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by 노아

짙게 칠해진, 검은 하늘. 그날의 시간이 눈물 되어 하강해갔던 나날. 밤하늘을 수놓았던 모든 추억들이 눈물의 강으로 채워갔던 순간들. 저마다의 불빛들로 환하게 지상을 비추는 건물들이 날 둘러싸고 드리워있다. 마치 바닷속 깊숙히 가라앉은 날 내려보는 하늘처럼, 압도감을 보이고 있었다. 그 무게에 스르르 주저앉을것만 같았다. 그때, 저 멀리 외로이 떠있는 별 하나. 순간, 그 별이 별똥별 되어 떨어지는 듯 했다. 그때 내 귓가에서는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이 흐르고 있었다.


"안전한 유리병을 핑계로, 바람을 가둬둔 거 같지만.."


떨어지기 시작한 별똥별 하나, 뒤이어 장맛비처럼 계속 흐르기 시작했다. 그 별똥별을 닦는 나, 하나 남은 별에게 귓속말 하듯이 속삭이고 있었다.


"유리병.. 추억, 마음.. 그 모두 유리병에 담은걸까.."


지난 시간의 모든것들을 다 담은 유리병. 그 병이 깨져버린 순간, 그때의 기억, 추억 모두 증발하여 사라져있었고. 오로지 남아 있던건, 그 유리병 파편 조각으로 생긴 피와 상처 뿐이었다. 어느날 오늘, 그날의 음성이 메아리처럼 돌고돌아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면. 그럴수만 있다면, 그땐 깨진 유리병 조각들을 다시 이어 붙일수 있을까? 그렇기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흉터가 아직 아물지 않았는데.


"고마웠어.. 그동안.."


한때 빛났던, 너의 모든것들은 흐릿해져만 가는데. 그 말 한마디만은 아직도 빛나고 있어. 아직 내 머릿가에서 떠나지 않은 멜로디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어. 그 멜로디의 의미는 널 언젠가 다시 만날수 있다는 복선일까? 아니면 곧 다가올 내 아침을 맞이하지 않으려는, 집착인걸까..


"익숙함에 진심을 숨기지 말자, 우리.. 우린 끝났어"


그날까지 옅어져갔던 내 마음이 그날 이후 다시 짙어지기 시작했어. 언제나 사람 마음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니까. 아니면, 아직 남아 숨쉬는, 지난 우리들 모습에 대한 여운 때문일까.. 찰나의 네가 영원이 되어버렸어. 수많은 건물들에 둘러싸인채, 지하철 역 출구 앞에 하염없이 서있었다. 서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 혼자 그렇게 서 있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걸어오는 한사람.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한사람. 나에게 가까워지기 시작할수록, 돌고돌던 추억이 내 안으로 스며들어 요동치기 시작하고 있었다. 숨을 쉴수 없듯이, 가쁜 숨을 쉬면서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그가 내 앞에 다시 돌아왔다. 그가 나에게로 한걸음씩 가까이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발걸음과 함께 불어오는 기억의 바람, 셀렘. 그 바람이 나에게 쏟아져 밤하늘 가득 퍼뜨리는 듯 했다. 앞으로에 대한 희망의 기운이 주는 설렘이 아닌, 그때 그 감성이 확 불어와서, 그 바람으로 인해 되살아난 설렘이라면. 이 감정을 지금 나는 그저 스쳐지나가도록 놔둬야 하는 걸까? 아니면 다시 지나가지 않도록 붙잡아야만 하는 걸까. 나는 모르겠어. 그러는 사이, 내 앞에 마주선 그의 모습. 쳐다볼수 없어, 땅만 쳐다보기만 했던 나.


"그동안 잘 지냈어? 보고 싶었어.. 많이.."


부드럽고도 감미로운 그의 목소리. 긴장에 곤두섰던 날 녹이고. 그의 옷깃을 살짝 움켜잡아 붙잡고 싶은 마음 한가득. 목소리와 함께 풍기는 그의 냄새.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를 향한 모든 것들이.. 깨졌던 유리병 조각들이 저절로 이어붙여지고 있었다. 나한테 생겼던,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 보여주면서 약한척 하고 싶은 속마음. 그러나, 이미 그 상처에 딱지가 생겨서 단단해져버려서 그 어떤 말을 하고 싶더라도 닿을 수 없는 메아리일 뿐이었다.


"....."


말없이 아래를 보고 있는 내 얼굴을 보는 그, 갑자기 고개를 숙여 내 얼굴을 향해 그의 얼굴을 들이밀고. 이에 당황한 나는 놀라 똑바로 그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날 향해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을. 옅어져만 갔던 그의 미소를. 그렇게 그와 나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