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같은 어둠. 그 어둠 아래, 형형색색의 색들로 뿌려진 듯한 광경. 카카오 아지트 빌딩과 더 현대 빌딩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제각각의 건물들이 아치형을 그린 채로 거대한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그 광장 한 켠에 있는 판교 지하철역 출구. 그 앞에서 서있는 나.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선 채, 홀로 멀리 나를 향해 다가오는 너를 바라본다.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너. 나를 향해 웃는 너를 본다. 수많은 사람들이 줌 아웃 되면서, 오직 너만이 나에게로 줌 인되어 쏟아진다. 찬란한 별과 같은, 민지야..
“오빠~”
너의 향기와 품 그대로 나에게로 번져가 내 눈을 적신다. 눈물에 번진 나머지, 네 모습이 보이지 않아. 그래도 괜찮아. 얼굴을 보지 못하더라도, 너라는 걸 아는 나니까.
“민지야.. 잘지냈어...?”
민지가 나에게로 클로즈업. 네 마음이 나에게로 번져가고 있는게 느껴져. 너의 마음을 충분히 느껴져. 말하지 않아도 알 거 같아.
“미안해.. 내가.. 미안해.. 많이 미안했어.. ”
내 손을 잡는 그녀의 손에서 떨림이 느껴졌다. 그 떨림마다 인서트되는 우리의 추억 하나하나. 씬 하나하나가 되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 파노라마에 되살아나는 그때의 우리. 타오르는 불씨.
“정말 미안해.. 오빤 좋은 사람 만날거야..”
그러나, 여전히 너는 그때 그 모습에 멈춰있었고. 변한건 나였다. 오로지 나였다. 내 마음만 온전히 그때 그대로. 거기서 멈춤 상태. 순간, 위에서부터 뭉개지기 시작하는 세상. 그 세상과 함께 너의 음성도 옅어져만 가고. 텅 비어져가는 세상 속 나 혼자만 선명해지고 있었다.
“보고 싶어.. 지금 네가 뭘 하고 있는지.. 어떤 모습인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 보고 싶어.. 널 잊기 위해서 나는 얼마나 더 이 여정을 걸어야만 하는지 모르겠어. 사랑해.. 사랑해..”
끝내 뭉개져버린 세상. 그리고 찰나의 어둠이 짐과 동시에 그녀가 없는 세상으로 돌아와있었다. 나 혼자 남겨진 이곳에서, 메아리가 소멸된 이곳에서 그 음성이 다시 찾아와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돌아와.. 돌아와줘.. ”
안녕이라는 말을 상실한 세상. 영원한 작별과 끝마저 상실해버린 세상. 이 세상 속에서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 도돌이표. 너와 나의 추억은 언제나 구간 반복. 그 씬만 무한 재생중이고. 이 씬의 끝이 어떤지를 알면서도 끝내 다시 어김없이 재생 버튼 클릭. 그렇게 시공간이 소멸된 관 속에 갇혀 진공 포장되고 있다. 산소가 빠져나가 단 1의 양도 어김없이 고갈되어 제로에 가까운 진공 속에서 숨을 쉬지 않은 채 진열되어있는 듯하다. 내 육신은 껍데기가 되어 사람들에게 보여지기 위해 진열되는 상품처럼. 내 정신만은 밀봉되어 그때 그곳에 멤돌고 있다. 답답함마저 가루가 되어 증발되어갔던, 영겁의 시간. 그 시간이 지난 지금, 아직도 답보 상태. 나는 언제쯤 너를 잊을 수 있을까. 너로부터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보내는 중..