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서울
[해방,
남북 전쟁,
1980년대, 아시안게임, 올림픽 게임
1990년대,
2000년대,
나의 나라, 대한민국, 한국은 ‘급속도’로 변하고 성장했다고 나는 느낀다.
1980년대 후 반에 태어나 나는
199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내고,
2000년대에 젊은이가 된 세대다.
내 생각에 나도, 한국이 어느 정도,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선 때, 태어나고 자랐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어린 시절과 지금은 너무 많이 변했다.
1988년 즈음, 컴퓨터가 출시되었고, 내가 초등학교 때 머리가 커다란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2000년대, 한국은 인터넷 강국이다.
게다가, ‘K-pop’, ‘K-drama’는 전 세계인을 열광시키고 있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은 어느 분야에서든 두각을 나타내고,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게다가 미국에 살면서 점점 놀라워졌던 것은,
처음 미국에 갔을 때는, 한국음식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 미국인들이 많았다면,
요즘은 한국음식을 먹어 보지 않은 미국인을 찾는 것이 빠르다.
적어도 내가 있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요즘은, 미국의 대형 마트에서는 김치를 사고,
어느 체인 마트에서는 김밥과, 고추장과 냉동 파전을 살 수 있고,
맛도 꽤 좋다.
미국도 미국이지만, 한국에 와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지하철 노선이다.
학창 시절, 나는 주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다녔고, 5호선이나, 7호선으로 갈아타기도 했으며, 가끔 1호선이나 8호선을 타기도 했었다.
내가 인터넷에서 찾아 확인해 본 바에 의하면 그래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서울은 지금 지하철 노선이 22개 정도고
'세상에 여기까지 지하철을 타고 간다고?'
할 정도로 놀라운 역들도 많다.
지하철 노선표만 봐서는 내가 어떤 노선을 타고 어디서 갈아타며 어디로 가는지 한참 들여다보며, 연구를 해야 알 수 있다.
이처럼, 환경과 도시는 모두 변 했지만, 변 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가족 중심의 문화이지 않을까?
아빠, 엄마 그리고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
거기에 형제자매, 친척 들까지 확장된 가족 중심의 문화,
그래서 그런 가족 구조속에 있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그 당연함이 고정관념이 되어진 것.
어쩌면 한국을 떠났던 그때 그 시절의 경험과 생각으로,
‘아직도, 여전히 그래’라고 생각하는
나의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
미국인 이민자,
신분 상 미국 시민권자,
대만계 미국인이 섞인 한 아이의 엄마,
그리고,
이혼녀로 돌아왔다.
글쎄 돌아왔다고 해야 할까?
잠시 방문했다고 해야 할까?
태어나고 자란 곳이고,
여전히 인종은 아시안, 한국인으로 표기하지만,
거의 17년 만에 돌아온 곳은, 낯설다.
변화된 것들이 신기하고, 새롭다.
오랜만이든, 낯설든,
그래도 나에게 이곳은,
머물기만 해도,
이 땅에 존재하는 공기로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평온함을 느끼게 해 준다.
그래서 고국, 모국이라는 단어가 있는 것일까?]
“누나 뭐 쓰고 있어요? 아직도 글 쓰나 보네.”
현정은 시간이 날 때마다 긁적긁적 쓰는 것이 버릇이고 취미이다. 다시 찾은 취미 이기도 하다.
현정의 ‘sns’를 보던 명우는, 그녀의 글이 짧지만 재미지고 담백하다고 말하길래, 그녀는 그녀의 글쓰기 역사에 대해 말해주었다.
현정은 어릴 때부터 글 쓰기를 좋아했다.
그녀의 엄마 지숙은 그녀가 글쓰기를 아직 떼지 못하던 때부터, 공책에 지렁이가 기어가듯이 쓰고는 이야기를 쓴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현정은, 초등학교 때 일기 쓰기도 좋아했다.
하루의 일들을, 기록하고, 어린 마음에 들었던 감정들을 아직은 미숙한 단어로 표현하면서 읽은 책에서 찾아낸 맘에 드는 멋진 단어들 까지 인용하며, 마치 자신의 감정인 것처럼 쓰기도 했다. 나중에 읽어 보고 부끄러워서 그 페이지는 찢어서 버렸거나 어디다 숨기기도 했는데, 어떤 공책들의 행방은 여전히 행방불명 중이다.
중학생 때는 이야기를 상상해 썼고, 그 이야기가 적힌 노트를 반 전체 아이들이 돌려 보기도 했다.
그때 그 시절 그냥 상상하는 것만도 가슴이 콩닥대는,
’그 남자와 그 여자가 마주 보고 서있더라’라고만 써도
‘꺄’ 하는 그런 감성의 하이틴 로맨스를 썼다.
그리고 고등학교생이 되었을 때는,
입시에만 전념하느라 글을 쓸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는 게 현실적인 이유고,
그리고 심리적으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현정의 이야기를 들은 명우는 그럼 다시 글을 써보는 게 어떠냐고 말했고,
현정은 그의 말을 신중하게 생각해 봤었다.
그리고 명우에게,
"지금은 잘 쓰지도 못하고, 뭘 써야 할지도 모르는데.”라고 말했고,
그는, “누나. 잘 쓰고 못 쓰고 가 뭐가 중요해요.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글 쓰는 거 좋아했다면서요.”
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명우는 현정에게,
“누나 소질 있는 것 같은데.”
라고 덧붙여 말하기까지 했다.
소질?
이 말에 현정은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고 여러 개의 노트에 일상적인 이야기나 소설에 모티브가 될 만한 상상적인 이야기 등을 생각나는 대로 적고 있으며 언젠가는 집중해서 뭐라도 써 볼 계획을 하고 있다.
현정이 노트를 덮고 명우를 보며 말한다.
“어. 왔어? 오랜만이야.”
현정은 한국에 온 지, 삼 개월 정도 되었지만,
고국,
엄마집이 주는 안심과 평온함,
그리고 그동안 혼자서 타국에서 지내며, 늘 서바이벌 모드로 살았던 피로가 한 번에 몰려와서인지,
평창에 머물며,
먹고,
자고,
쉬기만 했었다.
2월에 명우가, 겨울의 마지막 스키를 탄다고 평창에 내려와 잠깐 만나고는 한 달이 지난 오늘 서울에서 그를 두 번째로 만나는 것이다.
“누나 벌써 먹었어요?”
현정의 앞에 놓인 접시와 커피 잔을 보고 명우가 묻는다.
“응. 나는 여기 좀 일찍 와서.”
“뭐 좀 더 먹을래요?”
“아니야. 너 먹어. 내가 사줄게.”
현정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명우는 됐다며 손짓을 하고는 주문하러 간다.
현정은 미국에 막 갔을 당시, 거의 1년 정도는 한국의 몇몇 친구들과 종종 연락을 했었지만, 각자 있는 곳이 다르고, 서로 바쁘고, 게다가 시간차까지 있다 보니, 점점 연락이 뜸해지다, 끊어졌다.
지금이라도 수소문을 하면 만날 수 있겠지만, 17년에 만나는 것도 왠지 어색한 것 같다.
서로 나누어야 하는 이야기의 공백과 시간이 너무 길다.
명우는, 4년 전인 2019년 가을에 샌프란시스코로 어학연수를 왔었다.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세계 대 유행 질병을 겪고, 격리까지 하던 시기에 미국에 있었고, 그때 현정을 만났다.
코로나 친구.
세계 대 질병이 만들어 낸 만남.
그렇게 거창 하게 둘의 관계를 말해도 괜찮다.
그때의 만남이 지금까지 이어져, 명우가 한국으로 돌아왔어도, 둘은 종종 연락했고,
현정이 한국에 와서도 유일하게 연락을 하고 만나는 친구이기도 하니까.
오늘 현정은 서울에 볼일이 있어 왔고, 약속시간 전에 서울 시청에서 일하는 그를 점심시간에 맞추어 만나러 온 것이다.
“점심 먹어야 하는 거 아니야?”
“간단하게 커피랑 샌드위치 먹으면 돼요. 오랜만에 미-kok스럽게.”
그의 말에 현정이 웃으며 대답한다.
“그래, 미-kok스럽게 먹어.”
“그런데 누나, 일은 할만하겠어요?”
“글쎄. 워낙 급하게 구하는 거라고 해서, 다른 선생님 구해질 때까지 라도 하려고. ”
“오늘 인터뷰하는 거예요?”
“원장님과 이미, 전화로 인터뷰는 했고, 오늘은 서로 얼굴도 보고, 수업이나 이런 거에 대해서도 알려주신다고 해서 학원으로 가는 거야. 3시 반쯤 만나기로 했어.”
“누나도 일 시작하면, 엘레나는 어떡해요? 심심하지 않을까?”
"심심할 틈이 없지. 엄마랑 매일 산에 가고 바다 가고, 매일 놀아. 밥도 잘 먹어서, 살도 포동포동 찌고. 심심할 틈이 없어. 그래서 그런가 학교 가고 싶다는 말을 안 하네.”
“학교요? “
“응. 미국에서 ‘Kinder’ 다니 다가, 겨울 방학 하고 여기 온 건데, 미국은 겨울 방학이 짧잖아. 벌써 봄 학기 시작 했겠지. 여기서는 나이 때문에 초등학교는 입학이 안된대. 국제 학교라도 알아보고 보낼까 생각도 했지만, 그냥 이러고 있는 중이야.”
“누나나 엘레나도, 그렇게 큰 일을 겪고 왔는데, 좀 더 쉬는 것도 좋은 거 같아요. 초등학교 1년쯤 뒤쳐진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오, 공부라면 목숨이라도 걸 것 같더니 많이 변했다.”
“그러니까요. 공부라는 게 뭘 하던 평생 할 수 있는 건데 초등학교 몇 개월 쉬었다고 문제가 되진 않잖아요."
“맞아.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계획 없이 그렇게 보내고 있는 중이야.”
“아. 엘레나 또 보고 싶네.”
“엘레나도 너 보고 싶대. 주말에 시간 되면 또 놀러 와.”
“그럴게요. 그런데 요즘 많이 바빠져서.”
“그러니까. 오늘도 바쁜데 내가 불러 낸 거 아니야?”
“공무원 생활이란 게 그래요.”
명우는 공무원 일을 10년 넘게는 한 사람처럼, 어깨를 으쓱하며, 씽긋 웃고는 주문한 샌드위치와 커피를 받으러 일어선다.
“누가 보면, 한 10년은 일 하신 줄 알겠어요.”
“그러게요.”
명우가 샌드위치와 커피가 든 쟁반을 들고 와 자리에 앉자, 현정이 그를 보며 말한다.
“말로만 들었지, 와서 보니 진짜 놀랍긴 하다.”
명우는 씩 웃으며 목에 걸린 공무원 배지를 보여 준다.
“오, 공무원 배지. 일은 할 만해? 공부 그렇게 관둔 거 괜찮아?
그가 미국에 왔을 때,
그는 그의 학업, 경력, 직업 모든 것에 대해서 불투명하다고 했고,
지금 까지 했던 일과 공부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으며,
이제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고 말했었다.
어학연수는 핑계고,
그는 숨이 쉬고 싶어,
잠시 떠나 왔다고 했다.
“공부는 그만 두길 잘한 거 같아요. 사실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했는데 미국에 있으면서 생각해 보니,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공부 자체는 좋아했잖아.”
“맞아요. 공부가 좋아서 시작했는데 이게 좋아해도, 실력과 능력까지 있는 사람들과는 경쟁이 안되고, 또 경쟁을 안 한다 해도 실력이 자꾸 드러나다 보니 과제도 잘 안되고, 그러면서 교수님들도 답답해하시고, 그러면 나는 또 자신감이 없어지고, 그런 게 계속 반복되고 쌓이다 보니, 공부에도 흥미를 잃은 거죠. 지치기도 했고.”
현정은 그래도 그때
그에게,
잘할 수 있어.
그동안 한 거 아깝지 않아?
너도 실력과 능력이 충분해.
너의 기대치가 너무 높은 거 아니야?
다시 가서 하면 좋아질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말해 줬어야 했나 생각했다.
그때 현정은 그녀의 감정과 상황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명우에게,
이왕 사는 거
좋아하는 거, 재미난 거 하면서 사는 게 낫지 않아?
너 나이 정도면 아직 뭐든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아?
그동안 한 게 아깝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시작하면, 하기 싫은 거 하는 것보다 낫지 않아?
계속 매달리는 게 어쩌면, 시간과 에너지가 더 아까울 수도 있지 않아?
라고 마치 하던 일을 그만두라고 부추기듯이 말한 것 같았다.
현정의 걱정과 달리 명우는 그녀의 말을 듣고,
그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
다시 깊이, 신중하게 생각해 봤었다.
사실,
그동안 해 오던 일에,
이것이 맞나?
라는 생각이 드니,
자괴감이 들었고,
무엇을 다시 하기는 너무 늦었다
라는 마음까지 드니,
모든 것에 지치지 시작했다.
그런 마음 상태니,
도대체 뭐가 문제지
그동안 무엇을 했으며,
무엇을 하고 싶은 거지
라고 마주할 자신도 없었다.
그런데 마음을,
지금도 늦지 않았어
라고 바꾸니,
절망과 포기의 마음에 희망이 들어앉기 시작했고,
하다 보면 중간에 바뀌거나,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니,
지친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여전히 생각과 고민이 많던 명우에게 현정은,
“만약, 지금까지 하던 걸 다 때려치운다 해도, 안 늦어. 그러니, 네가 다시 하고 싶은걸 해. 지금부터라도.”
라고 아주 그만두라고 쐐기를 박았다.
희망이 스며든 명우의 마음에 현정의 말이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현정은 명우가 때려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때려치운다 해도’라고 말한 것이고,
또 그가 ‘때려치울까’라는 마음이 있어도,
‘그래 그래도 지금까지 하던 거니까 다시 마음을 다 잡아 하자’
라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온 명우는,
하던 석사 공부를 진짜로
‘때려치웠다.’
그리고 갑자기 공무원 시험공부를 한다고 하더니, 서울 시청 7급 환경 연구 공무원이 되었고, 일을 시작 한지 일 년 정도 되어 간다.
명우는 그때,
나중에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쉽다.
후회된다.
그리고, 지금의 결정이 잘못된 선택이 되어 또 힘들어하고 방황하고 선택의 기로에 놓일까 두렵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때려치우고’ 나니 홀가분했다.
‘때려치웠다,’ 보다는
진로 변경 혹은 좋아하는 일에 대한 또 다른 관점으로의 접근이라 생각하고 일하니,
지금의 일이 재밌다.
“생각보다 일이 재밌어요. 나 공무원 체질인가 봐요.”
그가,
‘재밌다’
라고 말한다.
현정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인다.
“재밌으면 됐지.”
“맞아요. 그리고 일이 할만하니까, 일에 대한 자신감도 생기더라고요."
그가,
‘자신 있다’'
라고도 말한다.
현정은 마음이 더 놓이면서, 명우가 대견하다고 느껴진다.
마치 막내 동생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재밌게 하고 있고, 잘하고도 있는 거 같아요.
하면서, 실력과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두 사람은 하던 일, 살던 곳, 나이, 환경과 경험도 다르고,
그 둘이 만났던 때는 환경적으로, 사회적으로, 세계 질병의 고통과 위기에 놓여 있었고,
또 각자의 상처와 고통을 가지고 있던 때였다.
그리고 벗어나려고 떠난 곳에서, 둘은 만났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하는 관계가 되었고,
지금은 서로 조금씩 회복이 되어,
그들의 삶에서,
재밌다
할 만하다
라고 말한다.
명우의 얼굴이 제법 밝아 보인다.
“너 얼굴이 좀 밝아진 거 같아”
“그래요?"
"연애해?"
"누나. 또 아픈데 건드네. 도대체 그건 왜 그렇게 힘든 일인 건가요?"
명우는 한국에서 꽤 인기가 있을 듯한 호감형이다.
그는 188 센티로 큰 키다.
미국 사람들 평균 키가 5ft 9in 라는데 그는 6ft 정도이니, 미국에서도 큰 키였고,
한국에서도 사람들 사이로 그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얼굴은 반듯하고 선하고 준수한 인상을 주며, 눈도 코도 동글동글 하게 생긴 강아지 상이다.
미국에서 만났을 때는 좀 통통해서, 덩치가 더 있어 보여 던 것 같은데, 지금은 살이 좀 빠져 보이고, 몸은 운동을 해서 그런지 더 좋아 보인다.
그리고, 그의 말을 간추려 봤을 때 물론 그는 부정하지만 그는 모태 솔로임에 틀림없다.
그는 몇 번 데이트를 해 보기도 했다고 말하지만, 현정의 생각에 데이트는 아니었던 것 같고,
연상누나가 좋아한다고도 했다는데, 그는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맘에 안 들어서 그랬어?라고 물어보니,
그건 아닌데,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그랬다고,
그는 담백하게 대답했다.
맘에 드는 이성도 있었지만,
친구들과 다 같이 어울리면서 주변에서만 머물다가 끝났다고 한다.
준수한 외모에, 그렇지 못한 행동이 야기한, 그는 웃픈 모태솔로일 것이다.
현정은 속으로,
명우야 파이팅
하고 응원해 본다.
“나도, 일 시작하면, 운동 좀 해야지. 삼 개월 동안 먹고 놀기만 했더니, 살쪄가지고.”
“보기 좋은 대요. 왜? 여전히 아름다우시고.”
이렇게 말도 이쁘게 하는데, 왜 우리 명우는 연애도 못하는 것일까
라고 현정은 생각한다.
명우는 늘 말을 이쁘게 한다.
그가 말하는 것처럼.
문득, 갑자기 그가 생각난다.
명우가 말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현정은 용기도 생겼고,
그녀가 꽤 괜찮은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역시나 그가 말해 줬던 것처럼.
그에 대한 지난 생각들이 현정의 마음과 머릿속으로 비집고 들어와,
현정은 생각을 돌리려,
"명우야. 너 남사친 재질인가봐."
"그러지 마요. 누나. 나 남친 재질이야."
"아니야."
"아니예요. 난 남사친 이라는 단어도 몰라."
"아니야. 부정 하지마."
그렇게 명우와 쓸데 없는 농담을 주고 받으며 웃는다.
잠시후, 둘은, 카페를 나온다.
여전히 공기는 싸늘하지만 3월의 봄 햇살이 따스하고, 오랜만에 공기도 맑다.
명우는 마치 옛 기억을 불러 들이 듯이 하늘을 올려다 보며,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뱉으며 말한다.
“전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면, 미국에 있던 때가 생각나요. 하늘이 정말 예뻤는데, 날씨도 좋았고.”
“우리 그때, 격리가 좀 해제된 때 만나서, 주변으로 여행도 다니고 좋았는데. “
”그러게요. 누나 덕분에 많이 다녔지. 나 진짜 미국 가서, 기숙사에만 갇혀 있다가 오는 줄 알고. 아. 또 가고 싶다. 언제 또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나도 네가 있으니까 다녔지. 엘레나랑 둘이만은 그렇게 다니지 못했을 것 같아.”
명우와 현정은 엘레나를 데리고, 집에서 운전해서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세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산이나 바다 호수로 당일 여행을 다녔었다. 아침에는 현정이 커피 한잔을 마시며 운전을 하고,
집에 올 때는 저녁을 먹고, 엘레나를 차에서 재우면서, 명우가 운전해서 집에 왔었다.
사람이 없는 한적한 자연 속에 있는 시간은 몸과, 마음과 영혼에 휴식을 주는 것 같았다.
“나중에 휴가 내서 또 오면 되지. Anyway, I have to go. Have a good afternoon. See ya.”
“오. 영어. 오랜만에 들으니 좋은 대요.”
“뭐 오 까지 하고 그래. 하여간 재밌어.”
“누나도 오늘 일 잘 봐요. 퇴근하고 또 보면 좋은데, 오늘은 일이 있네.”
“괜찮아. 다음에 또 보면 되지. Bye."
"Bye."
명우가 가볍게 손을 흔들고 떠나자,
현정도 핸드폰으로 지하철 역을 검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