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그동안 세찬 비바람과 거친 파도와 싸우며 항해한 나영호는 드디어 결혼이란 항구에 닻줄을 내리게 되었으나 배가 연안에 다다라서도 암초는 여전하여 배의 밑바닥에 지우기 힘든 생채기를 냈다.
결혼 과정에서 제일 먼저 치러야 할 상견례는 아예 생략되었고, 봉채함은 처가에 들이지 못하여 처삼촌 댁으로 매고 갔다. 결혼 전날 밤, 나영은 지나온 고난의 항로를 돌아보며 격한 감회에 젖었고 자신이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감개무량했다. 철저한 무신론자였던 아버지가 이렇게 변신할 줄, 자신 만의 하느님 아버지를 믿던 나영이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될 줄은 아무도 상상치 못한 일이었고 이 모든 변화는 한 미스터리의 여인에 의해 시작되었다.
나영이 본과 3학년이던 어느 일요일 아침, 나영의 아버지는 나영의 방에 살짝 잠입해 들어와 10시 50분쯤 아파트 바로 밑에 있는 버스정류장 앞에서 만나자는 지령을 내렸다. 나영은 전처럼 아버지가 식구들 몰래 자신만 데리고 영화라도 한 편 보여주시려나 싶어 기대에 들떠 그 시각에 맞춰 집을 나가 정류장 앞에서 기다렸다. 조금 있으니 아버지가 오셨는데 정류장 앞을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닌가!
“아버지, 어디 가세요?”
“그냥 따라오라우.”
나영이 놀라 따라가니 아버지가 말했다.
“교회 간다.”
“예에? 교회요? 아니, 거길 왜요?”
“내가 교회 안 나가면 그 아이가 집을 나가겠다고 하잖니! 너도 한번 생각해 봐라. 지금 어디서 저만한 애를 구하겠냐? 내가 교회 나가는 것이 제 소원이라니까 그냥 나가는 흉내라도 내줘야 하지 않갔어?”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녀가 나영의 집에 가정부로 들어온 가장 큰 목적은 이 집안을 전도하는 것이었는데, 2년 가까이 공을 들여도 씨알도 안 먹혀들어 가자, 집안에서 절대권자인 아버지에게 집을 나가겠다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완벽주의자 아버지 밑에서 큰 소리 한 번 안 듣고 아버지 눈에 쏙 들도록 일을 해낸 그녀. 그런 사람이 갑자기 그만둔다고 생각하니 아버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교회에 다다라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녀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환하게 웃으며 안으로 안내하는데 맨 앞 단상 위에 앉아있던 머리 허연 목사님이 그들을 보고는 바로 달려 내려와 빈 집에 소 들어온 듯 아버지를 반긴다.
“이거 뭐꼬? 이런 시추에이션이 아닌데, 이거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네.”
나영은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예배가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목사님 기도 시간이 되자
“오늘 따님의 손을 잡고 교회에 처음 출석 한 귀한 분이 있습니다. 우리 다 같이 그분을 위해 기도합시다.” 하면서 통성기도를 시작했다.
그러자 교인들이 귀가 따가울 정도로 큰 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아예 고개를 뒤로 젖혀가며, 어떤 사람은 눈물을 흘려가며 열정적으로 기도했다.
역시 순복음교회다웠다. 이런 것 딱 질색인 나영은 기겁했다.
"야이 썅! 기도는 혼자 조용히 해야지, 무슨 미칭개이도 아니고 저기 머꼬? 아이구 야, 여기 앉아 있다가는 나까지 빼도 박도 못하겠네."
나영은 자리에서 살그머니 일어섰다.
마침 모두가 눈을 감고 있는 데다 나영의 유별난 발걸음 소리도 요란한 기도 소리에 파묻혀, 나영은 아버지 몰래 무사히 줄행랑을 칠 수 있었다.
이것이 나영이 난생처음 교회에 발을 들이게 된 사연이요 그 첫 장면이다.
이렇게 시작된 아버지의 교회 나들이는 대충 끝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교회에 몇 번 나가고 난 후, 어느 날 가족회의를 소집하고는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한 집안의 종교는 하나로 통일되어야 하지 않갔어? 그러니 다음 주부터 전부 교회에 나오라우."
식구 중 반골 기질이 가장 강한 나영은 바로 항변했다.
“아버지, 종교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내가 무얼 믿을지는 각자가 알아서 정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아버지는 바로 일갈(一喝)했다.
“뭬야? 애비가 교회 나가는데 자식새끼가 안 나간다는 게 말이 되냐?”
이 한마디로 상황은 종결되었다.
나영의 집에서 아버지의 영(令)을 거역한다는 것은 곧 살기 싫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이 영은 서울에 있는 형들에게도 파발마(擺撥馬)가 달려가 거역할 수 없는 가왕(家王)의 어명으로 전달되었다.
오래전부터, 힘들 때마다 절에 다니던 나영의 어머니는 실리를 취했다.
평소에 어머니가 갖고 싶어 하던 살림 도구 하나를 사 주면 나가겠다 하여 그 자리서 승낙받고 얻어냈다.
나영은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마음 하나로 마지못해 주일 오전 예배만 참석했다.
이렇게, 가정부의 협박과 아버지의 파쇼로 시작된 교화(敎化) 작업은 나영 집안을 송두리째 변화시켰고 아들의 결혼식도 교회에서 치르게 만들었다.
아버지더러 하나님 믿으라 할 때마다
"야, 그딴 것 믿을 바에야 차라리 나를 믿어라."라고 하던 아버지를 하루아침에 회까닥 변화시킨 그녀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녀의 근본이 무엇인지, 도대체 누구의 소개로 나영의 집에 오게 되었는지, 서울에 살던 사람이 무슨 연유로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부산에 내려오게 되었는지, 하필이면 왜 나영의 집에 왔는지에 대해서는 확인된 바 없고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다음과 같은 그녀의 말뿐이다.
그녀는 전라남도 구례 출신으로, 어릴 적 중이염에 걸려 귀가 몹시 아팠는데 동네 어른들이 교회 가서 기도하면 낫는다 하여 그 말대로 교회에 가서 열심히 기도했더니 어느 날 감쪽같이 귀가 나아 그때부터 교회를 다니며 하나님을 열심히 믿기 시작했다는 것이 전부다.
그녀의 일 처리는 완벽했고, 아무리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표 나게 삐지거나 항변하지 않고, 입으로는 오로지 하나님 이야기만 하는 여자.
내일이면 백화와 교회에서 예식을 올리게 될 나영에게는 이 모든 일이 범상치 않게 다가왔고 그렇게 생각하게 된 중심에는 그녀의 이름과 나영이 지은 노래에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한 백화'. 성씨는 나영과 같은 ‘한’에 이름은 백화와 같은 '백화', 게다가 나이도 백화와 같은 스물네 살이다.
자신이 백화에게 노래를 지어 바칠 때도 목사 딸인 같은 실습조 여학생이 권유한 성경의 '시편'을 읽고 영감을 받아 지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모든 일이 그 노랫말대로 되어왔고 내일이면 ‘주님의 축복이 우리를 비추리라’는 그 마지막 구절까지 이루어진다.
이 모든 것이 그저 우연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영에게는 이 처녀가 나영의 집안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고 백화와 나영의 결합을 예표하기 위해 하늘에서 보낸 천사인 것만 같았다.
결혼식 날, 처가 식구는 장모 외에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아 백화는 아버지 대신 외삼촌의 손을 잡고 입장하였다. 신부 부모석에는 장인 대신 처삼촌이 앉았고 양가 가족 및 친인척 사진 촬영 시에는 처삼촌 가족과 장모님 친구들이 자리를 채웠다.
나영은 예배당 제일 앞줄에 앉아있다가 “신랑 입장.” 하면 자리에서 일어서서 두어 발자국 앞으로 나와 신랑석에 서면 어떻겠냐는 목사님의 친절한 제안을 사양하고, 여느 신랑과 마찬가지로 모든 하객이 보는 가운데 맨 뒤에서 저는 걸음으로 보무당당히 걸어 나왔다.
결혼식 며칠 전, 나영은 백화에게 바륨이라는 진정제를 한 알 주면서 결혼식 날 아침에 먹으라 하고 그도 그날 아침 그 약을 먹었다. 나영이 그리한 것은 아무래도 결혼식 날, 감정에 북받쳐 둘 다 울어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백화가 약에 예민해서 정상 성인 처방보다 용량을 조금 줄여야 한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던 것이다.
목사님이 주례 설교를 하는 동안 백화가 나영의 팔을 툭 치면서 속삭였다.
"왜 그래 떨어요?"
아무래도 약이 과했나 보다.
나영은 약을 먹어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감정은 살아있어 자신도 모르게 몸을 약간 떨고 있었는데, 백화는 약에 취해 아무 감정도 남아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백화는 결혼식을 마치고 나영의 집에 가서 폐백을 드린 후 신혼여행을 떠날 때쯤 제정신이 돌아왔는지 그때부터 방긋방긋 웃는 얼굴이 되었다.
1978년 5월 5일, 백화와 처음 데이트한 후 꼭 1년 6개월이 지난 1979년 11월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