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연구원으로 일하는 기영 씨는 요즘 고민이 많다. 대학원까지 마치고 어렵게 입사했지만, 몇 년째 비슷한 업무를 반복하며 정체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주변에서는 "조금만 더 버텨라, 5년 차부터 길이 보인다"라고 말하지만, 그 ‘길’이 과연 내게 맞는 길일지 확신이 없다.
반면, 같은 입사 동기인 정우 씨는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는 3년 만에 퇴사하고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 "무조건 참는 게 능사는 아니야. 중요한 건 어떻게 버티느냐야." 기영 씨는 정우 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잘 버틴다’는 건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이러한 고민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나 역시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하며 비슷한 불안을 직접 경험했다. 그때 나는 구조조정을 당하는 동료들을 매달 한 명씩 지켜봐야 했다. 매달 한 번씩 상사가 직원 한 명을 불러 “이번 달 대상자”라고 통보하면, 우리는 모두 가슴을 졸이며 "다음은 내 차례일까?"라는 불안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동시에 나는 부실해진 회사들의 구조조정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었다. 어려워진 기업들은 더 이상 직원을 보호해 줄 수 없었고,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산산조각이 났다. 나는 이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조직은 개인을 보호해주지 않는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버팀력이란 단순히 직장을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 속에서 나를 지키고 성장할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단순히 한 회사에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어떤 변화가 와도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했다. 그 측면에서 그 뒤로 박사 학위와 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강의도 시작하고, 정부 평가위원, 자문, 기고 등의 브랜딩을 위한 활동들을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버텨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무조건 버틴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버팀력(Perseverance)'은 단순한 '인내(Patience)'와 다르다. 인내가 고통을 견디며 가만히 있는 상태라면, 버팀력은 고통 속에서도 능동적으로 방향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다.
예를 들어,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인내형 인간: "그냥 가만히 있으면 누군가 나를 구해주겠지." (수동적인 기다림)
버팀력 있는 인간: "일단 나아가면서 해결책을 찾아보자." (능동적인 행동)
버팀력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방향을 잡고 꾸준히 나아가는 힘이다. 단순히 오래 버티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과정에서 성장하고, 방향을 조정하고, 전략을 바꾸면서 끝까지 가는 힘이다.
버팀력과 흔히 혼동되는 개념이 있다. 바로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다. 두 개념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회복탄력성(Resilience): 어려움을 겪은 후 빠르게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힘. 지치지 않는 힘(예: 실패한 후 다시 도전하는 창업가)
버팀력(Perseverance):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나아가는 힘 (예: 힘든 프로젝트를 끝까지 완수하는 직장인)
즉, 회복탄력성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힘이라면, 버팀력은 넘어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고 계속 나아가는 힘이다.
심리학에서는 버팀력을 설명하는 여러 이론이 있다. 그중에서도 그릿(Grit), 내적 동기(Self-Determination Theory), 그리고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이 중요한 개념이다.
1. 그릿(Grit) - 끝까지 가는 힘
심리학자 앤절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재능이 아니라 그릿(Grit)이다"라고 말했다. 재능보다 중요한 것은 끈기이며, 열정과 끈기를 더한 역량이 버팀력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열정 + 끈기 = 버팀력)
2. 내적 동기(Self-Determination Theory) - 스스로 의미를 찾는 힘
내적동기를 형성하는 데는 크게 3가지가 필요하다.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이다. 자율성(Autonomy)은 내가 선택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유능감(Competence)은 성장하고 잘 하고 인정받는 다는 경험이 중요하며, 관계성(Relatedness)은 주변 사람들과의 연결이 버팀력을 높인다.
3.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 - 실패 속에서 배우는 힘
스탠퍼드 대학교의 심리학자 캐럴 드웩(Carol Dweck)은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노력과 배움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강조했다. "나는 이걸 못 해" 에서 "나는 아직 이걸 못 하지만, 연습하면 나아질 거야!". "실패는 끝이 아니다, 배움의 기회다."라는 마인드로 과감히 전환하는 것이다.
이 개념은 최근 MS에서 적용되어 기존의 MS의 조직문화를 바꾸고 성과를 현격하게 개선하는데 매우 큰 공헌을 했다. 뛰어난 인력을 뽑아 그 자리에서 머무는 고정형 마인드셋으로 인해 외부시장에 대해 적절한 대응보다는 내부경쟁으로 치닫던 MS를 학습하고 협업하는 조직으로 바꾸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힘을 부여토록 했다.
1. 작은 목표를 설정하라
"버텨야 한다"는 생각보다 "한 걸음 더 가보자"는 마음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올해 안에 승진해야 해" → "이번 달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나 배워보자."라는 방향으로 시도하는 것이다.
2.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한 번의 실패가 끝이 아니다. 실패는 과정일 뿐이다." 예를 들어 "이번 발표 망쳤어" → "다음엔 어떤 점을 보완할 수 있을까?"라는 방향에서 성장의 포인트를 찾는 것이다.
3. 버팀력을 키우는 환경을 만들어라
"혼자 버티는 것이 아니라, 함께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동료들과 정기적인 커피 모임을 가지며 서로 고민을 나누는 것, 내부 멘토를 통해 주기적인 피드백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버팀력은 단순한 인내가 아니라, 어려운 상황에서도 방향을 잡고 꾸준히 나아가는 힘이다. IMF 시절의 경험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조직이 나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버팀력은 결국 성장하면서 버티는 것, 변화 속에서도 나아갈 수 있는 힘이다. 이는 삶과 직장에서의 업무방식과 철학의 변화를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