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것들 (푸르샤아르따)
유튜브를 돌아다니가 우연히 알쓸신잡의 내용을 만나게 되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가에 대한 너무나 궁금하면서도 딱히 정의 내릴 수 없는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가? 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이다.
알쓸신잡 유튜브 한 부분만 봤었지만 돈과 권력이 가장 큰 가치가 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적 구조와 개개인의 주관적 가치 그 중간 어디쯤에서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현대 사회에서의 방법이다.
물질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근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의식주이겠지만 우리의 영혼을 위해 가장 근본이 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영혼은 사랑과 자비, 의식의 성장과 관련된 영적 진보를 갈망할 것이다. 인도 철학에서는 고서인 베다와 라마나야나 마하바라타에서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따라야 하는 존재의 목적, 또는 개인 영혼의 목적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인도 고서에 의하면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 의식의 진보를 위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을 푸르샤아르따(पुरुषार्थ)라고 하였다.
푸르샤아르따 (Puruṣārtha, पुरुषार्थ)는 पुरुष (푸르샤)와 अर्थ (아르따)가 합해진 산스크리트어이다.
푸르샤는 참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단어인데, 간단히 요약한다면 비물질적 본질인 영혼(Spirit)을 말한다. 샹키아 요가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푸르샤와 프라끄리띠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아르따 (अर्थ)는 목적, 욕망의 대상, 의미 등의 뜻을 가진 산스크리트어이다. 푸르샤아르따는 인간의 목적으로서 인간으로 태어난 기회를 얻었다면 반드시 추구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푸르샤아르따를 이야기 하다 보면 다들 힌두 철학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푸르샤아르따는 힌두교가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 베다 철학에서 이야기되었다. 베다 철학을 통해 불교와 자이나교가 나오고 이후에 힌두교와 시크교가 나왔으니, 내 의견으로 푸르샤아르따는 힌두교의 것이라기보다는 베다 철학의 일부인 것이라고 보고 있다. 요즘 이를 안 인도 사람들 중에 몇몇은 종교를 답하는 질문에 힌두교라고 말하지 않고 Veda religion인 브라마니즘이라고 답하는 사람들도 있다.
푸르샤아르따, 즉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반드시 추구해야 하는 것들은 4가지라고 이야기한다. 그 4가지는 다르마(Dharma), 아르따(Artha), 카마(Kama), 목샤(Moksha)를 말한다. 다르마(Dharma)는 우주의 법을 말하는 도덕적 가치이다. 아르따(Artha)는 번영을 의미하는 경제적 가치, 카마(Kama)는 행복과 쾌락을 말하는 심리적인 가치이고, 목샤(Moksha)는 번민으로부터의 해방, 자아실현을 말하는 영성의 가치를 말한다.
초창기 베다에서 푸르샤아르따는 다르마, 아르따, 카마 이 3가지를 말하였지만, 시간이 흘러 우파니샤드 시대에 보다 높은 의식에 대한 열망으로 목샤가 추가되었다. 그렇다고 베다 시대에 목샤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초창기 인류는 순수 영혼을 간직한 높은 의식 수준이었다고 한다. 황금시대로 표현되는 이 시기에는 목샤는 생활의 일부였지만, 어둠과 무지의 시대인 칼리유가(인도에서 말하는 우주의 시간인 Yuga, Yuga는 4개로 나뉜다.)에 이르면서 인류는 악을 거듭 행하게 되었고, 목샤에 대해 점점 잊게 되었다. 세상이 어둠과 무지로 뒤덥혀 있을 때 도덕적 가치인 법을 강조하였으며, 도덕적 가치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 경제적 번영과 개인의 행복이 기본이 되어야 하기에 다르마, 아르따, 카마를 이야기하였다.
칼리유가에 이르렀어도 깨달음을 통해 우주의 진실을 이해하고 경험한 성인들은 목샤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였다. 후세에 이를 가르침으로 전하였는데, 전해져내려 오면서 어둠과 무지의 시대이다 보니 본래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우파니샤드의 시대가 그러하다. 우파니샤드는 베다에서 비롯되었으며 참 아름다운 글귀가 담겨 있지만 그 내용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성인들은 목샤에 대해 말로 후세에 전하였고 나중에는 글로 전해졌다. 후세의 사람들은 본인의 역량만큼 그것들을 이해하였다. 바가바드기타(Bhagavad Gita) 7장 3절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완전함에 이르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한 명도 있기가 힘들고, 완전함에 이르고자 애쓰는 사람들 중에 나를 진실로 아는 사람이 한 명 있기도 어렵다. (바가바드 기타 7장 3절)
브라마수트라(Brahma Sutra)라는 고서에 보면 다행히 이 우주의 창조자는 혼돈의 시기 때마다 성인들에게 임무를 주어 이 세상에 보낸다고 한다. 무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인간으로 태어난 잃어버린 본래의 목적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푸르샤아르따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근원적으로 우리가 왜 이 세상에 왔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인도 고대철학에 의하면 영혼은 8,400,000종 중에 가장 미물인 미생물부터 시작하여 참된 영혼의 가치를 깨닫고자 의식의 진화를 거쳐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축복이라고 이야기한다. 인도 철학에 의하면 인간으로 태어나기까지 우리가 셀 수 조차도 없는 생이 소요된다고 한다. 아베마와 같은 단세포 생물에서부터 식물, 곤충류, 조류, 동물을 거쳐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동물과 비슷한 의식 수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낮은 의식 수준에서부터 수만 생을 거쳐서 점차 높은 의식 수준을 가진 인간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인도 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 교수님께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 질문은 왜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는 두려움이 항상 동반되어야 하는가 였다. 두려움 없이도 단계적으로 성숙해가면서 진보해 갈 수 있는데 왜 세상의 많은 종교는 악이라는 대상을 만들어 놓고 인간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교수님의 답변은 8,400,000종 중에서 다양한 미물로 시작해서 의식이 계속 진화해 오지만 우리의 의식 수준이 늘 항상 상승하는 것만은 아니고 의식 수준이 밑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 행위하는 모든 것들에 의해서 미래가 결정이 되듯이 악한 행위를 한다면 미물에서 벌레와 조류를 거쳐 동물이 되어 인간으로 태어나는 과정이 반드시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반인륜적인 행위를 했거나 악한 행위를 하게 되면 다음 생에 인간보다 아래 단계인 식물, 새나 벌레 등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고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기까지 수많은 생을 식물과 벌레, 새, 동물들을 거쳐서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얻기까지 수천, 수만 년의 생을 다시 살아야 하는 것을 알기에 그것을 경고하는 것일 것이라 하였다.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감사히 여기고, 세상의 법을 지키고, 일을 하여 번영을 추구하고, 매사에 행복을 찾고, 그리고 영성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바로 인간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들이라고 이야기한다.
오늘도 이렇게 적어보니 말로 풀어내는 것은 참으로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