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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Seoul, Soul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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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 Jang Nov 03. 2024

열여덟 번째 이야기

2024년 여름, 평창에서

“처음도 아니고, 혼자 그냥 갔다 오면 되는데, 주말이

라 차도 밀리고, 버스가 났다니까.”

“현정.”

“응?”

“잔소리 너무 많아. 엄마도 나한테 이렇게 잔소리

안 하셨다.”

“그러니까. 굳이 잔소리까지 들어가며 왜 그러냐고?”

“차가 있고, 주말이고, 날씨가 좋고.”

“그럼 다른 걸 해."

“너랑 있고.”


현정이 어이없어하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자,

재욱은 코를 찡긋하며 말한다.

“네가 듣고 싶은 말이 이거 아니야? 잔소리의 목적.”

“그게 뭔데?”

“결국은 내가 너랑 있고 싶어서, 주말인데, 차도 밀릴

수 있는데, 날씨도 좋은데, 너랑 있고 싶어 그런 거다.

이 말이 듣고 싶은 거 아니냐고?  내가 이제 너의 패턴

을 좀 알 것 같아.”

“뭐래. 가고 싶으면 가.”


현정이 차에 타자,

재욱도 차에 타며 말한다.

“날씨도 좋고, 주말이고, 너랑 함께 있고.”

“알았어. 알았어. 출발해. 약속 시간 늦으면 안 돼.”

“넵.”


평창집의 물건들은 이미 제주도로 이사해서, 집은  

텅 빈 상태다.

얼마 전, 집을 보러 온 두 노부부가 집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해, 다시 방문해 보고 싶다고 부동산 중개인

사장님에게 전화가 왔었다.


자녀들이 커서 출가하고,

은퇴한 두 부부는 전원생활을 하고 싶어,

내려오는 것이라 한다.

재철과 지숙도 나중에 늙으면 내려와서 살자고 해서 장만한 집이라 잘 지어졌고, 지숙과 노모가 그동안

여기저기 꾸미고, 다듬은 집인데다, 그동안 지숙이

워낙 관리도 잘해서, 노 부부가 그냥 들어와서 살아도

될 정도다.  


“서울 가서 애들하고 한 번만 더 상의하고, 주말 지나다음 주 정도에 결정해도 될까요?“

남편분이 차분하게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괜찮은데 애들이 너무 먼거 아니냐고 그래서요. 다 큰 자식들과는 좀 멀리 떨어져 사는것도 부모

입장에서는 괜찮기도 한대 말이예요.”

아내분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은퇴한 것,

부부가 함께 늙어 가는 것,

자식들과 좀 떨어져 살만 해도 되는 것,

이 모든것들이 행복하게 보인다.


“그렇게 하세요. 제가 부동산에, 다음 주 정도까지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지 말고, 결정하실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씀드려  놓을게요.”


“고맙습니다.” 남편분이 말하자,

아내분이  말을 덧 붙인다.

“집이 정말 너무 이쁘고 깨끗하니 좋아요.“

“네. 엄마가 워낙 관리를 잘하셨어요.”

“어디 더 좋은 대로 가셨나 봐요?”

“네. 애  학교 때문에요.”

“그러시구나.”

아내분이 현정과 재욱을 번갈아 보며 말한다.


재욱은 그녀의 말에 웃음으로 대답하고,

현정은 손으로 그녀의 옷매무새를 만지작 거리며,


내가 얘보다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나?

현정은 순간 그와 그만 만나야 하는 이유가,   

그녀가 그 보다 늙어 보이는 것 때문인가

라고 생각한다.


이젠 참 별게 다 신경 쓰인다.  


재욱은 그 사이, 동네 슈퍼에서 음료수를 사 와,  

두 노부부에게 건네고,

하나는 뚜껑을 열어 현정에게 건네고,

다른 한 손으로 어깨도 감싸 안자,

그 걸 본 아내분이 말한다.

“남편분이 참 다정하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런가 봐요. 우리 때는 나란히 걸으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앞서서, 뒤서서 걸었는데.”

“아니에요.”


현정이 손사래를 치며, 뭐가 아닌지,

아니라고 말하자,

재욱은 기분이 좋은지,

이번에는 현정의 손을 잡으며 말한다.

“자기야. 나 저기 마당 좀  정리하고 올게. 음료수 마시면서 말씀 나누고 있어.”


마당 정리?

갑자기?

뭐?

자기?


재욱은 아내분을 보며, 생긋 웃으며,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자리를 뜬다.


재욱은 부인의 말이 상당히 만족스럽다.


둘이 부부처럼 보인단 말이지.

그런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다.


앗.

현정에게 결혼 같은 건 생각도 안 한다고 했는데.

아무튼,

둘이 그 정도로 가까워 보인단 말이지?

그 정도도 충분하다.


현정은 두 노부부가 집을 다시 한번 둘러보는 동안,  

마당 앞 의자에 앉아, 밝은 베이지 색의 면바지에

하얀 티를 입고, 반팔 남방을 걸친 재욱을 본다.


그의 시그니쳐 스타일이이다.

180이 조금 넘는 키에, 어깨가 넓고, 체격이 있어서, 그는 더 커 보일 때도 있다.

어릴 때는 좀  통통했다던데, 살을 좀 뺐다고 했고,

그 뒤로 운동을 꾸준히 한다고 한다.

살이 잘 찌는 체질이라나.

재욱은 보드라운 면 소재의 바지를 좋아한다.

밝은 갈색, 베이지색, 카키색, 검은색, 진한 밤색등

색만 다를 뿐, 디자인과 소재는 모두 비슷한 면바지를 입는다.

그는 남방 마니아다.

남방의 스타일은, 단일 색부터, 여러 혼합색, 체크,

청 소재, 면부터 모직까지 다양하게 가지고 있다.  

남방 안에는 면티를 입는데,

같은 종류로 하얀색 혹은 검은색 둘 중의 하나를

받쳐 입는다.

회사에 출근하는 날은, 면바지에 양복 셔츠를 입고,

아주 가끔 회사에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은 양복을

입기도 한다.

추운 날은, 이 스타일에, 스웨터 혹은 잠바,

그리고 한국에 와서는 모직 코트를 입기도 한다.

지금은, 앞머리를 옆으로 살짝 넘긴, 같은 길이의 머리

스타일이다.

그는 캔버스 운동화를 즐겨 신는다.

이 운동화도 여러 종류의 색을 다채롭게 가지고 있다.

늘 노트북을 안전하게 넣을 수 있는 가방에, 노트와

필기도구를 챙겨, 어깨에 메고 다닌다.

가방 옆에는 물통 텀블러, 그리고 커피 텀블러를

가지고 다닌다.

재욱도 명우처럼,  환경에 대해 꽤 깊이, 그리고

심각하게 생각하며 산다.

그래서 그는 친환경 물건을 주로 사용한다.

종이봉투, 플라스틱 봉투 사용을 제한하기 위해,

마트 플렉스를 위한 시장용 가방을 여러개 챙겨

다닌다.


오늘은 가방을 메고 오지 않았다.

컴퓨터 대신, 운전을 하며, 현정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현정은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종류도, 반바지, 나팔바지, 통이 넓은 바지, 붙는 바지등 모양도 색깔도, 길이도 다른 청바지를 다양하게

가지고 있다.

청바지에, 민무니의 헐렁한 티, 붙는 티, 소매 없는 티, 소매가 긴 티를 받쳐 입고,

앞이 트인, 카디건을 걸쳐 입는다.

현정은 카디건과 스웨터 마니아이다.

카디건이나 스웨터의 포근하고, 보들보들한 감촉이

좋아서다.

얇은 카디건, 도톰한 카디건등 다양한 무늬, 길이,

색상의 카디건을 가지고 있다.

겨울에는 목이 올라오거나 그렇지 않은 스웨터를 입는다.

회사 다닐 때는 캐주얼한 정장을 입었었고,

서울에서 학원에 다닐 때도, 회사 다닐 때처럼 입고

다녔지만,

평상시에는 청바지에 티, 그리고 카디건을 걸친다.

현정은 165센티의 키에 약간 마른 체형이다.

살찔 틈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성격상, 늘 잠도 음식도 과하게 하는 편이 아니다..

그녀의 몸매에서도, 현정의  예민하고, 반듯하고,

정확한  성격이 드러난다.


그런데 그녀는 한국에 오고,

많이 먹고,

많이 마시고,

많이 자서,

5킬로그램 정도 살이 쪘다.

살이 약간 붙으니, 오히려, 그녀의 마른 체형에 볼륨이 있어 훨씬 나아 보인다.

현정도 캔버스 신발을 즐겨 신는다.

그녀도 꽤 다양한 색의 캔버스를 가지고 있다.

현정은 환경에 대해서 그다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코로나 기간 동안에는 엘레나와 매 식사를 집에서

먹으며, 식기 세척기가 있어도 감당이 안돼,

한동안 종이 접시를 사용하기도 했다.

시장 가방은 꽤 많은데, 늘 집에 잘 보관하는 편이다.

그래도, 물병과 텀블러는 사용한다.

종이컵을 쓰면, 환경을 해치는 것 같다.

그런데 왜 종이 접시는 괜찮게 느껴지는 걸까?


노부부가 가고,

현정은 부동산에 연락해,

그들에게 말한 것을 전달한다.


그 사이 재욱은 근처 맛집을 알아낸다.

“배고프지 않아? 난 너무 배고픈데. 우리 여기 가자.

여기 맛집이래.”


늦은 점심을 먹고, 현정은 지숙에게 전화를 하려고

찾으니 없다.

재욱이 차에도 가 봤지만 없다고 한다.


“집에다 놓고 왔나 봐. 아까, 부동산 사장님과 전화

하고, 놓고 온 거 같아.”

“그래? 다시 가면 되지.”


현정은 그 집에 다시 가고 싶지 않다.

믈건도 없는 텅 빈 집이지만,

예전처럼 물건들이 놓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군데군데, 어릴 때 보던, 재철의 모습도 떠올랐다.

스키를 타고 와서는 눈을 털어 내고, 스키복을 널던

모습,

고기를 구워 주던 모습,

엄마와 마당에 앉아 커피를 함께 마시던 모습들

말이다.

어제처럼 생생한.


엄마와 할머니의 구석구석 묻은 손길들도 느껴졌다.


짧지만 엘레나가 따스하고 포근하게 머물던 곳이었다.


다른 이에게, 게다가 이 집을 정말 마음에 들어 하고,

다음 주라도 당장 살 것 같은 사람이 나타나니,  

이제 진짜 넘겨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순간순간 울컥하며 눈물도 핑 돌았었다.


그래도 핸드폰을 놓고 왔으니 가지러 가야 한다.


“현정, 커피 하나 사가지고 가도 돼?”

“응. 아. 거기 가자. 엄마가 하셨던, 카페.”

“맞아. 네가 이야기했었는데. 드디어 오늘 가보네.”

“그 집 부부가 입이 무거워서 다행이야.”

“응?”

“그런 게 있어.”


현정은 카페 부부가 현정에 대해 지숙에게 전화해

이야기를 한다면,

그 카페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두 부부는 세심하고 배려가 많지만,

적당한 바운더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숙이 그들과 더 가까워졌을지도 모른다.


현정이 카페로 들어서자 그녀를 알아본 정하가

달려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언니. 너무 오랜만이에요. 지난번도 집 때문에 내려오신다고 들었는데, 여긴 오시지 않아서, 보고 싶었어요.”

“응. 그때 갑자기 내려오고, 또 빨리 가봐야 해서, 부동산 사장님만 만나고, 터미널에 데려다 달라해서

그냥 갔었어.”

“그랬구나. 오늘은 어때요?”

“맘에 엄청 들어하시더라고.”

"섭섭하지요?”


현정의 마음을 아는 듯 정하가 말한다.


“좀 그렇네.”

“언니 여기 앉으세요. 식사는 하셨어요?“

“응. 방금 먹고 왔어.”

“그럼 제가 알아서 제일 잘하고 제일 맛있는 거로

가져다 드릴게요.”

“오. 기대되는데.“

“성철 씨. 현정 언니 왔어요.”


정하가 주방 안에 있는 남편을 부르자, 성철이 현정을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오셨어요. 누나. 잘 지내셨어요?”

“응. 뭐 그럭저럭.”

“사장님은요?”


지숙을 사장님이라 부르며 안부를 묻는다.


“사장님은 무슨, 이제 너랑 정하가 사장님인데.”

“그럼 사부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아님 회장님?”


정하가 이것저것 만들어서 내 온다.


“뭘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 우리 방금 식사했는데.“

“디저트 배는 따로 있죠. 우리의 주력 메뉴랑, 신 메뉴도 있어서, 한번 드셔 보시라고요. 평가도 해주시면

더 좋고요.”

“알았어. 잘 먹을게. 고마워.”


정하는 현정의 옆에 있는 그녀의 손님을 보고는,

별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고는,

눈치껏 자리를 뜬다.

사부님의 딸과 앉아서 수다를 떨고 싶지만,

그녀에게 특별해 보이는 손님이 있고,

여기까지 남자를 데려온 건

처음이라,

그들이 함께 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정하는 지숙과 현정의 이야기를 모두 안다.

지숙이 현정의 앞에선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참았던 눈물을 정하 앞에서 보이기도 했었다.

현정이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정하는 성철과 함께 주중 오후에 지숙의 집에 가,

저녁도 함께 먹고,

엘레나와  함께 놀기도 했었다.


현정이 이것저것 맛을 보고는 정하를 불러,

맛있다고,

정말 맛있다고,

끊임없는 칭찬을 하고,

남은 건 싸 달라고 하고는 카페를 나온다.


집에 가서 핸드폰을 찾아서 올라가려면,

늦지 않게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에 가서 핸드폰까지 찾으니,

피로가 몰려온다.


현정은 잠시 거실에 앉아, 창으로 들어오는,

늦은 오후의 햇살을 보며 마당을 쳐다본다.


재욱이 마당 여기저기를 거닐고 다니며,

꽃들을 들여다보는 것이 보인다.


피곤함이 밀려와, 몸과 정신이 나른하다.

현정은 그대로 마루 바닥에 눕는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집이지만,

느낌과 냄새는 그대로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밖에 있는 가로등 불이 창문으로 스며들어,

주변만 겨우 보일 정도인 저녁이 되었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보니, 거의 8시다.


옆을 보니 언제 와서 누웠는지,

재욱도 거실 바닥에 누워 자고 있다.

흔들어 깨우려다,  

불빛으로, 그의 얼굴 윤곽이 보이자,

잠시 그의 얼굴을 찬찬히 둘러본다.


가지런히 정돈된 눈썹,

오뚝한 코,

선홍색을 띤 도톰한 입술.


재욱이 천천히 눈을 뜬다.

상거풀이 없는 길고 가는 눈매.


그와 눈이 마주친 현정은,

시선도 자리도 피하지 않고,

그의 눈을 응시한다.


재욱도 그런 그녀를 바라본다.

동그란 눈,

동그란 눈동자,

많은 이야기가 담긴 그녀의 눈빛,

아담하고 오뚝한 콧선,

그리고,

늘 야무지게 다물어져 있는 입술,

하지만,

웃을 때면,

입꼬리가 반달모양으로 올라가,

그 예쁜 입술을 보고 싶어,

그녀를 참으로 열심히도 웃게 만들었었다.


침묵.

불빛 에만 의존한 어두운 공간.

서로를 응시한 눈빛.


재욱은 상체를 일으켜 현정의 입에 입맞춤을 한다.

현정도 재욱을 밀어내지 않는다.


둘은 오랫동안 서로를 기다렸지만,

서두르지 않는다


시간,

공간,

공기,

어둠과 빛,

숨결까지,

모두 천천히,

서로를 음미한다.


재욱은 그의 두 팔로 그녀를 최대한 감싸 안는다.

여름이어도 강원도의 저녁은 싸늘하다.


“춥지 않아?”

“괜찮아.”


재욱이 현정의 목덜미에 머리를 파묻고,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처음부터, 그녀를 만난 때부터,

그녀가 하는 모든 말 들을 주의 깊게 귀에 담고 싶고,

그녀와 하는 모든 것들을 기억에 고스란히 담고 싶고,

그의 눈동자에 새겨진, 그녀의 모습을 담고 싶고,

그녀의 숨결을 그의 호흡에 담고 싶었다.


현정을 다시 만난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가 밀어 내도,

그래도 그녀와 함께 일상을 만들어 가며 지낸

모든 순간들이

그를 숨쉬게 한다.


그의 마음과, 영혼에 이미 새겨진 그녀,

그녀 없이,

살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은,

그녀와 함께 있어,

행복하다.


"사랑해. 현정."

"나도 사랑해."


현정은,

그녀가 그를 정말 마음 속 깊이 진심으로

사랑

사랑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인정 했다.

그래서,

마음은 한결 가볍다.

물론 상황과 환경은 여전히 가볍지 않지만.

그가 늘 말하듯,

지금,

이 순간,

오늘,

현정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사랑을 느낀다.

마음이 따쓰해지고,

행복한 기분이 든다.


“주말이라 호텔 잡기가 너무 어렵네.”


거의 밤 11시,

운전을 해서 서울로 올라가는 것은 무리다.

게다가 집만 덩그러니 있는 곳에서 밤을 지새울

수는  없다.

재욱이 여기저기 검색해 보지만, 찾기가 쉽지 않다.


현정은 잠시 고민하다,

정하에게 전화를 건다.


밤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어,

정하가 급하게 전화를 받고는,

역시 평창 토박이답게,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인맥을 이용하여,

바다 근처의 민박집을 소개해 준다.


민박이지만, 시설이 깨끗하고,

바다 바로 앞이라, 낮에는 뷰가 예술이며,

호텔에서는 맛볼 수 없는 주인집 아주머니의 맛있는 아침식사까지 제공되는,

정하 엄마의 사촌 언니가 운영하는 곳을 소개해 준다.


재욱과 정하가 민박집에 도착하니,

연락을 받은 사촌 언니는,

벌써 이것저것 준비를 해 놨다.


둘은, 대충 씻고, 준비해 준 옷으로 갈아입고,

이불 위에 누우니,

다시 피곤이 몰려온다.


재욱이 옆으로 누워 현정을 바라보자,

현정도 돌아 누워 재욱을 바라본다.


“잘 자.”


재욱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잘 자라는 인사를

하니,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사라질 것 같은,

비현실적인 곳에 있는 거  같다.

그녀와 있는 이 시간과

이 공간이 너무 달콤해서 꿈처럼 느껴진다.


아.

그래서 현정이 그를 만날 때 꿈이라고 말한 건가?


“너도. 잘 자.”


현정이 재욱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한다.

재욱은 그런 현정의 손을 잡고 입맞춤을 한다.

현정은 재욱의 가슴으로 머리를 밀어 넣고,

그를 껴안는다.


서로 두른 팔에서 느껴지는 따스함.

서로에게  풍기는 같은 향의 비누 냄새.

서로 숨을 쉬고 내실 때, 오르락 내리락 느껴지는 가슴.

함께 듣는,

고요함 속에  들려오는 파도소리.

함께 느끼는 평온함.

둘에게 흐르는 시간이

재깍,

재깍,


천천히

매초,

매분,

귀하고 의미 있게 흘러간다.


서울로 올라온,

둘은 조금  달라졌다.

서로 에게 더 신중하고,

책임감과 무게감을  가지고 대한다.


그리고,

이제, 둘은 모든 것을 같이 하기 시작한다.

시간을 서로 더 많이 보내기도 한다.


재욱은 드디어

현정의 아파트에 방문했고,

현정도,

그가 사는 오피스텔을 방문해,

라면 보다 맛있는 그가 만들어준 음식을 먹었다.


재욱은 그녀의 집에서,

그의 집까지 거리를 재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그럴 필요가 없다.


어떤날은 주 네서,

저녁을 먹고,

그녀를 바려다 줄 필요가 없다.  


서로의 집에,

잠옷과 칫솔이 놓여 졌다.


일상이 된 둘의 삶이 깊어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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