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사 사진을 보면 연령대가 짐작이 된다. 정확하지 않지만 젊은 사람인지 한참 노화의 길을 걷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얼마 전에 직장에서 만나 20년 가까이 알고지낸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프사에 꽃이 등장한 것이다.
나 : 어떻게 지내세요?
동료 : 나? 잘 지내지.
나 : 어디 좋은 데 갔다 오셨어요? 프사에 꽃이 있던데?
동료 : 아니야. 사무실에서 내가 키우는 꽃이야.
나 : 허허. 그러지 마세요. 나이 든다는 증거야.
동료 : 하하하. 당신도 몇 살 더 먹어봐. 좋아질 걸?
어쩐담? 진짜다.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나도 꽃을 찍고야 말았다.
사루비아로 기억하는데 샐비어가 원래 이름이란다.ㆍ
2학기 개강을 하면서 주말부부 생활이 다시 시작됐다. 금요일에는 대구에서의 한 주간의 일정들을 마무리하고 가뿐한 마음으로 기차를 타러 동대구역으로 향한다. 역사 앞에 사루비아가 눈에 들어왔다. 꽃에게는 미안하지만 예뻐서는 아니고 추억 때문이었다.
어머나! 사루비아 얼마만이니? 어렸을 때 동네 주변에 사루비아가 있으면 아이들과 신나게 뛰놀다가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듯, 한 번씩 꿀을 따먹곤 했었다.
잠시 스친 추억으로 내가 얼마나 고무줄놀이를 잘했는지, 놀이터를 다람쥐처럼 오르고 내리며, 높은 곳에서 점프도 해가며 신나게 놀던 때가 떠올랐다.
사루비아 꿀의 달콤함이 생각나서 꽃잎을 떼어 꿀이 아직도 맺혀 있나 살펴보기도 했다. 반짝거리는 꿀 한 방울을 보니 왠지 안심이 됐다. 변하지 않았구나. 사루비아, 너는 변함없이 붉고, 꿀을 머금고 있는 꽃이로구나.
세상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무엇보다 나도 이렇게 변했는데 사루비아는 여전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이 왜 그렇게나 반갑고 다행스러운지.
만약 공기 좋은 시골에서 사루비아를 만났다면 난 아마 꿀도 쪽쪽 빨아 보았을 테다. 떼어 본 꽃잎을 내려놓으며 도심 한가운데서 조우한 것이 못내 섭섭했다.
다음에 또 만나자. 추억을 생생하게 떠올려 준 사루비아가 고마워서 결국 나도 사진을 몇 컷 찍어보았다.
그제야 사람들이 꽃을 찍어 담아두는 그 마음이 이해가 됐다. 시들고 다시 피어도 세월가도 본모습을 잃지 않는, 변하지 않아서 아름다운 것들 중 하나가 꽃이구나 싶다. 아름다움은 생각하고 느끼게 하고, 영감을 주어 더 오래 담아두게 한다.
밀려오는 추억들에 카메라로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싶은 그 마음이 참 애틋하다. 사루비아는 내 기억 외딴 창고 문을 철컥 열고 들어와, 잊고 있었던 작은 기억들을 생생하게 떠올려 주었다. 나의 옛날 옛적 모습이 떠오르니 입가에는 자연스레 미소가 번지고, 마음은 몽글몽글 해졌다.
그래. 이제 꽃을 찍고 프사에 두는 것도 굳이 피하지 말자. 나이 들어가는 게 티 나면 어때? 추억 때문에 행복한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