝에서 달아나 버린다. 그러니 다시 길을 떠나야 하고, 인생의 장애물과 장벽들을 만나야 했다. 물론 그런 여정들은 '인생이 그러려니.' 하며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삶의 결론이 결국은 쉽지 않은 그놈의 행복 때문에 '고통'이라는 생각이 들면 허무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주님을 바라보며 사는 인생에서 결론이 고작 '인생이 고통'이라면 그것은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이었다.


나와 남편은 양가의 신앙 1세대이다. 선량하게 살아가시는 시부모님은 인격적으로는 타인의 귀감이 되시는 분이신데 그것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걸림돌이 되었다. 신앙은 선택이고 믿음 없이도 우리는 잘 살고 있으며, 예수님을 믿기로 한 자식들의 의견도 존중하고 너희들이 원하는 가치에 따라 살아도 괜찮다며 받아들여 주셨다. 그러다 시아버님께서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시면서 주 3회 신장투석을 받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셨다. 남편은 육체의 생사보다 시아버님 영혼의 구원이 더 중요하다며 아버님을 위한 영접기도를 준비하였고 시아버님은 육체의 고통 중에 드디어 예수님을 영접하셨다. 그리고 이제부터의 생명은 하나님께 있고, 자식과 며느리들이 당신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에 감사하다는 인사도 전해 주셨다.


시아버님께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시면 시어머님도 그 길을 함께 가실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고, 시어머님은 또 달랐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시어머니를 향한 복음의 메신저가 되겠다고 선포하고 시어머님께서 영접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한 달 정도 섬김의 시간을 보냈다. 때마침, 우리 부부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서 새 신자를 초대하는 예배가 있어서 시어머님을 모시고 가려고 하는데, 그날부터 남편의 손목과 발목에 급작스런 통증이 찾아왔다. 남편은 숟가락을 들기도 힘든 정도의 고통이 시작되었지만 어머님의 영접기도를 위해 하루 동안 고통을 참고 우리 부부가 계획했던 모든 일들이 끝나고서야 병원을 찾았다.


우리 부부는 주말부부로 남편은 서울에서, 나와 아이들은 경북 경산에서 생활을 하고 있기에 월요일에 병원을 찾았을 때 남편은 이미 걸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고 그때부터 일주일이 넘도록  입원을 하게 됐다. 병원에서는 염증 수치가 급격히 높아졌는데 외상이 혹시 없었는지 살피며, 의학적으로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렵지만 일단은 염증 수치를 낮추는데 주력하는 치료를 시작했다. 남편은 손목 발목의 통증이 시작되었을 때 영적 전쟁이 나를 통해 시작된 것 같다며 지혜롭게 이 시간을 잘 넘기자고 했다. 의사는 남편의 병균과 싸웠고, 우리는 영적 전쟁터에서 큰 전쟁을 치르는 듯했다.


우리 부부가 복음의 메신저가 되겠다고 선포한 일이 마귀와 사단에게는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 부부는 이 이야기의 결론을 알기에 두렵지 않았고 담대하게 상황들에 대처해 나갔다.  이 일로 우리는 더욱 주님과 가까워지고  있었고 모든 것이 기쁘게 리셋되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우리 부부는 이 즈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님의 십자가 사건을 떠올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새싹처럼 순수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분이 감당하셨을 고통을 처음으로 응시하게 되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의 추한 죄를 떠올렸고,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 하나님의 위대한 지혜와 사랑에 저절로 감격하게 되었다. 그 감격이 지금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예수님과 하늘 아버지의 마음속 깊은 고통을 머리로 알지만 전혀 이해하지 않고 살았던 나의 무지를 알아차리게 했다.


이 땅의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행태와 인간 군상을 향해 주님은 어떤 마음이실까? 십자가의 사건이 갖는 가치와 의미가 땅에 떨어진 점, 내가 그 주인공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고통이 축복으로 여겨지는 첫 마음이 생겼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내 마음에 옮겨 담는 것

하나님 아버지의 꿈이 내 가슴에 심기어지는 것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이 내 결단에 깃드는 것

그래서 내가 오직 주님께만 접붙여진 인생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만이 내 소망이라는 기도가 나왔다. 그리고 이 소망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고통이 자연스러우며, 더 이상 고통의 의미가 내가 알던 것이 아니게 되었다. 주님의 신부로 살고 싶지만 즐거움과 위대한 능력의 영향권 아래 살고자 했던 나에 대한 반성이 생겼다. 주님의 깊은 고통을 나누지 못한다면 그것은 온전한 연합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에 대해 무지하고 지혜 없는 저에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해 주시기를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이 내게 심겨 주님의 고통에 참여하는 인생을 살기를 원한다는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천국이 아니어도 된다며, 지옥도 죽고 나면 괜찮다던 분이셨는데 그 강퍅한 마음을 보드랍게 만져 주셔서 "그래, 천국 같이 가자!" 하셨다. 그 한마디에 천국에서는 천사들이 환호했을 것이다. 남편이 선언한 영적 전쟁을 치르면서까지 시어머니의 영접기도 시간을 보냈을 때, 한 생명이 주께로 돌아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주님의 계획인지 깨닫게 되었다.


남편은 십자가를 통과하는 신앙에 대해 의학적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신체적 고통을 통해 절대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고 고백한다. 그때부터 수개월간 남편은 자신의 온갖 사소한 죄들을 토해내는 회개의 시간을 보냈고, 그 변화는 가족 전체에게 영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이 감당하셨을 그 고통에 참여하는 것. 나는 그것이 내 삶의 고통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나와 남편, 그리고 우리 가족이 모두 이 일에 기꺼이 삶을 드리기를 나는 기도드린다.




한탄하며 슬퍼하는 인생 대신,
오직 주님과의 연합을 꿈꾸며
늘 기도에 응답하시고,
가장 선하게 우리 삶에 임하시는
주님의 얼굴을 보기 원합니다.
 주님으로 인해 담대하게
주어진 허락된 길을
용기 있게 걸어가기 원합니다.

인생이 고통이라는
허망한 결론을 거둬내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담아내는 것,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에 참여하는 인생이 귀함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기도와 같은 인생길을 걸어가기 위해 나는 전도서의 말씀을 기억하고자 한다.


내가 깨우친 것은 오직 이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바르게 만드셨지만 사람들은 온갖 짓을 다했다는 것이다(전도서 7장 29절).
모든 것의 결론은 이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악 간에 모든 행위를 그 숨은 일까지도 낱낱이 심판하신다(전도서 12장 13-14절).
제가 어떤 존재인지를 기억하겠습니다. 온갖 짓을 다할 수 있는 처참한 존재가 바로 나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저는 더 이상 죄의 멍에를 지지 않으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 심판 날에 산자의 축에서 하나님과 영원한 복을 누리기 위해 주님을 경외하며 주신 계명을  충실히 이행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금껏 저는 세상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전능함만을 구했습니다. 회개합니다. 이제 저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마지막 날의 주님을 기억하며, 주님 앞에서 내 삶의 여정이 펼쳐짐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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