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이 매운탕이 생각날 때면 찾아가는 저수지가 있다. 다른 지역보다 개발이 덜 된 탓인지 매운탕, 어죽 같은 식당만 몇 군데 있는 정도였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 카페가 하나 둘 들어오는가 싶더니 작년부터 저수지 주변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도로를 넓히고 산책로를 만들고 공사가 한창이다. 누가 봐도 앞으로 사람들로 북적거릴 곳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내 눈에도 보일 정도인데 수완 좋은 장사꾼이 놓칠 수 없는 호재다.
이미 누군가는 일찌감치 목 좋은 곳에 카페를 오픈했다. 우리는 그 발 빠른 행동에 감탄을 하곤 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카페 옆의 집이 헐리고 4층 건물의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섰다. 이전 카페는 대형 카페에 가려진 형국이다.
얼마 전 아이랑 그 카페들을 지나치게 되었다. 이전 카페는 주인이 바뀐 것인지, 새 단장을 한 건지 간판이 바뀌어 있다.
아이가 그걸 보더니 딴에 자기 생각을 말한다.
"엄마, 저 카페 너무한 거 아냐? 저렇게 다 가리면 어떻게 해? 상도덕에 어긋나는 거 같아."
"그러게. 좀 심하긴 해. 옆에 가게가 힘들긴 하겠다. 근데 우리는 저 카페들 속 사정을 모르잖아. 그냥 우리 판단으로 얘기하고 있는 거 알지? 누가 옳다 그르다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는 거야. 언제나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건 위험해."
라고 얘기를 해주고 계속 운전을 한다.
그러다 앞차와 점점 가까워진다. 시골길은 속도를 낼 수도 없지만 이 앞차는 느려도 너무 느리다.
"앞차는 오늘 참 한가한 가보네. 엄청 천천히 간다. 근데 좀 답답하다."
라고 아이에게 말했다. '너무 한 거 아냐?' 하는 마음이 깔려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 후 반전이.
앞차 앞으로 소형 중장비 차가 머리를 내밀며 등장하는 것이다. 내 차보다 앞차가 커서 시야를 완전히 가리고 있었던 거다. 앞차가 문제가 아니라 그 앞의 중장비 차가 천천히 가고 있었던것을 눈에 보이는 대로 앞 차 탓만 하고 있었다.
조금 전 아이에게 내 마음대로 단정적으로 판단하지 말라고 했으면서, 나 역시 눈앞에 보이는 현상만 보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뜨끔했다. 아이에게도, 앞차 운전자에게도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물론 앞차는 뒤에서 내가 뭔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